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가 이정희에게 ‘종북’이라고 했다고 해서 이정희가 변희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한 2심 판결이 지난 주말에 있었습니다. 2심을 담당한 고의영 판사는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1,500만원을 이정희에게 배상할 것을 선고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솔직히 저는 이번 판결이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1. ‘종북‘의 개념을 사회 통념을 배제하고 자의적으로 규정, 그리고 그 규정과 판결도 모순

이번 2심 판결문은 판결이 난 지 4일이 지난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어 고의영 판사가 변희재 패소로 선고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단편적으로 흘러나온 고의영 판사의 말로 대강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의영 판사는 "분단 현실과 국가보안법이 있는 현 상황에서 종북(從北)이라는 용어는 조선노동당을 추종하고 헌법의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는 뜻‘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종북‘의 개념을 사회 통념상 인식되는 종북 개념이나 변희재가 사용한 ’종북‘의 개념과는 달리 협의적 개념으로 한정짓고 있습니다.

‘종북’ 이라는 개념은 정확히 규정되지 않은 것으로 학문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가 강한 것인데, 재판부가 그 의미를 자의적으로 협의로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은 온당하다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변희재가 이정희를 ‘종북’이라고 불렀을 때의 그 의미는 고려하지도 않았을 뿐아니라, 사회 통념상, 그리고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인식하는 ‘종북’의 개념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그 개념의 범주가 상당히 넓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 듯합니다.

1심 재판부도 "종북이라는 표현 자체는 누군가의 행동과 발언 등을 토대로 평가한 특정인의 대북관을 의미한다"며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에 대해서까지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인정했었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들도 ‘종북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만한 단어가 아니다. ’종북‘이나 ’주사파‘라는 말은 정치적 대상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으로,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이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사용되는 말이지 명예훼손인지 아닌지를 따질 말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 통념은 반영하지 않고 그리고 평가한 특정인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판사의 자의적 해석이 판결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제 이석기의 내란음모 및 선동에 대해 2심 재판부는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지만, 내란선동에 대해 유죄를 내리고, 이석기에게 9년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통진당의 핵심 정당 원리인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적(利敵) 표현으로 보고 유죄로 판단했지요. 진보적 민주주의는 정부가 통진당에 대해 위헌 정당이라며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면서 내세운 통진당의 핵심 강령으로, 북한 김일성·김정일 연설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본뜬 것입니다.

고의영 판사가 정의한 종북(從北)이라는 개념인 조선노동당을 추종하고 헌법의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는 뜻으로 보더라도 이석기의 재판을 담당한 1,2심 재판부나 정부도 이석기와 통진당은 ‘종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석기와 통진당 일부 당원들은 명백히 헌법의 기본 질서를 위협했고, 이정희는 북한 김일성의 연설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핵심 강령으로 하는 통진당의 대표이며, 그리고 헌법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내란선동을 한 이석기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정희는 고의영 판사의 ‘종북’ 정의에 따르더라도 명백히 ‘종북’입니다.

고의영 판사는 이석기의 1,2심을 담당한 판사들이 이석기를 내란음모나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통진당을 정당해산 신청하는 것이 이유가 없다고 보는지, 나아가 정부의 이런 정당해산 신청도 이정희나 통진당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의영 판사의 판결이라면 이정희가 정부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소송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종북’을 타인의 내면을 들여봐야 입증할 수 있는 단어이고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야 사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

고의영 판사는 “우리나라 현실상 종북이라 지칭되면 반사회적 인물로 몰릴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 증거 없이 종북·주사파라 부르는 것은 적대 세력으로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말하면서 종북에 대한 구체적 증거없이 상대를 종북으로 부르는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종북’은 어떤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당의 정치인의 정치적 성향을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상대의 내면을 들여봐야 입증할 수 있는 단어에 대해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야 사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넌센스이지요.

