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에서 말의 성찬이 오가는데.... 핵심을 짚은 글은 없어 보여 간단하게 첨언합니다.


일단, 의사자 지정에 관한 규정입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 범위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적용됩니다(「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조제1항 및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의2).

1) 강도·절도·폭행·납치 등의 범죄행위를 제지하거나 그 범인을 체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 사람
2) 자동차·열차, 그 밖의 운송수단의 사고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 사람
3) 천재지변, 수난(水難), 화재, 건물·축대·제방의 붕괴(崩壞) 등으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 사람
4) 천재지변, 수난, 화재, 건물·축대·제방의 붕괴 등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인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 사람
5) 야생동물 또는 광견(狂犬) 등의 공격으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 사람
6) 해수욕장·하천·계곡, 그 밖의 장소에서 물놀이 등을 하다가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 사람
7)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에 따라 구조행위를 목적으로 직접 구조현장으로 이동하거나, 구조행위 후 구조현장에서 지체 없이 주거지나 생업지 또는 구조요청을 받을 당시 있었던 장소로 복귀하는 경우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이동하던 중에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
8) 그 밖에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 사람
(출처는 여기를 클릭)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 제외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습니다(「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조제2항).

자신의 행위로 인해 위해에 처한 사람에 대하여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

구조행위 또는 그와 밀접한 행위와 관련 없는 자신의 중대한 과실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
(출처는 상동)



그런데 의사상자 지정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정여부 결정

보건복지부장관은 의사상자 인정여부의 결정에 대한 청구를 받은 때에는 의사상자심사위원회의 심사·의결을 거쳐 60일이내에 의사상자 인정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다만, 구조행위의 사실 확인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30일의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5조제4항).

보건복지부장관은 의상자로 인정하는 결정을 하는 때에는 부상 정도에 따른 등급을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5조제5항).
(출처는 여기를 클릭)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고려한다면 저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며 제가 언급한 "공평한 세상 오류(just-world fallacy)"에서 호남이 차별받는 이유가 있고,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이유가 있듯 피해자들도 피해를 당한 이유가 있는 한마디로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우스운 발상이죠.


정리하자면.....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 아니죠.

"관련부서에서 피해자가 피해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 맞죠.


형사 사건에서 '피의자가 범인임을 증명하는 것'은 누구의 몫? 형사? 피의자?


이런 기본개념들은 좀 탑재하고 주장해도 주장들 할 것. 이건 뭐 초딩들도 아니고 목의 핏줄만 돋운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유족들이 희생자들을 의사자로 선정하려면 '진상이 밝혀져야 하고' 따라서 유족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


아래는 실제 의사자 지정의 사례인데 과연 세월호 희생자들의 희생이 이들에 비해 훨씬 가벼운가요?
故 이수현 - 2001년 도쿄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추락한 취객을 도우려다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해 희생되었다.
故 김지연 - 2003년 8월 24일 새벽 3시 30분 시흥시 신천동의 한 놀이터에서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인 웬뚜안뚜(24)와 레휘황(29)이 귀가하던 여고생을 성폭행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제지하려다가 김 군은 웬뚜안뚜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인천 길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김지연군 살인사건 참조.
故 이용상, 허석희, 정봉조, 안상철, 김재후, 박연주, 람방 누르카효, 김종평, 하레파 유스푸 - 2010년 천안함 침몰사태 후 민간 어선인 금양호를 몰고 천안함 희생자 구조에 힘쓰다가, 선박이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어 사망했다.
故 올즈보이오강거, 다와 - 몽골인인 이들은 경기 광주시에서 2011년 집중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이웃집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배수구를 정비하다가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故 강신일 - 2013년 1월 24일, 제주시 소재 감귤 공장에서 동료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감귤찌꺼기 저장 창고로 들어갔으나 남아 있는 유독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故 이준형 - 2013년 7월,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에서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가 친구들을 구하고 사망했다.
故 양성호 -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에서 붕괴 후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음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다시 뛰어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
故 박지영, 정현선, 김기웅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승무원이었던 이들은 다른 선박직 승무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상황에서 학생 등 승객들의 구호에 끝까지 힘쓰다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해 사망했다.
故 오판석 , 박창섭 - 2012년 인천 페인트원료 창고 화재 때 추가 피해를 막으려다가 사망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추가 : 모히또님 지적처럼 세월호 특별법의 범위를 제가 착각하여 헛발질을 했고, 특별법 제정 반대 입장을 바꾸어 특별법 제정 찬성으로 입장을 바꿉니다. 모히또님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