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시스템이 87년 체제라는 것에 대해서 인정 안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은 일단 패스합니다. 이건 좌우를 막론하고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 처음부터 미주알고주알 따지기 시작하면 진도 안 나갑니다.


그렇다면 87년 체제를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까요? 뭐 썰 푸는 분들마다 입장은 다르겠지만 나는 두 가지 포인트를 잡고 싶어요.


첫째,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이야. 흔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 부분이지요. 이것의 핵심이 바로 대통령 직선제였고. 87년 6월 항쟁에서 터져나온 구호가 여러 개였지만 그 핵심은 대통령 직선제와 군부독재 퇴진 등 두 가지였어요.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사실상 하나의 주장이었지요. 아, 씨바 우리 대장 우리 손으로 뽑자니깐~ 바로 이런 것이지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긴 하지만 이건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됐다고 봅니다. 음모론 좋아하는 분들은 박근혜가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그러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건 그분들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긴 말 할 것 없이 그런 식이라면 김대중 노무현 당선과 다시 이명박 박근혜의 당선을 설명하기 어려워요.


이건 우파 세력이 양심적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그런 음모론적 수법으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집을 만큼 시스템이 간단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 판단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그거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동원해야 할 사람, 조직도 너무 방대하고 손 대야 할 절차나 시스템도 너무 복잡해요. 기본적으로 가성비가 안 나오는 작업이란 얘기입니다.


그냥 다른 방식으로도 집권 가능한데 왜 그런 미친 짓을 하고 있겠어요. 제가 국회 토론회에서도 얘기했지만 그 다른 방식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게 바로 호남 왕따 시키는 것, 인종주의적 편견을 조장하는 방식이겠지요.


암튼 절차적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완성됐지만 그 자체로 결정적 한계를 안게 됐어요. 모든 시스템과 절차는 그것의 완성과 정상적인 운용을 위한 몇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어요. 절차적 민주주의도 그런 게 있습니다.


나는 87년 체제의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그 전제가 바로 주체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즉, 그 절차적 민주주의가 누구의 요구에서 시작됐고, 누구에 의해 마무리지어졌으며, 누구에 의해 주도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보기에 87년 체제는 80년대를 관통해온 학생운동과 거기에 연대한 야권 세력이 주도하고 80년대 들어 태동하기 시작한 노동운동 등 민중운동 진영이 보조하는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80년대 투쟁의 뿌리에는 80년 광주항쟁이 있습니다. 80년대의 모든 투쟁에서 단 한번도 빠지지 않은 구호가 있다면 그것은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었어요. 이걸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사람은 무얼 모르거나 양심불량인 사람이겠지요.


결국 87년 체제의 뿌리에는 70년대 이후 심화 축적되어온 박정희식 깡패 개발독재의 질곡에 저항하는 호남 민중의 분노와 투쟁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87년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그 호남 민중의 정상적인 지분과 참여가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87년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군사독재 대신 기득권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맡게 된 고급공무원, 검찰, 법조계, 교수 등 엘리트 지식인, 언론계 등이었습니다. 군부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이들이 나눠가지게 된 것이라고 봐야죠.


그리고 영남 유권자들이 그들의 공범이 되어 대기업 공장 일자리와 지역 개발의 떡고물을 나눠먹었어요. 영남 출신 중에서 머리가 되는 친구들은 직접 저 전문가 집단에 참여했고 그 비율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전문가 집단을 통한 영남패권이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영남패권 기득권의 집권을 합리화해주는 알리바이로 쓰이게 됐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제로 담보해야 하는 목표이자 내용이랄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나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는 기대할 수 없게 되고, 87년 체제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됐던 갈등과 체제 불안이 계속 누적되고 있습니다.


87년 체제 안에서도 점진적인 노력과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었어요. 3당합당으로 87년 체제의 변질을 완성시킨 영남패권 세력이 체제 유지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IMF 구제금융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던 것도 역설적으로 보면 비정상이 바로잡힐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김대중의 집권은 실제로 70년대 개발독재와 변질된 87년 체제의 누적된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였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소수파 대통령이자 어마어마한 비토 세력을 갖고 있던 대통령으로서는 사실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봅니다.


노무현의 집권은 사실상 87년 체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요. 인사를 하려고 해도 아예 쓸 사람조차 없었던 호남 출신 엘리트들에게 어느 정도 정당한 대우를 보장해주고 김대중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남북대화와 재벌 개혁의 틀만 어느 정도 유지했어도 87년 체제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찾을 수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정반대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안 좋은 조건에서 집권해서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대통령이 김대중이었다면, 노무현은 가장 좋은 조건에서 집권해서 가장 더럽게 망쳐먹은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의 정치철학은 3당 합당으로 영남패권의 안정적 재생산을 도모한 김영삼 2.0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노무현 이후 87년 체제는 더 이상 현실 적합성을 갖지 못하고 이제 체제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입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종말을 고할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미 그 이론과 명분이 현실 정합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87년 체제 그 유산을 네다바이 해쳐먹은 친노 쓰레기들이 하는 더러운 짓이 그 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87년을 규정하는 두번째 포인트가 바로 노동자 중심성이라고 봅니다. 첫번째 포인트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70년대 이후 이 나라 진보 민중 민주 진영이 추구해온 목표의 실현 즉 과거의 이슈의 현실화였다고 한다면 노동자 중심성은 90년대 이후 미래의 목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노동자 중심성이란 게 왜 미래의 가치가 되어야 하는지 원론적인 차원에서 짚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산계급으로서 현재의 소외를 딛고 미래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 △노동을 통해 세계의 변화 방향을 인지하고 역사적 진전의 주역을 담당할 수 있는 지적 능력 △대규모 기계제 조직 노동을 통해 다져진 조직력과 전투 능력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서 기존의 사회적 관계망의 구속을 벗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의지 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첫번째와 마지막 항목은 비슷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뭐 일단 패스하구요.^^


