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도 질투를 한다. 요즘 다니엘 바렌보임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28세로 활을 놓아버린 그의 반려자 자크린느

듀 프레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42세로 생을 마감- 그녀의 생전, 두사람의 연주모습과 연주 음악을 새삼 대하게 되었다. 자크린느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연주는 천하명연주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하겠다. 엘가의 첼로협주곡, 자크린느의 연주를 듣고

로스트로포비치는 자기 연주목록에서 이 곡을 제외했다고 한다. 자크린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 연주 역시 하이든

협주곡 연주 못지 않게 천하 명연주이다. 거의 존재하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만약 그 음반이 LP로 나와 있다면

아마 보물급이 될 것이다. CD도 구하기 쉽지 않다.

다니엘 바렌보임도 올라운드 풀레이어로 피아노의 광범한 연주목록을 자랑하고 있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음반도 흔들림 없는 단정한 연주로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베토벤은 거의 그의 주종목 역할을 한다. 쇼팽연주도

자주 하고 있고 멘델스죤의 <무언가>는 아주 일찌기 전곡음반을 남긴바가 있다. 최근에는 지휘로도 큰 영향력을 행

사하고 있다. 이 두사람의 결합은 너무 특출한 두 재능의 결합이어서 사람들의 사나운 질투를 유발한 건 아닌가. 하

느님도 너무 뛰어난 두 재능의 결합,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운 듀엣의 모습을 더 이상 참고 지켜볼 수 없었던 건 아닐

까? 유 튜브에서 두사람의 생전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이런 부질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다니엘 바렌보임은 신장이 약간 작은 편이지만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어느 누구보다 거인이다.

나는 사십년만에 파블로 카잘스 외에 나의 음악적 멘토를 한사람 더 추가하는 기쁨을 누렸다. 인간으로 예술가로

거인을 보는 것은 기쁨이다. 그가 위대하다던가 굉장하다는 식의 상투어를 나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의 존재로

어쩌면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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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8년 결혼했는데 신혼 집에 있는 거라곤 달랑 오디오 세트 뿐이었다. 그러나 음반이 기껏 열장, 스무장, 아마

그 정도였을 거다. 수입금지 품목이었고 국내판 라이센스 음반이 나오긴 했는데 그렇고 그런 인기품목 뿐이어서

갖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당시 <여성동아>에 음악에세이를 한동안 연재했는데 에세이라기 보다 음반 구하기

어렵다는 푸념이었다. 그런데 연재가 나가고 두군데서 편지가 날아왔다. 베를린에서 온 편지에는 -당신이 구하고

싶은 음반을 적어보내주면 뭐든 구해서 보내겠다.-는 내용이고 하와이의 여성에게서 온 편지에는 _귀하의 편지

답장 하나만 받아볼 수 있다면 당장 음반을 구해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마침 신문연재를 막 시작해서 좀 경황도 없었지만 답변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날 편지를 찾았더니 편지

두가지 모두 사라져버렸다. 신부가 하와이 여성 편지를 보고 찔끔 놀라서 편지를 말도 없이 치워버린 것이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하와이에서 멘델스죤의 <무언가> 전집을 보내왔다. 내 편지를 기다리다 선물

을 미리 보내준 것이다. 바로 다니엘 바렌보임의 야심찬 연주집이었다. 그 음반을 지금도 갖고 있다.

 이국땅에서 음반 한세트를 구해 얼굴도 모르는 모국의 인간에게 선물한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받고 싶다던 나의 답장을 보낼 길이 없다. 삼십년 동안 나는 하와이의 그 여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빚을 안고 살아오고 있다. 그 주소를, 그 이름을 어떻게 찾을까?

최근에는 하와이에 한번 가서 직접 찾아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요즘 미국여행은 아주 간단하다. 하와이 교민

이 많아야 수천 정도 아닐까? 그러나 이제 젊은 여성 아닌 오십대 육십대 할머니를 찾아 만나면 무엇하나? 그

여성은 나를 반겨주기나 할까?

  다니엘 바렌보임, 이스라엘의 잔학상을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가차없이 비판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는 한 사람

의 피아니스트, 그가 다만 무명의 인물이라면 아무런 효과도 없겠지만 그는 지금 세계를 풍미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 음악의 이름으로 평화와 인간존중을 호소하는 그의 부릅뜬 두 눈을 보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