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서울 살 때는 청접장이 자주 날라와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내가 경기도로 옮겨버린 이유 가운데는

그놈의 청첩장 좀 안 받고 살고 싶은 것도 약간은 작용했을 것이다. 경기도 시골구석까지 설마 청접장을 보내기야

하겠는가? 그 뒤 확실히 확 줄어들긴 했다. 또 그걸 받더라도 무시해버릴 이유가 생긴 것. 서울 한번 갈려면 산 넘고

물 건너 가야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참석할 결혼식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근래에는 아예 결혼식 참석 기억

조차 까마득하다. 그런데...

며칠전 고종석이 아들 견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이 친구가 벌써 며느리를 맞이하나? 그런 생각과 함께

좀 뜬금없다는 느낌. 왜냐하면 고종석 얼굴을 본지가 십년도 더 지난 것이다. 친구 사이도 아니고 자주 만난 사이도

아니다. 고종석이 한계례 문학기자일 때-그러고 보니 이십년도 지났다-두어번 얼굴 스쳤고 그 뒤 빠리에서 잠시

그의 안내를 받은 적도 있다. 그 뿐이다. 근래 고종석이 정치사회 관련 칼럼을 많이 쓴 관계로 여기 아크로에도

고종석 이름 아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청첩장을 무시해버릴려고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 친구가 오죽이 청첩장 보낼 데가 없으면 시골 사는 나헌테까지 보냈을까?'

이런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알다시피 고종석은 주류가 아니고 어디 아부해서 한자리 해먹는 그런 부류

가 아니다. 이름이 여기저기 나와도 실속은 없고 고단한 삶일 것이다. 그래서 슬며시

'그렇다면 오랜만에 시치미 딱 떼고 한번 얼굴이나 볼까?'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아직 이십일이나

시간여유 있으니 더 생각해봐야겠다.

그런데 신부쪽 이름을 보니 또 신부 아버지가 아는 이름이다. 시인이고 작가인데 사실은 내가 오래 전 경향에서

뽑아준 이름인 것이다. 우연인지 혹은 아버지들 사이 관계가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없다.

 현재는 참석여부가 반반이다. 내키면 갈 거고 영 안 내키면 관둘 것이다. 나 사는 곳에서 퇴계로 한국의 집에

갈려면 산 넘고 물 건너,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그리고 한참을 걸어야 한다. 큰맘 먹지 않고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