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6시부터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야권 침몰, 사즉생(死卽生)의 길은 있는가?'라는 주제의 합동세미나에 갔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코리아컨센서스연구원, (사)돌바내 등이 공동 주관한 행사이다.
 

주제발표도 세 분이 했고 그 밖에 토론자로 참석하신 네 분도 주제발표 이상의 분량으로 모두 3시간 이상 이런저런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다는 것은 어렵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어제 나왔던 얘기 중 기억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거기에 대한 내 의견을 붙이는 것으로 간단히 정리할까 한다.
 

우선 민주주의의 원칙이 잘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얘기한다. 새정련의 모태정당인 민주당 시절부터 당명에 '민주'라는 단어가 빠진 적이 없는데 요즘은 차라리 새누리당이 민주적 절차를 더 잘 지키는 당이라는 느낌이라고 한다.
 

당원이 없는 정당이라고 한다. 당이 이 지경으로 무너졌으면 당연히 당원들이 나서서 의견을 표명하고 뭔가 비상대책을 촉구할 만한데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당은 과두제 정당이며 당원의 재구성이나 당원 할당제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사실 이런 얘기가 나오면서 모바일 투표나 영호남 당원 간의 투표 가중치 얘기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모바일 투표는 기본적으로 당비 내는 당원들의 의지나 권리가 아닌, 당 밖에 있는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서 대통령/국회의원/지자체 선거의 공천 등 중요한 내용을 결정하겠다는 것 아니었나?
 

그렇게 죽어라고 당원 죽이기에 열을 올린 결과로 당원들이 아무도 발언하지 않게 된 것을 두고 '이놈의 당은 당원도 없나?'라는 소리를 하는 것은 적반하장도 분수를 넘은 것이다. 민주주의 원칙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1인 1표의 원칙이 아닌, 영남 대의원에게 호남보다 높은 표 가중치를 적용한 게 사실 아닌가? 그런데도 민주주의 원칙 운운하는 게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새정련의 중심에 뿌리깊은 반호남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호남 3선 이상은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몇 번씩 언급됐고 폭소와 호응이 뒤따랐다.
 

새누리당이 강남3구에서 의원들을 계속 물갈이했다는 것과 비교하는데, 비교를 하려면 영남지역의 새누리당 의원들과 비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에서 '영남지방의 다선 의원이기 때문에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나?
 

호남 지방의 다선 의원들을 무조건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물갈이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는 '호남 출신 다선의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의정활동의 미비함이나 지역 유권자들에 접촉 부족 등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호남'이란 이유로 다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지난 재보선에서 천정배 의원의 공천배제가 보여준 것은 새정련이 '호남 출신 다선 거물 정치인의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었나? 호남 사람들이 그런 메시지를 못 읽는다고 보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남 니들은 열심히 표나 주는 표셔틀 이상을 하면 안되고 대통령 후보부터 굵직한 자리는 영남 특히 PK가 계속 해쳐드셔야겠다는 메시지 아니었나?
 

당원이 없고 그나마 있는 당원도 늙어가는 새정련의 한계로 호남향우회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어쩌라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호남향우회는 투표를 하지 말거나 하더라도 새정련은 지지하지 말아달라는 얘기인가? 아니면 새정련에 얼굴도 비치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면 아예 호남 출신들이 전부 죽은 뒤에야 소위 진보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호남향우회가 싫고 호남이 그렇게 싫다면 이번에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지지해준 순천곡성 투표 결과에 대해 새정련 차원에서 '호남 유권자들의 대오각성을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는 성명이라도 내야 할 것 아닌가?
 

호남 니들 이정현 찍으면 예산도 싹 막아버리겠다... 이따위 싸가지 없는 소리 지껄인 그 주둥아리에 먼저 반창고나 붙이고 와서 호남당, 호남향우회 운운하는 소리를 하면 좋겠다.
 

호남 이야기야 그렇다 치고, 결국 야권의 몰락 원인과 대안에 대한 토론회일 텐데, 야권 몰락의 핵심 요인으로 오래 전부터 거론되고 있는 '기층 민중이 왜 새정련 포함 진보세력을 지지하지 않고, 부자 정당 새누리당을 더 지지하는가'에 대해서 거의 언급이 없는 것도 신기했다.
 

