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프로야구기록'만으로만 보면 선동열 현 기아감독보다 처지지만 경기외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선수 고 최동원.


그의 빨갱이 기록을 아래에 발췌한다.


그는 빨갱이 프로야구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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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비겁하게 살지 않았던 부산갈매기 

최동원 선생


(1958년 5월 24일 ~ 2011년 9월 14일)

 

1986년 - 모교 연세대 방문시 군부독재타도 시위중인 후배들을 지지하고 시위에 참여
1987년 - 6월 민주화 항쟁시 부산대 대학생들을 지지하고 시위에 참여
1988년 - 선수협노조 결성을 위해 노무현 변호사, 문재인 변호사에게 법률자문
1988년 - 선수협노조 결성
1988년 - 부산일보 노동조합 편집권 독립 투쟁 파업시 성금 100만원 전달 및 노조원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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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약력 중 '1988년 - 선수협노조 결성을 위해 노무현 변호사, 문재인 변호사에게 법률자문' 부분은 사실관계가 다르다.


문재인이 법률자문을 한 것은 맞지만 노무현이 법률자문을 한 적이 없다.


트위터 아이디 @MKTKIM은 4일 "고인이 된 최동원 선수가 처음 선수노조 만든다고 했을 때 도움을 준 고문변호사가 바로 문재인 이사장님이라고 하네요…역시”이라고 올렸습니다. @MKTKIM는 또 "최동원 선수와 문재인 이사장님의 인연은 힐링캠프에서 나온이야기인데 편집되었다고…최동원, 문재인, 이경규 모두 부산출신이라 추억을 떠올리다 나온 이야기인 것 같네요. 암튼 공지영 작가가 알티하니 대박났군요”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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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협 관련하여 기억나는 어록 중 하나는 지금 아크로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산하님'이 은퇴한 전 한화 소속 송진우 당시 선수협 회장에게 들었다는 이야기.


"스타인 우리에게도 이렇게 홀대하는데 후보 야구선수에 대한 푸대접은 오죽하겠는가?"



글쎄..... 미국 메이저리그건 한국의 프로야구건 '선수노조들' 활동의 결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만 가중되었다는..... 한국의 노조활동의 '결과'와 같다고 하면 선수노조들의 고군분투를 너무 폄훼하는 것일까?




각설하고,



그런데 이 선수협 관련하여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 드립'과 관련하여 '선동렬 드립'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아 한마디. 물론, '이호성 드립'만큼 이호성의 범죄 행위와는 관계없는 악질적인 드립과 빈도수에 비하여는 강도가 '적지만' 일부 일베충들이 선수협 관련한 '팩트와 다른 주장'을 하는 것 같아 아래에 기록을 인용한다.



글쎄.... 근거없고 악질적인, 설사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비난의 양태가 악질적인 호남마타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프로야구에서도 빈번하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특정 프로야구 감독 또는 선수는 단지 '호남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마타'가 인터넷에서 횡행하니 말이다. 물론, 빈도수는 적지만 단지 '대구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타가 이루어지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선수협 설립을 배신한 선동열?


선동열은 선수협과 관련하여 양준혁의 주장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양준혁은 "나고야에 전화를 서른 번도 넘게 하고 메시지도 남겼는데 연락이 안 됐다. 배신감 컸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동열은 이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지금까지 하지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양준혁의 언플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동열의 귀국시에 양준혁과 만나 찍힌 사진 또한 존재하고 선동열은 양준혁을 피하지 않았다. 해외리그에서 은퇴를 준비하던 선수에게 선수협 설립의 책임을 묻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선수협 설립 시에 공헌을 한 송진우의 경우 선수협과 관련해 선동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양준혁의 선수협 언플은 후에 강병규와 최익성,김광현 등 선수협으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선수들의 언급으로 진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2011년 10월, 강병규가 트위터에 올려 생긴 파동에 의해 당시 전모가 조금 드러났다. 이에 의하면 양준혁 주장처럼 선동열을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정황이 드러난다. 이에 대해 당시 선수협에 참여했다가 구단측으로부터 일방적 보복을 당한 최익성도 강병규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고, 당사자인 양준혁은 이에대해 반박하지 않고 묵답하고 있어서 강병규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형편이다. 자세한건 강병규 항목 참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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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