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넷에서 어느 분이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이 성행한 역사에 대하여 잘못 인식하시는 것 같아' 인도네시아 한인회에 올라온 글 전문을 인용합니다.


본문 중

"하나님 믿고 천국 가세요."
 
이들이 '권장'하는 기독교를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고운 시선으로 볼 리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식민지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다. 한 예로, '개와 토착민(인도네시아 사람)은 출입금지' 라고 하는 팻말이 붙은 상점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나님 믿고 천국 가. 하지만, 우리 가게는 오지마." 아마 이런 식이었을 거다.
 
이런 자존심 상하는 사회 분위기에  그 누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겠는가.
(아래의 전문 중 발췌)


이슬람에 대한 흑색선전에 가까운 주장을 하시는 분들...... 역사와 문화를 전혀 모르고 미국 침략주의를 합당케 하기 위한 CNN을 위시한 여론조작 및 한국 개신교에 세뇌되어 앵무새처럼 주장하는 것.... 이제는 지쳤습니다만.... 한마디 다시 첨언하자면.... 이슬람이 과격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과격하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의 99%는 서방 세계에 있습니다.


[종교] 인도네시아 종교와 역사
 글쓴이 : 한인회 게시글 주소 : http://www.innekorean.or.id/hanin/bbs/tb.php/inni_life/558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던 이슬람의 이미지다. ‘한 손에는 칼’이란 구절은 이슬람 국가의 테러리스트들이 벌여왔던 이미지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는 정말 테러와 전쟁의 종교일까?
 
이슬람교는 세계 종교 중 두 번째로 많은 13억이란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1400년이란 오랜 역사를 유지해 온, 이른바 ‘성공한 종교’인 이슬람이 테러와 전쟁을 벌이는 종교라 한다면, 1400년 동안 이슬람 교도로 살아온 그 수 많았던 사람들과, 현재의 13억  회교도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이들은 모두 악의 화신? 피에 굶주린 악마를 숭배하는 무리들?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이슬람교의 기본 교리는 '평화'다. 모든 종교의 바탕이 평화와 사랑이듯이 이슬람교 역시 인류의 평화를 중시한다. "살람 알레쿰!" 이라는 회교도의 인사말을 아는가? '당신에게 알라의 평화가 있기를!' 이라는 뜻이다. (다들 아시다시피'알라'는 이슬람의 유일신이다.)
 
그런데, 왜 자꾸 테러를 하냐고? 그건 위대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신 '부시'에게 물어봐라. 부시는 가끔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절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런데도 머리 속에는 온통 전쟁 생각뿐이다. 기독교 신자 중에 전쟁광이 있듯이 이슬람 교도들 중에도 테러리스트는 존재한다.  
 
다음에 누차 설명하겠지만, 이슬람은 관용과 평화의 종교다.'이슬람=테러'라는 이미지는 과감하게 버리도록 하자.
 
왜 이런 얘기를 하는고 하니,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동지역의 나라 중 하나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정답은 인도네시아이다. 의외라고? 그렇담 이유가 뭘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인구가 많기 때문.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2천만으로,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다. 이 중 85%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머지 15%는 기독교와 천주교, 힌두교, 불교 순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이슬람교까지 포함한, 이 다섯 가지 종교가 바로  국가에서 인정하는 5대 종교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동지역의 회교국가와는 사뭇 다르다.
 
재밌는 점은 인도네시아의 주민등록증에는 종교 기재난이 있다는 것인데, 인도네시아 국민이라면 누구나 위의 다섯 가지 종교 중 한 가지를 택하여 자신의 주민등록증에 기재를 해야 한다. 참 재밌는 나라 아닌가? 당연히 주민등록증에 가장 많이 ‘선택’되는 종교는 단연 이슬람교다.
 
 
이슬람교도는 뭐가 다른가?
 
식생활에서 살펴볼 수 있는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특징은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슬람교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꾸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꾸란에는 “돼지는 불결한 동물이므로, 그 고기를 먹지 마라” 라고 명시되어 있다. 무슬림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흔히 코란이라고 알고 있으나, '꾸란' 이 옳은 표기이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이슬람교는 사막이 있는 지역에서 시작되다 보니, 부폐되기 쉬운 돼지고기는 꺼려지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외에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를 정복한 힉소스인들은 돼지를 상징하는 신을 섬겼는데, 이 때문에 피지배인들이 돼지를 무척 싫어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이슬람교에서 돼지고기를 금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오직 '알라' 만이 알지어다.
 
이러한 이유 외에 생리적인 이유도 있다. 무슬림들은 오랜 세월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몸에서 돼지고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우리가 처음 접하는 외국음식을 먹을 경우, 몸에 맞지 않아 설사를 한다거나 현지인들은 걸리지 않는 식중독 따위에 걸리는 것과 유사한 경우다. '물갈이' 와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되겠다.
 
실제로, 이들이 돼지고기를 먹을 경우, 알고 먹었든 모르고 먹었든 간에, 구역질을 하거나 설사를 하는 등의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때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알라가 노하셨다!”
 
