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출발과 국가의 탄생은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국가를 만들어낸 이념과 정신이 바로 근대화의 사상이고, 근대화 정신의 현실적 구현체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왕정체제의 그런 국가가 아니라, 평등한 상호계약의 정신에 입각하여 시민과 시민, 국가와 시민이 헌법과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서로를 규율하는 국가이다. 이런 국가의 개념이 흔히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로 번역하는 ‘National State’이다.


저 National State를 민족국가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국민국가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한국처럼 오랜 역사적 공동체를 유지해오고 또 식민지 시대를 거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경우 Natio...nal State를 단일한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민족공동체 국가로 이해하려는 편향이 생기기 쉽다. 하지만 저 개념은 본질적으로 법적으로 정해진 영토 안에 사는 시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역시 법적으로 규정한다는 얘기이다.


혁명 이전 레닌 영도 하의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당이 비합법조직을 운영하는 핵심도구로 활용하던 NPN(National Political Newspaper)을 ‘전국적 정치신문’으로 번역한다. 이것 역시 nation이 법적으로 규정된 영토의 개념을 포함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National State의 개념을 설명하자면 차라리 근대국가 또는 법치국가란 용어로 의역해 부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 근대국가는 결국 서양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숙성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아무리 복잡한 논리를 동원한다 해도 결국 헛수고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제대로 근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근대국가를 낳은 서양의 역사와 전통, 합리주의의 정신을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정치 시스템 가운데 가진 것 없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 즉 기층민중에게 근대국가라는 체제가 어마어마한 성과이자 무기라는 점이다.


근대국가의 법치체계를 구성하는 내용은 신체의 자유, 사상 및 양심과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으로 다양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 어긋나게, 법이 규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절차에 의해서 경쟁하고, 그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질서를 정착시킨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질서가 없는 상태에서는 만인이 만인을 향해 투쟁하게 된다. 더욱 치명적인 사실은 그 투쟁의 승부가 폭력과 기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가장 사납고 힘센 자, 가장 약삭빠르고 뻔뻔한 자가 승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힘도 지식도 재산도 갖지 못한 기층 민중이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공동체가 점차 진보와 개선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괜찮은 사람들은 다 몰락하거나 빠져나가고 온갖 인간 쓰레기들이 기승을 부리는 레드오션 즉 막장 드라마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회인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매우 자주 아니 너무 자주 볼 수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유용한 시스템이 바로 근대 국가일 수밖에 없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공무원과 행정부 등 공권력의 신뢰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우리나라의 공권력이 신뢰를 사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근대적 공권력이 존재하는 핵심 근거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힘센 자의 폭력, 약삭빠른 자의 편법을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기능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 좌파가 공권력 자체의 존재 근거를 부인하고, 신뢰를 떨어뜨리고,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기층 민중의 신뢰를 살 수는 없다. 진보 좌파가 근대국가의 공권력을 뒤흔들고 무질서를 만들어냈을 때의 결과물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파괴적이고 끔찍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층 민중들이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 좌파에게 권력을 맡길 경우 미약하게나마 간신히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근대국가의 자유 보호 기능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층민중이 공정한 경쟁의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기대할 수 있는 곳은 근대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시스템일 수밖에 없기때문이다.


노무현정권 이후 흔히 강남좌파라고 불리는 중상층들이 진보 좌파에 대해서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정작 기층민중들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현재의 정부 기구나 구성원들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장치 외에는 자신들을 보호해줄 현실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정부와 공권력이 무력해지고 짓밟히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기층민중이 근대국가의 공권력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결국 자유의 확대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헤겔은 ‘인류의 역사는 자유의 확대 과정’이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근대화는 인류 역사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자유의 한 귀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유의 성격은 ‘~으로부터의 자유’ 즉 방어적인 차원의 자유이다. 재산 등 소유권에 대한 침해, 신체에 대한 구속이나 억압, 언론과 사상에 대한 억압과 침해 등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현재까지 이러한 방어적인 차원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근대적 개념의 법치 질서에 의해 수립된 국가와 공권력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 진보 좌파들이 국가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방어적인 차원의 자유는 최대한 약화시키면서 보다 공격적인 차원의 자유 즉 ‘~을 향한 자유’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방어적인 차원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 즉 서민들 괴롭히는 범죄나 적폐, 폭력 등에 대해서는 공권력이 손 놓고 구경하라고 요구하면서도 경제민주화 등 공격적인 자유를 위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얘기이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에리히 프롬의 견해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자유를 과연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로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그러한 구분 자체가 상당히 정치적이고 저널리즘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하지만 적극적인 자유라는 게 존재하고 그것이 정치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일단 인정한다 해도 현재 대한민국 좌파가 경제민주화니 하는 적극적인 자유를 정치적 목표로 삼는 것은 황당하다고 본다. 기본적인 질서를 제대로 세우는 일은 결사적으로 방해하면서, 그 질서가 탄탄하게 자리잡은 뒤에나 비로소 가능한 목표는 지금 당장 실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공무원 등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이렇게 신뢰도가 낮은 공무원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은 사실 방어적인 차원의 자유 즉 ‘~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키고 확보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과 신뢰도가 필요한 적극적인 자유 즉 ‘~을 향한 자유’를 확대하는 일을 현재의 공무원 집단에게 맡기는 것은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도둑 고양이에게 어물전 맡기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도둑, 사기꾼, 깡패 잡고 나라 지키는 일부터 제대로 하도록 필요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그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공무원들이 이 일을 최소한 자기들 뱃속 채우는 데 활용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공공성을 높이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사회적 노력과 비용,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솔까말, 이러한 프로세스만 제대로 정착되어도 우리나라는 경제민주화니 뭐니 하는, 허공에서 뜬 구름 잡는 목표 없이도 지금보다 백 배쯤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