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새누리당 같은 부자 정당, 보수 세력을 지지할까? 아마 우리나라의 좌파, 진보, 새정련, 깨시민, 노빠 등의 공통된 숙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되지 않는 수수께끼인 것 같다. 1988년 이후 공식화된 진보세력의 합법정당 운동이 부침을 거듭하다 결국 총체적인 좌절로 결론이 나고 있는 것도 결국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내놓지 못한 탓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먼저, 1984년인가 85년에 목격했던 사건이다.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어 호남선 고속터미널을 찾았다. 느닷없이 구호 소리가 들리더니 대학생 수백여명이 고속터미널 앞 대로를 가득 메우는 것 아닌가? 이들은 군부독재 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큰 길을 몇 번 왕래하더니 드디어 터미널 앞 파출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도블록을 깨고, 아마 화염병도 몇 개 날아간 것 같다. 공격은 기껏해야 2~3분 정도 지속됐지만 파출소 순경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채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그 이전부터 시가전에 나서서 투석 이상의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정작 내가 동원(?)되지 않은 데모대의 대열에는 선뜻 뛰어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학생들의 구호에 몇 번 같이 손을 들어 동조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사실 그 데모 대열을 이끄는 동(리더)이 내가 다니던 어떤 운동권 교회에서 안면이 있는 서울대생이었지만, 그런 자리에서 아는 척하기도 어려웠다.


의외의 사태는 학생들이 파출소에 돌을 던지면서부터 벌어졌다. 그 이전까지는 그냥 시위 대열을 신기한 듯 구경하던 시민들이 투석 행위를 보면서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런 나쁜 놈들 봤나, 이런 소리가 몇몇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오더니 그 중 몇 명이 길거리에 뛰쳐나가 학생들이 던져 어지럽게 길거리에 나뒹굴던 돌맹이를 집어들고 시위 학생들에게 역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당수 시민들이 거기에 동참했다.


학생들은 이 의외의 사태에 놀란 듯 우왕좌왕하더니 금방 전열을 수습해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공권력이 빠진 상태에서 학생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투석전이 벌어진 것이다. 나로서는 도대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그저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돌맹이를 맞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행히 내가 알던 그 서울대생이 도중에 나서서 학생들에게 투석 대응을 중단시키고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서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사태는 더이상 확산되지 않고 학생들은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아마 금방 해산했으리라.


하지만 나로서는 이 장면이 어떤 배신감이나 충격보다 그 이후 오랫동안 궁금증을 자아내는 의문으로 남았다. 내가 그때 보았던,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던 시민들은 나이도 데모 학생들보다 별로 많지 않아 보였고 옷차림 등을 봐서도 결코 유복한 계층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정치 의식이 깨어나지 못한 민중들의 퇴행적 행동이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하기에는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1987년 6월 항쟁도 끝나고 그해 겨울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84학번 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비록 짧기는 했지만 이른바 공장 훈련을 한 달 가량 시켜준 일도 있는 후배였다.


별로 길게 얘기할 자리가 아니기는 했는데, 이 친구가 "우리나라에서 40 넘으면 다 죽어야 하고 어쩌구저쩌구" 하는 얘기를 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세대론으로 전선을 설정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얘기가 더 이어지면서 이 친구는 "앞으로 모든 권위를 다 타파해야 한다"고 몇 번씩 강조하는 것이었다.


후배이고, 약간 학습을 시켜준 적도 있지만 그건 아주 짧은 기간이었고 실제로 이 친구를 포함한 후배들에 대한 이른바 정치학습은 학생운동의 다른 비선 라인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날고긴다는 사상적 기초를 갖고 있다는 그 학생운동 조직은 애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키는 것일까?


길게 얘기할 수는 없었고, 나는 그 후배에게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올바른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지, 모든 권위를 깨부수자는 것이 아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자리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후배는 내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았다. 그 후배의 사고방식을 굳이 규정한다면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편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그렇게 단어 한두 개로 정리하고 말기에는 뭔가 굉장히 골치아픈 문제가 잠재해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왜 기층 민중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지, 아니 지지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를 때 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것은 당시 내가 보았던 기층 민중들과 이른바 운동권의 태도가 이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국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민중들이 그 국가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운동권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와 같은 비극적 몰이해와 어긋남을 낳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