그래서, 이들은 처음 접하는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돼지고기가 들어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곤 한다. 심지어 과자를 먹을 때도 말이다.
 
이런 이유로 무슬림들은 지금까지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이다. 구역질이 날 정도의 더러운 동물인데, 꾸란의 말씀을 어겨가며 애써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무슬림들이 돼지를 보면 ‘에이~ 디러~” 라는 생각은 해도, 우리네처럼 삼겹살을 연상하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얼마나 더러운지 가축으로 기르는 경우도 절대 없다.
 
하지만, 이슬람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간단한 의식에 의해 도살된 돼지를 먹을 수 있다.
 
 
돼지고기를 먹을까, 소고기를 먹을까?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에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돼지를 더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과는 정반대의 이유다.
 
그러면, 회교도 즉, 이슬람교도인 '야디'라는 친구와, 전통적인 힌두교의 집안의 아들 '뿌뚜' 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오랫만에 만나서 저녁으로 고기라도 구워 먹으며 그 동안의 안부라도 물어야 쓰겠는데..
 
뭘 먹어야 할까? 어느 한쪽이 양보하고  돼지고기나 혹은, 소고기를 먹어야 할까? 우정을 위해서?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경우가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난다.  앞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교 외에도 다양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라고 언급했다. 그래서 이슬람교와 힌두교, 기독교와 그 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빈번하다.
 
이럴 때 이들이 만나 즐겨 먹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닭'이 들어간 음식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닭 요리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인도네시아에는 닭을 재료로 하는 음식들이 다양하게 발달 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러 종류의 닭 요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다섯 가지 종교가 뒤죽박죽 섞인 이유
 
이쯤 되면, 인도네시아에 여러 가지 종교가 어떤 이유로 혼재 되었는지가 궁금해질 것이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지도를 펴 놓고 설명하겠다.

인도네시아는 1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 국가다. 지도를 펴 놓고 보면 그 모양새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하여, 흔히 인도양의 진주 목걸이라고 표현 하기도 한다.
 
지도를 펴 놓고 인도네시아 각 지역의 종교 분포를 보면 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도의 맨 왼쪽에 위치한 수마트라 섬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의 99%가 모두 이슬람교인 반면, 동쪽에 위치한 말라쿠라는 지역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비율이 60%에 가까운 비율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 섬 중 동쪽 맨 끝에 위치한 '이리안 자야'라고 하는 섬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비율이 무려 80% 에 가깝다.
 
동쪽과 서쪽의 종교 분포의 차이는 그 길이 만큼이나 크다. 물론 이 ‘이리안 자야’ 라고 하는 섬의 기독교와 천주교는 토착 민간 신앙과 혼합된, 조금 다른 형태이긴 하다. 이 섬에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섬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종족들이 산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사진출처 - www.zoltantakacs.com)
 
우리가 지구탐험대와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종종 접했던, 길다란 깔때기를 꽂고 뛰어 다니던 그들.
 
이들은 여전히 부족 생활을 하고 산다. 부족 생활을 하며, 일요일이 되면 옷을 차려 입고 교회에 나간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예 일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 곳의 부족사회에서 잔존하고 있는 식인 풍습이나, 장례 풍습, 주술적 민간 치료 등 무척 흥미로운 사실들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무척 많으나,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관계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다.
 
계속해서 자바 섬으로 가보자. 인도네시아의 많은 섬들 중 그 중간에 위치한 '자바 섬'은 이슬람이 우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혼재된 종교 문화를 갖는다. 단일 건축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이 이 자바 섬의 ‘족자’ 라는 지역에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 한복판에는,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고딕 양식의 성당이, 인도네시아 최대 규모의 이슬람 대사원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휴양지로 잘 알려진 발리 섬과 롬복 섬을 살펴볼까?
 
지도상의 발리와 롬복 섬 왼쪽에 있는 '자바 섬'에서는 이슬람, 오른쪽에 있는 '이리안 자야' 에서는 기독교와 천주교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두 섬(발리와 롬복)은 주민의 9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 힌두 문화권이다. 이 곳에서 이슬람과 기독교, 천주교 등은 졸지에 10%미만의 소수 종교로 전락한다.
 
 
왜 발리는 힌두 문화권이지?
 
같은 국가에서도 지역에 따라 이런 혼재된 종교 문화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다시 한번 위의 지도를 보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위로는 인도와 중국이 위치하고 있고, 지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 끝에는 중동 국가들이 위치한 서남 아시아가 위치하고 있다. 이쯤 되면 어렴풋이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서방 국가들의 지배와 침입이 빈번한 시기에 카톨릭과 기독교가 유입되었고, 북쪽의 인도와 중국과의 교류 그리고 화교들의 유입과 정착으로 힌두교와 불교 등이 알려지고 정착했으며, 서쪽으로부터는 아랍 상인들과의 교류로 이슬람까지 받아 들인 것이다.
 