새정련의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니 내부 민주주의니 과두제니 하는 얘기는 결국 유권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정당의 문제이다. 정당의 내부 문제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존재 이유는 결국 특정 유권자 집단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야권의 몰락을 진단하는 것도 야권이 왜 기층민중의 외면을 받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런데 어제 토론회에서는 그 이야기가 없었다.
 

너무 언급이 없다 싶어서 내가 간단히 의견을 말했다. 지난번 대선 때 조선일보의 주폭 근절 캠페인의 예를 들어서 야권의 대안 없는 비판, 무질서에 대한 옹호 등이 주폭의 이미지와 얼마나 겹칠 수 있는지 얘기했다.
 

역사적으로 어렵게 획득한 근대국가의 법질서가 무너지고 소위 사회적 엔트로피가 증가할 때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깨시민이나 강남좌파 같은 가진 자들이 아니라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숨가쁜 기층민중들, 새정련이나 진보세력이 가장 집중공략해야 할 그 대중들이라는 점, 새정련이 보여온 모습은 그들에 대한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 그런 점들이 기층 민중의 외면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언주 의원이 지역구민들을 대상으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의견을 들은 것도 내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약사 등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세월호특별법을 반드시 관철시켜라'거나 '왜 그렇게 불철저하게 싸우느냐'는 의견을 제시한 반면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든데 세월호특별법으로 그렇게 오래 끌어야 하느냐'고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나 더. 새정련의 리더십 부재와 과두제는 결국 몇몇 그룹들끼리 떡고물 나눠먹기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게 어디에서 기인하는 현상일까?
 

작심하고 말하는데, 나는 지금 새정련이 김대중 당과 노무현 당으로 갈라져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정치노선의 근저에는 호남에 대한 증오와 저주가 깔려 있다.
 

그리고 현재 새정련의 중추를 이루는 세력들은 크나 작으나, 많으나 적으나, 강하나 약하나의 차이를 떠나 이 정치노선을 공유하는 세력들이다. 이런 정치노선 또는 철학을 갖고 결국 호남 및 호남 출신의 표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려니 어떤 실제적인 의사결정도 어렵다. 한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양두구육의 정치를 하는 셈이다. 좀더 심하게 말하면 정치 사기질로 먹고사는 집단인 것이다.
 

새정련 당사에는 김대중과 노무현 흉상이 나란히 놓여있다. 정체성은 노무현에 두면서 호남 증오에 대한 알리바이용으로만 김대중을 그때그때 동원하는 얄팍한 수작은 그만했으면 한다. 이렇게 양 극단의 정서와 가치관을 지닌 집단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있으니 결국 리더십도 민주주의도 실종되고 남은 것은 자기 세력 보존을 위한 타협과 야합일 수밖에 없다.
 

호남을 싫어하는 세력들은 양심적인 깨시민들을 중심으로 따로 당을 차려라.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본다. 미남 대통령 후보 문재인도 있고, 역대 최고의 총리이신 이해찬도 있고, 김대중과 호남에 대한 당신들의 심정을 가장 솔직 적나라하게 표현하신 유시민 작가님도 계시고, 노동자 계급성의 권화이신 심상정 노회찬 제위도 계시지 않은가?
 

김대중 추종자들은 냄새 나는 호남 난닝구 홍어들이니 고상하신 깨시민들은 그런 무리들과 같이하기 어렵다는 것이 당신들의 솔직한 심정 아닌가? 그렇다면 난닝구들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고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지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버려두고 당신들은 당신들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따로 갔으면 한다.
 

어제 토론회의 실제 초점은 '새정련을 어떻게든 고쳐서 재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정당의 틀을 짤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새정련에 더 이상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되고, 완전히 새로운 틀을 짜는 게 맞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고, 그 결론에는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결론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나 논거, 착안점이 다르면 구체적인 실천에 들어갔을 때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가진 세력들끼리 다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어제 토론회는 야권 재편 논의의 출발점으로서 향후 해결하고 건너야 할 수많은 문제의 꼬리 정도가 드러난 자리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