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때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배웠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겟살레님은 나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이다.

다른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데 내가 아크로에 수년동안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 왜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는 소릴 들을까?

내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최근 유저들과 생각이 다른 것일까?

단지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늙어서 치매기가 있는 것일까?


나는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왜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다고 했을까?

먹을 양이 정해진 것처럼 먹는다는 표현을 했을까?

뭐든 먹는다고 표현을 잘 하는 우리나라만 그런건지 모르겠다.


좌우간 나이차이에 따른 차이가 생각보다 심한 듯 하다.

감수성이나 예리한 것은 젊은 사람을 따라 갈 수가 없다.

대신 폭넓은 사고나 경험에 의한 예측은 나이든 사람이 월등하다.


사안에 대하여 흑백논리나 정의나 불의를 단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고 그로 인하여 사회는 진보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경험을 통하여 정의를 부르짖고 슬로건을 거는 사람들이 정의롭지 않았다는 경험을 하다보면 정의를 부르짖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들보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저 사람들이 어디까지 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부패한 사람들을 오히려 신뢰하게 된다.


나이든 사람들이 멍청하고 정보가 없어서 새누리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이래 6.25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기득권이 조금 수세에 몰렸다고 기득권에  반항하면 결국 손해라는 역사적 경험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패한 수구를 몰아낸다고 나선 사람들이 수구보다 더하거나 기층민중에게 더 손해를 끼치는 일도 경험을 했기에 그다지 희망을 가지지를 않는다.

그저 세월이 모든 것을 해결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것이다.


결국은 누가 믿음을 주느냐이다.

야권이나 그 지지자는 나이든 사람을 포기하는 형국인데 이건 어리석은 일이다.

시간이 갈 수록 노인은 늘어나고 사실 지금의 50-60대도 과거에 데모하던 386들이고 정의감에 불타던 사람들이고 진보를 염원하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믿음이다.

믿게 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적응력이나 노동력 경제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에게 예측 불가라는 것처럼 두려운 것은 없다.


야권이 정권을 잡으려면 젊고 선명하며 먹고 살 걱정 없는 강남 좌파들의 거대 담론이나 소수자를 위한 구호에 현혹되면 안된다.

차근차근 믿음을 주고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예측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면 개혁은 언제 어떻게 하는것인가?


다를거 없다.

집권하고 일상적인 행정속에서 차근 차근하면 된다.

새누리와 차이가 뭐냐고?

새누리는 등떠밀려서 버틸때까지 버티다가 한다.

아니면 아예 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야권은 일상속에서 늘 새로운 방식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포장은 그전 그대로인체

김대중의 개혁이 왜 성공을 했는지 아는가?

노무현은 왜 실패했고


김대중은 아이엠에프 극복 외에는 함부로 슬로건이나 개혁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그냥 일상적인 행정을 하면서 5년후에는 실제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노무현은 미리 4대 악법 개혁이라는 슬로건 부터 걸고 대북 특검이라는 분당이라는 슬로건부터 걸어서 상대방이 비상이 걸리고 대비하며 총력전으로 나오는 상태에서 싸우다 밀린 것이다.


정치 경제 복지 통일 외교 등에서 김대중 5년 전과 후를 비교하고 노무현 5년과 후를 비교해 보라

이명박은 바꿀 생각이 없으니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중요한건 믿음을 주는 일이다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와 과학의 발전이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정치조차 정신없으면 누가 적응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