하지만 이 노동자 중심성은 87년 체제를 통해서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87년 체제에서 노동자 중심성이란 다름 아닌 민주노총 중심성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영남 지방에 기반을 둔 재벌 기업의 대공장 노동자 중심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기에 공무원들과 공기업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들의 상층부에는 영남 출신 활동가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87년 체제의 노동자 중심성은 이 체제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지만 처음부터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바로 주체의 문제가 작용하고 있어요. 87년 체제의 또 다른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노조가 사실상 한 것도 없이 길 가다가 지갑을 주웠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노태우의 6.29 항복선언을 이끌어낸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대중은 별로 투쟁에 기여한 바가 없어요. 구로동맹파업 등 기념비적 업적이 있긴 하지만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한 투쟁 주역의 기여도에는 비교할 수도 없이 미약한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중소기업의 미숙련 노동자 및 여성 노동자 중심의 투쟁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영남 지방에 중점적으로 자리잡은 재벌 기업 대규모 공장의 투쟁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87년 체제가 완성되고 군부독재의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라는 공포가 사라지자 대기업 노조들이 가장 극렬하게 투쟁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성과는 모두 그렇게 ‘이미 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길 가다가 지갑 주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칼 테러니 뭐니 하는 것도 있었지만 광주항쟁에서 공수부대가 휘두른 대검과 곤봉 그리고 M16 사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렇게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얻은 꿀물을 자식들에게까지 넘겨줘야 한다며 노조원 세습까지 얻어내고 있다지요 아마.


대기업 공장 정규직으로 노조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소유에서 자유로운 존재일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최소한 우리나라 상층부 30% 안에 들어간다고 봐야 합니다. 이들에게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어요.


노동을 통해 세계의 변화 방향을 인지하고 역사적 진전의 주역을 담당할 수 있는 지적 능력도 사실은 끝난 얘기입니다. 이 세계의 새로운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재벌 기업의 대규모 공장에서 단순 조직 노동을 하는 민노총 조직원들이 아니라, 오히려 IT 등 다양한 첨단산업에서 개인적이고 비정규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민노총 조직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대규모 기계제 조직 노동을 통해 다져진 조직력과 전투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것은 나머지 조건들이 충족될 때만 가치가 있는 요소입니다. 비유하자면 병사들의 훈련과 장비가 우수하다는 얘기인데, 그건 그 군사들이 우리편일 때 의미가 있는 거지 그 병사들이 적군이거나 반란군 또는 자기 배만 채우는 비적의 무리라면 그것은 그냥 재앙일 뿐입니다.


선거 때 민주노총 사업장이 몰려있는 영남의 진보벨트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해 영남패권의 한 요소로서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한 투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겁니다.


내가 87년 체제의 한계와 종말을 얘기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포인트를 말하는 겁니다. 87년 체제가 의미를 가졌던 절차적 민주주의와 두 가지 요소가 이미 훼손된 상태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라고 해서 어느 날 대단한 것이 공중에서 툭 떨어져 내리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선 현재의 체제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를 냉청하게 따져봐야지요. 거기에서 제일 먼저 정리할 대상이 바로 친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친노가 무능하고 허접하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은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그 핵심은 결국 영남패권에 대한 복무입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영남패권을 유지 재생산하고 그 과정에 대한 알리바이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그 핵심 고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친노 세력입니다.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이라는 결과도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이 무리가 저지르는 온갖 불법 편법과 막장 짓을 보면 이게 분명해진다고 봅니다.


이 점은 대기업 조직 노동자, 민주노총의 울타리 안에서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내는 영남 지방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을 옹호하는 논리와 명분이 모두 깨시민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 그 깨시민들의 핵심이 친노 세력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내가 김대중당과 노무현당이 갈라서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대중 잔당 중에 남은 사람이 누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초점을 잘못 잡은 겁니다. 옛날 동교동계 사람들을 되살리자는 얘기가 아니니까요. 노무현에 의해 결정적으로 더럽혀지고 훼손되기 이전의 87년 체제의 핵심을 복구하자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소외된 호남 세력의 상징자산과 정당성, 좌절당한 김대중의 개혁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거기에서 그치자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출발하자는 얘기입니다.


미래 방향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얘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