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님의 떠들썩한 행차가 지나갔다. 바티칸의 개혁을 시도하다가 힘에 붙여 스스로 물러나 '사퇴한 일이 제일 잘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전임 교황에 비해서 이번 교황은 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종교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지위나 인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학적인 사상이다. 어떤 신학에 영향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 그의 행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 교황은 해방신학의 모판인 남미 출신이다. 해방의 신학의 상징적 존재인 토레스 신부는 해방의 신학의 정신에 입각하여 진정한 사제가 되기 위해서 남미 가톨릭의 위선의 옷, 형식적인 성직자의 옷을 던져 버린 것도 새로운 소명을 위하여 제도 밖으로 나갔다. 군부독재세력에 맞서 해방군의 게릴라 부대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 하던 중에 장렬한 죽음을 맞았던 토레스 신부가 자신의 해방군에 참여를 ‘나는 진정한 사제가 되기 위해서 성직자의 옷을 벗었다’고 선언했었다. 

현 교황은 무시무시한 아르헨티나 군부독제 시절 대주교로 있으면서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부들과 군부독제와 공생관계를 교묘하게 잘 유지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해방신학의 의미를 잘 알고 그의 사목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교황이 보여주고 있는 가난한 자, 약한 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성직자로서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행동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상식에 충격을 받는 현실이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후임 추기경들에 비해서 존경깨나 받았던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관훈클럽에서 초청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진행자가 마지막 질문으로 '추기경님은 어느 때는 진보주의자, 어느 때는 보수주의자 같아 보인다. 어느 쪽이냐?'고 묻자, '나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한국 천주교를 보호관리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비교적 정직하게 대답을 했었다. 본질적으로 추기경, 교황 등은 그런 자리이다.


카톨릭의 현 교황의 선택은 추기경 115명 중 28명이 이탈리아 출신인 교황선거인단에서 455년간 교황 자리를 독식해 오다 지지난 교황 때부터 35년 동안 놓친 교황직을 이번에 남미 출신이면서도 완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정도로 혈통상으로는 100% 이탈리아인인 새교황을 선택한 것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보수적 유럽과 남미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60 년대 말 ‘세속도시’라는 책을 통하여 종교가 없는 세속화 사회의 도래를 내다보았던 하버드대의 하비 콕스(Harvey Cox)가 그 후 한 동안 남미의 아마존 일대를 헤매고 다니더니 10년 쯤 후에는 제 정신이 들었는지 [세속도시의 종교: 포스트모던 신학을 향하여](Religion in the Secular City: Toward a Postmodern Theology)에서는 종교가 소생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의 소멸보다는 종교의 재생(rebirth)을 이야기 하면서 이 시대에 기독교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학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하나마나한 옳은 소리를 했다.


원래 학자란 그런 것이다. 하나 마나한 소리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입증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 그들이 밥 먹고 하는 일들이 아닌가? 학자들도 인간인지라 밥을 먹어야 일을 하니까 천하의 하비 콕스도 96년도에 한국에 와서 조용기 목사한테 용돈 좀 받고서 순복음 교회를 방문하고 헛소리 좀 하고 가셨다. 이 사건은 조용기 목사의 뒷설거지꾼으로 선발된 당시 국제신학원(순복음 교회 구내에 있는)원장이었던 이용훈 목사의 주가를 올려 준 사건 되겠다.


그런데 콕스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을 주도할 두 후보 선수로서 근본주의와 해방신학을 추천 하면서 해방신학을 포스트모던 시대 선두에 설 기독교 신학의 MVP 선수로 평가했다. 왜냐하면 해방신학만이 포스트모던신학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는 반현대적이며 포스트모더니티에 저항적인데 반해, 해방신학은 사회정의, 가난한 자의 권리, 구원에 대한 공동적 이해, 온건한 개혁으로부터 혁명적인 것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의 신학에서 출발한 기초 공동체와 근본주의의 결정적 차이는 미래 지향적이냐 과거 지향적이냐 하는 것이다. 근본주의 운동은 고립된 개인으로 이루어진 대중에게 호소하는 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작된, 기초 공동체 운동은 철저히 공동체적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공동체’ 인 것이다. 공동체적 연대성이 없는 것은 아무리 고상해 보여도 정신적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개신교나 천주교나 할 것 없이 강남에 있는 부자동네 교회들처럼 교회가 공동체적 연대성을 잊어버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등을 지고 부자 편에 서는 순간 부패는 곰팡이처럼 퍼진다. 이번 교황의 방문은 곰팡이 낀 한국천주교에 소독약을 살포하고 간 샘이다. 과연 그 약효가 얼마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소독약은 어디까지 소독약일 뿐 수술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