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기술하죠.


노무현이 닝구들이 비난하는 부분들에 대하여 100% innocent하다는 것이 '토론의 결과' '완벽하게 증명되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그러면 노빠와 닝구가 '우리가 남이가~'하고 어깨동무할 것 같습니까? 네버.


노무현은, 설사 노림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꼭 영남패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김상현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동교동이 아니라 상도동으로 가야 했습니다. 호남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왜?


한국 민주화 운동사를 잘 아시지요? 그럼 12.12 쿠테타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방법의 급선회를 이루게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아시죠? 그래서 나뉘어진 것이 '민주화 진영'과 '운동권'으로 나뉘게 되죠. 그리고 DJ는 민주화 진영의 대부 그리고 NL/PD는 운동권. 그리고 물론 DJ와 YS는 민추협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게 되었지만 1987년의 분열은 이런 민주화 진영과 운동권의 대립 갈등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추가 : 진강논쟁도 결국 이런 민주화진영과 운동권진영의 대립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80년 서울역 회군과 그 전 해에 발생한 12.12쿠테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데다가 518학살이라는 미증유의 학살극을 연이어 경험한 운동권은 1970년대의 소위 '낭만주의 학생운동' 방식을 탈피하고 조직화 사상화 되었죠. 그리고 그 때 발생한 것이 사구체 논쟁과 계보조차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분화되어가는 운동권.


629항복에서 항복의 주체는?

당시 한 사회주의자는 이렇게 토로했다고 합니다.(신동아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누군지는 잘....)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의 과실을 민주주의자들이 따먹었다"


즉, 독재정권이 '사회를 뒤짚어 엎을 정도로 혁명 역량이 높아지자' 민주주의자들에게 항복을 했다는 것입니다.(물론, 이 부분은 이설이 많습니다. 당시, 독재의 나발수였던 경향신문의 기사들은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고 있으니까요)


참, 애매모호하죠. 독재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그 위기에 처하게 만든 원인제공자인 사회주의자들에게 정권의 행태를 양보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자들에게 양보했다는 것이 말이죠.


이건, 민주주의 쟁취 과정에서 '숫가락을 얻는 사람은 DJ냐? 아니면 운동권이냐?'라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패러독스와 같은 것입니다.


어쨌든, 610항쟁의 키워드인 '넥타이 부대'.

610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축이었다는 그들의 나이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중후반까지. 그렇다면 그들 대부분이 대졸이라고 하고(설사 대졸이 아니라 고졸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학생 시절에는 NL/PD는 물론 그들의 전신인 삼민투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으로 그들은 대부분 '운동권이 활약하던 시대가 아닌' 1970년대 '낭만주의 학생운동이 주류이던 시절에 대학교를 다닌' 즉 '운동권 진영'이 아니라 '민주주의 진영'이라는 것이죠. (물론, 사구체 논쟁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으니 제 주장이 틀릴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지만 그건 증명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념으로 YH사건 때 YS가 닭장차에 끌려가신건 아시죠? 그리고 노무현이 변호사 시절에 사구체 논쟁에 관심이 많았고... 부림사건 및 부미방 사건 등 주로 '운동권을 위해 인권변호사를 해서' 그의 이력이 '민주화진영'과는 다른 궤도를 가고 있었다는 것. 즉, 굳이 호남차별이 아니더라도 당시 민주화진영의 인물이 주였던 호남정치인들은 권력구도 상 숙청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왜? 영남패권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호남이 차지하는 물적자원은 너무도 빈약해서 나누어 먹기에는 올려진 밥그릇이 많았기 때문.



결론? 노무현이 100% innocent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지도 않겠지만 증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노빠와 닝구의 대타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그럼 어떻게?


일단, 문재인 적출하고 저 한심하고 양심불량인 운동권 개량에 힘쓰고 이미 돌아가신 노무현.... 이제 평안하게 주무시게 하시고 새로운 정치 콘텐츠 창출에 힘을 보태실 것.



아, 그리고 저를 '노무현 일병 구하기' 범 아크로 대토론회에 초대하셨는데 초대는 고맙지만 답변은 No thanks. 그만큼 밟아드렸으면 되었지... SM 놀이 또 하라구? 사절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