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전쟁에서 천둥신 토르가 대부분의 거인들을 때려죽인 후에 극소수 남은 거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눈 속에 숨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얼음거인 길버트가 어느 날 깨어나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인간 세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마침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모두들 거인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지만 하하하라는 아이 하나가 뒤에 있다가 미쳐 피하지 못하고 길버트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거인은 방금 잠에서 깨어 배가 고프지 않았으므로 하하하를 데리고 장난을 치고 싶어서 말했습니다.

"요 꼬마야. 너희들 인간들은 석궁도 갖고 놀고 재판도 하고 영화도 만들고 기사도 쓰면서 온갖 짓을 다 한다면서? 너희 같은 놈들을 보면 내 피가 곤두선다. 너희들은 니들이 되게 잘난 줄 알고 있지?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제일 공.정.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근거를 보여주셔요." 하고 하하하가 말했습니다. 거인이 너무 잘난 척 하는 것이 아니꼬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수수께끼 내기를 하자. 각자 세가지씩 문제를 내서 내가 이기면 너를 잡아먹고..."
"좋아요. 그렇지만 내가 이기면 내가 아저씨를 잡아먹을 거예요."
길버트는 이 아이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헤벌죽 웃고는 수수께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게 뭐지?"
하하하는 얼른 대답했습니다.
"나이가 열 살이라는 거죠."
"맞았다. 그러면... 나는 그렇지만 너는 그렇지 않은 게 뭐지?"
하하하는 바로 '그건 바보라는 거야.'하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하하하라는 어린이는 무척 영리했기 때문에 다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십이 되도록 나이만 처먹었다는 겁니다."
"응. 그래. 그것도 맞았다."
거인은 한참 생각하다가 또 물었습니다.
"나도 그렇지 않고 너도 그렇지 않은 게 뭐지?"
"김명호!"
"김명호라니? 그게 누구냐?"
"그것도 모른다면... 이정렬!"
"이정렬? 응, 그것도 맞았다."

길버트는 기가 죽어서 하하하가 내는 문제를 기다렸습니다.
"똑같이 FTA도 하고 시위진압도 하고 재벌 퍼주기도 했는데 쥐새끼가 하면 나라를 망칠 매국행위지만 이 사람이 하면 구국의 결단이 되는게 뭐죠?"
"응. 그건 아무도 모를 거야. 당연히 너도 모를 테지."
거인은 쩔쩔매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알아요. 답은 노무현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게 뭐죠?"
"그야 나지."
"틀렸어요. 갈라진 벽 틈입니다. 그러면 이게 뭐죠?"

날개가 없는 새가 날아와
팔 없는 여자에게 붙잡혀서
손잡이 없는 프라이팬에 올라가
소금도 치지 않고 먹혀 버렸다.

길버트는 은근히 겁이 나서 하하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얘. 꼬마야. 누가 진짜 바보냐? 너냐, 나냐?"
"그런 건 전 몰라요." 하하하는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무튼 날개 없는 새는 눈송이, 팔 없는 여자는 해님입니다"
"그렇군. 그러면 네가 바보는 아닌 셈이군. 하지만 힘이 센 걸로 치면 어떨까? 모두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다고 한단다."
"그렇다면 그 근거를 보여주셔요. 지금 여기 있는 산을 밀어서 저 바다 밖으로 옮겼다가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이곳에 가져올 수 있나요?"
거인은 멍하니 산을 보고 있다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세상에 산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데도 없어."
"나는 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배웠어요.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 도니까 가만히만 있어도 저 산은 멀리 갔다가 돌아온다고요."
"가만있자. 그건 네가 학교에서 배운 거지만 좀더 쉽게 내 힘을 보여주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자 하하하는 옆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머리로 그 벽을 뚫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길버트가 그의 커다란 대가리로 집 벽을 힘껏 들이받자 나무와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구멍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거인은 숨을 헐떡이며 아무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하하는 그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 사이로 머리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셔요. 거인 아저씨. 이제 내가 이겼으니까 아저씨를 잡아먹을 거예요."

길버트는 그 말에 너무나 우스운 나머지 배를 잡고 뒹굴다가 그만 심장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인이 쓰러지자 도망쳤던 아이들이 그 시체 옆으로 다시 모여들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그 거인이 어린아이를 여럿 잡아먹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녀 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틀렸어. 이 거인은 착했어. 어린아이를 잡아먹지 않았단 말이야. 우리 이 거인을 위해서 묘비를 만들어주자."
그리고 막대기를 들어 눈에다가 다음과 같이 새겼습니다.

여기 얼음거인 길버트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는 비록 바보였지만 그 마음씨는 착했습니다.
머리가 좋아도 마음이 나쁜 사람보다는
길버트처럼 머리가 나쁘더라도 착한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