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 24일에 14대 총선이 치러졌다. 87년 체제 등장 이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같은 해에 치러진 첫 사례였던 것으로 안다. 즉, 그해 연말에는 삼당합당으로 여당으로 옮겨간 김영삼과 제1야당 민주당의 김대중 그리고 3당인 국민당의 정주영 등이 맞붙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었다.


여당이 우세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신한국당은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선거 전의 194석에서 149석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유례 없이 많은 40여 건의 재검표 신청이 이어져 여당의 의석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김용채(민자당)과 임채정(민주당)의 노원을 선거구였다. 최초의 개표에서 김용채는 임채정을 36표라는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상태였다.


그해 7월 20일 재검표에서 김용채가 얻은 표 98표가 원래 임채정 표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선거 결과는 뒤집혔다. 다음날 주요 일간지 1면 톱은 모두 이 기사로 채워졌다.


나는 그때 <주간노동자신문>에서 편집 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 편집 그 중에서도 제목 뽑기 역량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가르쳐주는 선배도 없고 그냥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줏어들은 얘기를 푯대 삼아 혼자서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조선, 한국, 한겨레 등 3가지 신문을 사서 이리저리 지면 배치와 제목 등을 비교해보곤 했다. 당시는 동아일보가 아직 석간이던 시절이었다.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일간지들의 1면 톱도 공통적으로 같은 사건을 다루게 되고, 그 제목도 큰 차이는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날 조선, 한국, 한겨레의 1면 톱기사는 똑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 제목이 완전히 달랐다. 그 제목을 뽑는 실력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나에게는 깊은 기억과 인상으로 남았다.


- 노원을 임채정씨 당선
- 노원을 개표결과 번복
- 14대 총선결과 첫 번복


위에서 보는 것처럼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혹시 저 제목들과 신문을 정확하게 연결할 수 있는 분이라면 우리나라 신문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연구하신 분이라고 본다.


첫번째가 한겨레신문, 두번째가 한국일보, 세번째가 조선일보의 제목이었다.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정말 진보 진영의 실력이라는 것이 아직 이 정도구나'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편집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저 제목의 수주 차이는 너무 컸던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제목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 결과가 뒤집혔다는 사실조차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임채정이라는 이름을 제목에 넣어서 운동권 출신에 대한 동지적 애정은 나름 느껴진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냥 무감각하고 불친절하고 요령부득의 제목일 뿐이다.


한국일보의 제목은 가장 기본적인 팩트는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없다. 즉, 제목 등 신문의 편집은 그 자체로 그러한 편집을 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저 사건이 왜 1면 톱으로 올라와야 하는지를 기사가 아주 구체적으로, 직관적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대목에서는 많이 부족한 제목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조선일보의 제목이 가장 우수했다. '14대 총선'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내는 것에서부터 정세분석의 깊이와 실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을 느꼈고, '첫'이라는 단어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판단했던 이유가 있었다.


14대 총선은 중요한 키워드다. 그것은 바로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 지형을 새로 짜는 가장 결정적인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의 거대한 변화 특히 김영삼의 3당합당이라는 초유의 정치기획이 국민들에게 어떤 판단을 받을 것인지, 김대중이 강고한 불신의 벽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정주영의 정치도전이 어떤 결실을 얻을 것인지를 사전에 예고해주는 예고편과 같은 성격을 갖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독자들은 조선일보의 저 제목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첫'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함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앞으로도 다른 선거구의 개표 결과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독자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사건에 대한 예고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말 그대로 입체적인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독자들이 받게 되는 느낌이란 게 다른 제목과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선일보가 뽑은 제목이야말로 한겨레신문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야당에게 가장 유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조선일보가 비록 사악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집단이라고 해도 그 전문성에서는 양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제목을 비교하면서 진보 진영의 실력이 아직까지는 일간지를 운영해서 경쟁력을 가지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는 아직 없었지만 이후 <한겨레21>이 창간된 것을 보면서 "아, 주간지라면 진보 진영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14대 총선 노원을 개표결과 보도기사의 제목을 비교하면서 받은 인상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겨레신문에 근무하던 선배나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 비교적 내 지적을 인정했던 사람의 얘기를 인용해본다.


"한겨레신문의 창간 주역들은 동아투위 등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해직기자 출신이 많다. 그 분들, 대개 기자 경력 2~3년차나 많아봐야 5년 미만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잘린 뒤에는 언론과 무관한 직종에서 일한 경우가 많았다. 언론인으로서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직장을 갖고 어떤 일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차라리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세월만 죽인 분들이 정말 문제다. 답이 없다."


오래된 이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꺼내는 것은 우리나라 진보 운동권의 문제가 여전히 비슷한 상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실력 부족이라는 얘기이다. 그냥 비슷한 것도 아니고 실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차근차근 공부하고 실력을 쌓을 생각을 하지 않고, 몇 가지 아이디어나 기획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는 일종의 도박꾼 심리가 강해진 것 같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발전한다. 대한민국이 문제도 많지만 어설픈 실력으로 쉽게 뒤집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은 결코 아니다. 실력으로 따지자면 진보 진영은 앞으로 최소한 10년 정도는 집권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죽어라고 공부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빡빡 기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이것도 정말 최소한으로 잡은 거다.


세월호 사건에서 목소리만 높이면 다 해결된다는 유치한 발상으로 삽질 거듭하다가 또 대형참사를 예약해둔 새정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당신들에게 다가올 비극은 이제 시작이라는 데 나는 100원 걸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