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재미난 일이 없는데... 

이거는 옛날에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이에요. 이 언니 가끔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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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일주일동안 고시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고시원에서 기거하며 그곳 경영을 관리하던 총각아저씨는 복도를 발끝으로 걸어다니며 문을 여닫을 때마다 조심조심 소리나지 않게 숨죽이는 나를 보고 일본사람이냐고 물었었다.

번갯불에 콩궈먹 듯 구했던 대방역의 고시원은 계산을 치르고 나서 해지는 저녁즈음 바라보니 바로 옆에선 밤이면 빨갛게 불을 밝혀놓고 영업을 시작하는 성매매하는 곳이었다. 커억;;; 그치만 고시원 바로 뒷편에는 시장이 있어 안전하게 붐비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고시원총각아저씨와 시장바닥의 허름한 포장마차집에서 이천원짜리 국수를 사먹었었지.

어느날 고시원아저씨와 그 친구분 나 이렇게 셋이서 시장통 어디에서 소주를 한 번 마셨는데 그 두 사람은 잠시 돌봐 주어야할 처자가 생겼다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좋아 보이던 고시원아저씨의 친구분이, 우연히 술자리에서 합석하게 된 여자분의 사정이 너무 딱해서 친구가 있는 고시원으로 무작정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러니 같은 여자인 내가 그 여자분이 여기 있는 동안 말동무도 해주고 같이 있어 주라고 했다. 고시원아저씨가 자! 그럼 술한잔 따라 보고!래며 내게 술병을 건네길래 '녭'하고 넙죽 술을 따랐더니 떽!! 여자가 어디 아무남자한테나 술을 따르냐며 호통을 치던=.=. 아니 그럼 술은 왜 따르래.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고시원으로 향했다. 얼마 안 있어 친구분이 그 여자분을 데리고 왔다. 키가 크고 상체는 말랐는데 가슴과 엉덩이가 야릇하게 볼륨있던 언니. 갸름한 얼굴에 쌍꺼풀은 없었지만 앵두같이 말콩한 입술이 매력적이었다. 

'우리 답답한데 나가서 커피나 마실까? 나 돈 없으니까 네가 사.' 언니의 제의로 찾아간 가까운 커피숖에서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바깥 테라스였던 것 같다. 내 체온같이 기분좋았던 공기가 기억난다. 언니는 의붓아버지와 의붓오빠에게서 어린시절 이후 줄곧 당해온 성폭행, 도망쳤다가 잡혀 와 죽지 않을만큼만 맞았던 일들, 다시 가출을 시도해 언제 잡혀 들어갈지 모를 공포에 산다는 얘기들을 담배를 꼬나물고 마치 '도서관 책반납기일이 지나버렸어'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들려주었다. 언니는 뛰어난 화술로 단박에 내 혼을 쏙 빼 놓았었다. 

이미 언니에게 매료되어 있던 나는 명랑만화 속에서 옥수수 얌얌 먹다가 튀어나와 비련의 여주인공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그날 밤 고시원으로 돌아간 우리. 언니는 내 옆방에 기거하게 되었는데 침대가 너무 작지 않느냐며 나를 이끌고 이방 저방 염탐을 시작했다. 복도 끝쪽의 방은 다른 보통 방들보다 두 배나 컸으며 침대도 두 개나 있었다. 게다가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언니는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여기가 훨 편해 보이지 않냐며 그 방에서 자겠노라 했다. 와아... 나는 주면 주는대로 감지덕지하고 가만 있을 소심쟁이인데 이 언니는... 장군같아...(뿅)... 내겐 그것도 매력이었다.

다음날 언니가 '나 만원만 줘'해서 주고, 다리가 아파 어디 일 할 마땅한 곳이 없대며 '나 전에 몸파는 곳에서 일한 적 있거든. 거기 다시 들어가 일할까?' 하는 언니를 두고 '다리 말짱한데...'란 생각에 의구심을 갖다가 삐삐연락에 전화해 본 언니에게서 십만원만 빌려줘란 말을 듣고 의심이 더 커져버려서는 당장 짐을 싸고 달아나 버렸다... 고작 십만원 때문에 딱한 언니를 버려두고 온 것 같아 그 후 속상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언니. 나랑은 다른 세계에 살던,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서 쫓기는 미녀를 연상시키던 야릇한 언니가 오늘 문득 생각났다.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