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랑하는 여친이나 남친 사진을 스마트폰에 넣어 두신 분들 중 보는 재미를 위해 사진에 포샵질을 한 분들은 안계실 것이다. 그러나 매력을 느끼는 정도의 연예인 사진이라면 그 사진에 얼마간의 포샵질이 되어 있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그렇듯이 포샵질도 정도 문제이다. 나는 잡티 제거 정도의 포샵질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제재로 한 창작물의 경우 그 창작물은 노골적으로 일종의 사이언스 픽션으로서의 가상역사물이 될 수도 있다. 가상 역사물은 역사물이 아니므로 역사물의 잣대를 들이대 비평할 수는 없다. 문제의 창작물이 가상역사물이냐 역사물이냐는 그 창작물이 문제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정설적 해석/기술을 존중하느냐 아니면 체계적으로 거리를 두느냐에 달려 있다.


영화 명량이 체계적으로 가상역사물로 창작되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상업적 대중영화라는 미명 하에 진지하게 역사물로 의도되지 않은 역사물이다.  물론 비평이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잣대만을 예술작품에 들이댄다. 상업적 대중영화는 애초 예술을 노린 것이 아니니 예술의 잣대를 들이대 평가하는 것은 범주착오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 감수성, 가치관, 믿음에 영향을 끼는 모든 것들은 동일한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중예술에 대해서도 단순히 흥행요인을 설명하는 것 이상의 작업이 들어가는 비평이라는 것이 행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를 느꼈는지 여부가 따져야할 유일한 것이라면 영화제나 영화비평이라는 것은 의미없는 짓거리이고 내가 요러저러하게 본 영화를 남들은 어떻게 보았는지 관심갖는 것도 넌센스이다.


상업적 대중영화에는 영화적 재미를 위한 수많은 장치들이 있다. 그 장치가 제 역할을 해서 흥행 성공의 한 요소가 되었는지 여부와 그 장치들이 하나의 창작물로서의 그 영화의 완성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영화 명량에서 얼마든지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는 전투와 그 전투를 주도한 인물의 행위가 얼마나 그 역사적 사건과 그 역사적 인물에 대한 최상의 해석과 기술에 부합하느냐이다.


사료는 세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사건과 인물의 기본 성격이나 주요 진행과정을 명확하게 해명해주는 사료도 부족하다. 이 경우 얼마든지 알려진 최상의 사료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부나 기둥의 일부를 허구적으로 추정해 (채워) 넣을 수 있다.  반면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위해 문제의 사건이나 인물의 주요 측면을 사실이 아닌 것, 또는사실일 개연성이 극히 적은 것들로 구성한다면 이것은 역사물의 기본요구를 어긴 것이다.


물론 문제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이 우리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다면 - 즉 내 여친이나 남친이 아니라 약간의 매력을 느끼는 연예인에 유비될 수 있는 정도라면  - 허구적 요소가 얼마나 최선의 사료를 존중하는 바탕에서 이루어져 있는지 따지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이다. 시간 낭비가 아닌기 위해서 그 사건과 그 인물은 남친/여친급이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게 어필하는,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중 하나이어야 한다.  이순신과 그가 주도한 전투들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그런 존재 아닌가? 도를 넘은 허구적 화장이 필요한 존재인가?


나에게 이순신과 그가 주도한 전투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존중되어 마땅한 객관적 위엄을 갖추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허구적으로 화장되든 내 킬링 타임에 기여하기만 한다면 상관없다는 분들한테는 이 글은 아무런 호소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또, 포격전과 그 뒤를 이은 공성전 형태의 전투라면 몰라도 영화에서 여러 번 묘사된 수준의 백병전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에 아무런 강력한 근거도 없다고 믿는 분들한테도 그러할 것이다.


영화 명량의 흥행요인은 아주 단순한 것같다. 화끈하고 멋들어진 구국의 행동면에서 최고의 영웅급인 인물을 가상을 통해서라도 눈 앞에서 보고 싶은 열망이다. 특히 미국에서 영웅물들이 많이 나오는 것과 별 다르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인물과 그런 존재에 대한 열망이 대중 사이에 움터 나올 정도로 한국과 미국의 현실이 지리멸렬하고 졸렬한 인물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열망에는 뭔가 자기반성력이 결여되어 있는 듯 하다.


그 자체로 이미 시대착오적인 구국의 리더로서의 박정희의 긍정적 이미지가 박근혜 당선으로 이어지는 단순논리의 허위성과 그 열망의 단순성, 역사적 사실과 인물의, 우리가 그 자체로 존중해 마땅한 객관적 위엄에 대한 무신경함 사이에는 어떤 친화성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