지도상의 인도네시아의 위치는 주위 여러 국가들과의 교류가 무척 용이했다. 더욱이, 인도네시아의 그 유명한 ‘향료’ 덕분에, 각국에서 몰려드는 무역상들과의 접촉은 빈번 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새로운 문화의 유입과 종교 전파의 통로가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13세기 무렵, 해상무역을 주도하던 아라비아 상인들과 교역을 트기 시작했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의 선진 문명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아.. 그 고풍스러운 문화에 그들의 세련된 매너라니.. 이 어찌 존경을 마다 하리오.
 
아라비아와의 교역이 시작되기 전, 인도네시아에는 수 많은 왕조가 있었고, 이들 왕조는 불교와 힌두교를 국교로 지정하는 등, 전역에 걸쳐 불교와 힌두교가 융성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아라비아 상인들과 접촉이 잦아짐에 따라, 이들의 종교인 이슬람은 전국적으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때마침 기존의 왕조들이 쇠락해 가면서 점차 이슬람 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뺐다고 해야 할까.
 
이때 불교와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 중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발리 섬과 롬복 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날 발리와 롬복이 힌두 문화권에 놓여있는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이슬람의 발전
 
그 후, 인도네시아 전역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슬람교가 크게 융성 한다. 이때,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수피즘이라고 하는 신비주의 종파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기존의 토착 민간 신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더욱 더 신비주의적 성향을 띠게 된다.
 
예를 들면, 명상에 잠기는 종교 수양을 하거나, 주술로 병을 고치는 등 정통 이슬람과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 기존의 불교와 힌두교와도 역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혼합적인 이슬람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독특한 모습을 띄게 됐으며, 오늘 날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평화로운 해안가 마을에서
 
네덜란드의 침략
 
오늘도 저녁에도 어김없이 1시간 동안의 명상을 마친 우리의 '바구스 아저씨', 꾸란 경전을 낭독 하던 중, 잠시 고민에 빠진다.
 
'출출한데 뭐 좀 먹을 까나? 코코넛을 따 먹을까, 아님 물고기를 잡아 먹을까'
 
아.. 행복한 고민. 주위에 먹을게 널린 나라, 손만 뻗으면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린 풍요로운 나라, 인도네시아!
 
이 때, 옆 동네 사는 '위디아 아저씨', 급하게 뛰어와 헐떡헐떡 거리며 외친다.
 
"큰일났어! 해안가에 머리 노란 애들이 배 끌고 나타났어!"
 
"또?!"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우던 ‘동인도 회사’를 기억하는가?
 
그 당시 금 값과 맞먹었던 인도네시아의 향료를 차지하기 위해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침략하여 세웠던 회사. 그게 바로 ‘동인도 회사’다.
 
네덜란드는 다량의 인도네시아 향료를 확보하고자, 자국의 민간 상인들을 앞장 세워, 이곳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상인들이 활발한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기 시작한다. 이 당시의 네덜란드 국가 정책이란 이런 것이었다. 국가는 상인들이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거나,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매니저 역할'. 그 정신은 예나 지금이 변함이 없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이 침략 기간(지배 기간이라는 말은 엄연한 의미에서 틀린 말이다. 누가 누굴 지배한단 말이오?)은 17세기부터 시작하여 무려 350년이나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 많은 서양의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의 기독교 비율은 현재 5% 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350년이면 제 아무리 인구가 많은 곳일 할지라도 전국에 걸쳐 기독교를 충분히 전파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을 텐데, 오늘 날 인도네시아에서 교회를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3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도네시아 전역에서는 크고 작은 독립운동이 끊임 없이 일어났다. 내 땅에 들어와 주인 행세 하는데 가만 있을 리가 없지.
 
그런데 이게 동시다발 게릴라식 독립운동이다 보니,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졌다.
 
인도네시아의 땅덩어리를 보라. 오죽 넓은가? 게다가 모조리 섬이다. 그것도 17,000여 개나 된다. 네덜란드가 이 많은 섬마다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자국민을 다 데려와도 모자라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대도시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따라서, 선교활동은 군대의 영향력이 미치는 안전한 지역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지역으로 선교사를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인도네시아의 농촌에서는 오늘날에도 기독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즉, 선교사들의 활동 지역은 대도시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는 거다. 그것도 아주 형편 없는 성적으로 말이다.
 
앞부분에서 이집트의 예를 들며, 회교도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된 배경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있었다.
 
배 고프면 물고기 잡아 먹고, 바나나 따 먹으며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나라에, 배를 끌고 침략해 들어 오더니만 어느새 주인 행세를 하고, 단물을 쪽쪽 빨아먹는 얄미운 족속들, 네덜란드. 화란 족들이 외치는 말.
 
"하나님 믿고 천국 가세요."
 
이들이 '권장'하는 기독교를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고운 시선으로 볼 리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식민지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다. 한 예로, '개와 토착민(인도네시아 사람)은 출입금지' 라고 하는 팻말이 붙은 상점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나님 믿고 천국 가. 하지만, 우리 가게는 오지마." 아마 이런 식이었을 거다.
 
이런 자존심 상하는 사회 분위기에  그 누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겠는가.
 
이슬람이 원래 개종 시키기 힘든 종교라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내에서 기독교의 부진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위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더 크게 작용되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다.

[출처 - 노매드관광청]

(전문은 여기를 클릭)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