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도 있고 후자도 있겠지만


저는 후자인데요


인간 프란치스코 교종이 정말 좋은사람 같습니다.


천주교성당의 신부들이 마피아와 결탁해 부패하고 성추행을 일삼고 대중들에게 인기가 떨어질때즘 취임해 성당들을 개혁하고있죠


 결과는 전세계 슈퍼스타~


역대교종들중에서 가난과 결혼한 원조 프란치스코 교종 다음의 위치랄까?? (대중성까지 +하면 현교종이 세계역대급이긴 하죠)


역대 교종들중 별루인 사람들도 많으니.....


요한바오로 2세 교종과 함께 이두명의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저에겐 역대급이긴 하네요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07942000530804006

265명의 교황 가운데 한국을 찾은 교황은 두차례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가 유일하다.

역사적인 첫 방한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 5월 3∼7일이었다. 한국 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식이 계기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을 통해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요한 바오로 2세는 광주·전남과 인연이 깊다.

바오로 2세는 한국 첫 방문시 광주를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1980년 5월의 광주 아픔을 기억하며 광주시민들을 위로했다. 교황은 특히 5월 4일 광주 방문 때 대규모 미사 집전 행사장인 무등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5·18 상처가 배어 있는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거쳐 갈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지난 12일 윤장현 광주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시 무등경기장 자리에 신축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외야 출입구 앞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광주 방문 기념비 제막행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또 “한국에서 가장 소외된 곳을 보여달라”며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록도 한센인들을 찾았다. 교황은 한센병 환자들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친히 고통을 겪으셨던 예수는 여러분과 함께한다”고 격려하고 축복했다.

첫 방한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비행기 트랩 아래 엎드려 땅바닥에 입을 맞추던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순교자의 땅”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한국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했다. 또 도착 성명에서는 ‘논어’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오로 2세는 첫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순교자 103명을 성인으로 모시는 역사적인 시성식을 주례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줘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는가 하면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들과의 대화 행사에서는 청년들이 ‘군사독재 정권의 실상을 알리겠다’면서 들고 온 최루탄 상자를 흔쾌히 받는 등 열린 모습을 보여줬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10월 5∼8일 두 번째 방한했다.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위해서였다. 65만 명이 몰린 여의도광장 행사에서 남북한 화해를 기원하는 평화메시지를 낭독했다.

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축하 메시지를, 2002년 태풍 루사 피해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등을 당했을 때는 위로 메시지를 보내오는 등 한국에 관심을 보여왔다. 또 2000년 3월 바티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권유하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뒤로 교황청은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고 북한에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화해 분위기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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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