이순신은 부산포로 진격하여 왜군의 본진을 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순신에 대하여 원균은 자신은 할 수 있고 부산포를 공격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하고 이순신은 결국 해임되고 백의종군을 하게 되지요.


이순신 대신 삼도 수군 통제사를  원균으로 임명한 선조는 부산포 공격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미 부산포 안골포등 연안지역 해안 높은 곳에서는 왜군이 대포를 설치하고 방비를 하고 있어서 육군과 합동 작전이 아닌 이상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꼴이고 이순신도 그래서 명령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원균은 공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이순신이 비겁하여 공격을 안한다고 장계를 올렸기에 선조는 당연히 공격을 명령하였고

원균은 이순신과 같이 육군의 합동작전이 없이는 불가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당시 경남 지역의 육군은 보잘 것이 없는 세력이었고 합동 작전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고 선조의 명을 받은 권율은 원균을 불러 곤장을 치고 공격을 명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선조는 선전관 김식을 보내어 공격을 재촉하자 원균도 어쩔 수 없이 공격에 나서지만 식량과 식수조차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채 공격에 나섭니다.


이것이 결국 나중에 패전의 도화선이 됩니다.


원균은 한산도에서 연안으로 항해를 해서 공격하면 부산포에 도달하기도 전에 연안 섬과 해안에 구축한 왜군의 대포와 수비병들에게 속수 무책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덕도를 돌아서 외해로 부산포를 공격하는데 하필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아서 격군이 엄청나게 고생을 합니다.

그 와중에 몇척이 울산까지 표류하는 지경이었고 부산포 앞에 겨우 도달했지만 바람과 파도에 지친데다 600척에 가까운 왜 수군의 기세를 보고는 감히 싸울 엄두를 못내고 일단 가덕도 쪽으로 철수하다 영등포에 상륙하여 식수를 구하러 갔지만 매복한 왜군에게 공격을 당하여 400여명이 피해를 당하고 황망히 현장을 피합니다.


밤이 되자 배도 고프고 식량이나 식수도 부족하여 항해가 어렵다고 생각한 원균은 칠전량 앞바다에 정박하여 밤을 보내기로 하는데 배설이 반대를 하지만 무시합니다.

게다가 원균은 척후선이나 경계선도 띄우지 않고 무대책으로 함대를 정박시키고 모두 골아 떨어집니다.

이때 배설은 위험을 감지하고 함대에서 멀치감찌 떨어진 곳에 자기 휘하 배들을 단속하고 여차하면 튈 준비를 했지요

칠전량의 지형을 보면 원균이 얼마나 무모하고 지략이 없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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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왜군은 몇척으로 시험삼아 기습 공격을 하자 원균은 당황하여 지휘도 하지 못하고 우왕 좌왕하는 조선 수군을 보고 왜군은 일제히 달려듭니다.

결국 싸움다운 싸움도 못해보고 조선 수군은 수 많은 장수와 군사들 배를 잃어버립니다

당시 조선 수군의 배는 약 160척이었고 판옥선만 80여척이며 군사는 2만명으로서 이순신이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겨우 만들어 놓은 수군 함대의 전부였는데 이 함대와 장졸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오직 배설의 12척과 휘하 장졸만 함대와 멀치감찌 떨어져 있다가 도망치는 바람에 살았고요


흔히들 선조나 권율의 무모한 출전을 패전의 원인으로 보는데 이는 온당치 않습니다.

임금이나 도원수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생각으로 공격을 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 지휘관은 무리한 명령이라도 최선의 성과를 위해 작전을 짜고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가덕도를 돌아서 갔고 바람과 파도가 세고 왜군의 기세가 강하여 부산포를 공격 못한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애초에 식수마져 부족할 정도로 준비를 덜 하고 출정을 하였고

영등포에 상륙했다가 기습당했을 때도 수로 보나 뭘로 보더라도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당황하여 도망치기 바빴고 그 일로 겁을 먹고 칠전량에 정박한 것은 실수 였습니다.


원균은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지요

병사들이 지치고 힘들지만 전투는 아니기에 한산도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힘은 들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거제도 인근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밤을 지새고 날이 새면 돌아간다해도 칠전량에서 정박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지요

탈출구가 없는 좁은 지역에 그 많은 함대가 정박을 하면 꼼짝을 할 수 없고 특히나 조선의 장기인 포격전은 못하는 반면 일본의 장기인 백병전이 가능한 지형입니다.


또한 칠전량에 정박하더라도 척후를 내세우고 만 입구에 경계선을 배치하여 기습하는 적선을 사전에 발견하고 퇴치하거나 본 함대가 후퇴할 시간을 벌도록 해야 했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하였습니다.


흔히들 선조나 권율이 억지로 싸우도록 한 것이 문제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지만 싸움은 반드시 유리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칠전량 패전은 원균이 조금만 지혜롭고 생각이 깊었다면 그런 대패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통영에 있는 원균의 무덤이라고 합니다마는 신빙성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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