고의영 판사의 논리대로 라면 ‘수구꼴통’, ‘극우’, ‘친일파’, ‘노빠’, ‘박빠’ 등의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단어들도 어느 누구한테에게도 붙여서는 명예훼손감이 됩니다. 저런 식의 표현을 구체적 증거로 입증할 방법이 없는 한, 그리고 상대가 부정해 버리면 그만인 한, 명예훼손으로 거액을 물어줘야 합니다. 심지어 ‘차떼기 당’이라고 조롱당했던 과거 한나라당도 이런 표현을 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소송해도 고의영 판사는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할 판입니다.

변희재도 2심 판결을 보고, “재판부가 제시한 ‘종북’ 기준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을 종북이라고 했어도 패소했을 것이다‘고 반박했지요.

일반인도 아니고 공당의 대표이며 정치인인 공인에 대해 사회적 통념으로 인식되는 ‘종북’이라는 정치적 표현을 한 것이 명예훼손이라면 이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심히 훼손한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3. 이정희는 국민들의 평가(검증)를 거쳤으니 ‘종북’으로 불려서는 안된다?

고의영 판사는 이정희 대표에 대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등 상당한 평가를 거쳤는데, 종북으로 단정될 근거가 없다"고 말하면서 변희재에게 벌금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이정희가 어떤 평가를 받았다는 것인지 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정희는 비례대표로 통진당(민노당) 국회의원을 한 적은 있지만, 지역 선거로 국민들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통진당은 정부로부터 정당해산 신청을 당한 상태이며, 사법부로부터는 이적행위의 정강을 가진 정당으로 심판받았음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이정희는 오히려 부정적 평가를 받은 셈이 됩니다.

이정희는 18대 대선 후보로 출마했지만 중도에 사퇴를 해 국민들로부터 직접 평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출마의 목적을 박근혜의 당선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밝힌 만큼, 박근혜가 당선된 이상, 이정희는 국민들로부터 불신임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마당에 이정희가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으로부터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지만, 그 ’상당한 평가‘의 주체나 그 내용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저런 식으로 자의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판결의 근거를 삼았다는 것은 한심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4. 정치인은 ‘종북’ 이라고 써도 되고 일반인은 안된다?

사법부는 이정희에게 ‘종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새누리당 이상일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정치상황에 대해 발언한 것으로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수사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도 용인됨으로 이 같은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고 패소 (이상일 전 대변인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똑같이 ‘종북’이라는 표현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인 변희재에게는 명예훼손으로 1,500만원 벌금형이 내려지고 정치인 이상일에게는 무죄가 내려지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정치인이 일반 국민들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있으며,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같은 정치인에 대해서만 허용된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이런 불공평한 판결이 같은 사법부에서 내려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당혹할 수밖에 없습니다.


5. 이번 판결이 심각한 이유

고의영 판사의 논리와 판결이 최종적인 사법부의 판단(대법에서도 고의영 판사의 판결이 인정된다면)이라면 앞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대두될 것 같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매우 위축될 것이며, 무수한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되어 사법부의 업무가 마비될지 모릅니다. 표현의 자유도 심각하게 도전 받게 될 것이고, 인터넷이나 SNS에서 자기검열이 지나쳐 글 쓰는 것 자체를 기피하게 되어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사그라들 것입니다.

문창극에 대해 ‘친일파’, ‘극우’라고 표현한 언론들이나 정치인, 그리고 정치평론가들, 네티즌들을 상대로 문창극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하게 되면 문창극은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희에 대해 종북이라고 표현한 것에 비한다면 문창극에게 ‘친일’, ‘극우’라고 한 것은 그 근거가 매우 부실하고, 명예훼손의 정도도 훨씬 심각한 사안이지요. (KBS의 발췌 왜곡 보도는 고의영 판사의 논리를 떠나 명백한 명예훼손감입니다.) 고의영이 담당 판사라면 문창극은 200% 승소에 그 배상금도 상상을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종북'의 개념과 기준에서 이정희를 '종북'이라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종북'으로 볼 수 없는지요?
이정희가 여러분의 기준에서 '종북'이라고 판단되어 이정희를 '종북'이라고 표현하면 명예훼손이 된다고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