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과 같은 바람몰이식 "융합"을 증오하는 편이다. 하나만 하기에도 바쁜 세상에 두어 개를, 그것도 어설프게 하는 것은 힘들 일이기도 하거니와 보상이 적은 일이다. 그리고 융합은 지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이걸 누군가가 교육을 하고, 강제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방송에도 융합적 사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위한 교양강좌도 많이 생겼다. 삼성도 인문학적 소양을 면접에서 평가한다고 하고, 공기업에서 인문서적 읽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이런 일련의 노력들이 새로운 생산동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교양이 교양으로만 머물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그렇지..있다, 창조경제의 동력이 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실사구시적 접근이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요란을 떠는 청조경제니 상상비타민이나 상상발전소 이런 따위가 그런 정책의 최말단 신경조직이다.

 

나도 인문학적인 공상, 망상과 관련된 책(문학 빼고)을 좀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걸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 위한 목표 같은 것은 없다. 재미로 보는 것이고 놀이로서의 상상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관심을 둔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소일거리용이고, 좀 멋있게 이야기하자면 검게 타버린 <생각의 불판>을 바꾸는 과정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러셀의 말을 제일 좋아한다. “대학교육의 목적은 일생동안 소일할 수 있는 좋은 취미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지금 하는 밥벌이에서 인문학관련 서적에서 읽은 아이디어가 모티브가 된 경우는 없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그렇다. 나의 천성이 남들 말을 잘 듣지 않고 지 맘대로 생각하고, 우스갯거리 좋아하고 남들 웃기는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라 그 천성의 확장판으로 인문학적 소양에도 관심을 좀 보이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것은 거의 성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가끔 어디 유머 책에서 소재의 우스갯소리를 공들여 하는 사람을 보는데, 좀 안쓰럽기 조차하다. 그냥 그 천성대로 진중한 이야기가 훨씬 더 감동적이고 사람을 움직이는데, 욕심을 내서 개그의 영역까지 잡수시겠다고 분투하는 사람은 대부분 실패한다. 적어도 내가 겪은 주변인들은 그러하다.

 

강신주의 철학 강의를 10시간을 듣고 감동하여 당장 다음 주부터 자연주의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 세속의 욕심으로 털어내고 무위자연으로 회귀할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교양강의도 목사님 설교와 비슷하게 그 효용은 하루를 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교양강의는 2시간짜리 영화와 별 다르지 않다. 영화는 저급하고 연극은 그 보다 더 고급, 인문학 강좌는 최상수준의 교양?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상상의 자유를 주고 내버려두라는 주장에 공감을 할지라도 지 자식에게 작금의 입시상황에서 그런 과정을 아이의 자유에 맡길 부모는 아무도 없다. 잘 알려진 좌파 문학가 또는 이론가들이 자식문제에서는 훨씬 더 세속적으로 가르치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몰빵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위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몸빵으로 잘 체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약하자면 나는 인문학적 소양은 개인적(자식에게조차 확장이 힘든) 차원의 수양이 그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좋은 선생에게 잘 배우면 그 수양의 정도가 더 깊어지는 것이다. 이것으로 어떤 공학적 결과, 상업적 대박을 치기위한 사전작업으로 접근하는 순간 인문학적 상상력의 본질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끔 인문학 관련 인사들과 일을 할 때가 있다. 성격 급한 이공계 공돌이들에게 이분들은 참 피곤하다. 좋게 말하면 참 느긋한 그 분 들이다. 배울 것도 꽤 있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층위가 있다. 멋있는 최상위 기획부터 최하위급인 장소, 문서 정리, 외부인사 섭외 등. 인문주의자들과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도 뭔가 끝이 나는 느낌이 없다. 모두들 최상층 <개념의 망루>에만 거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망루밑에 내려와 빗자루들고 마당 청소하는 사람이 잘 없다는 말이다. 자구(워딩) 하나로 오후시간을 다 날려 보내기도 한다. 자존감들은 대단하셔서 벼락같이 화를 내고 회의장을 나가 버린 다. 그렇게 연락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등산복 차림에 커피 한 잔 들고 짠... 나타난다. 상대방을 면전에 두고 욕지거리 순도의 95%에 해당되는 말도 서슴없이 날린다. 심약한 공돌이들에게 이런 장면은 호러 영화에 버금간다. 그래도 마지막 설거지는 심약한 공돌이들이 결국 처리한다. 항상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 인문주의자와의 만남 중 일부에는 꼭 이런 케이스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인문학적 상상이 풍부해지면 세속일의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다.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마감도 같이 멈춰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참 남감하다. 그래서 인문학.. 이러면 나에게는 이런 나쁜기억이 항상 떠 오른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국가적 정체위기, 특히 생산력 증대를 돌파하기 위해서 새로운 연료로 인문학적 상상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문이과를 통합해서 교육을 한다느니, 이런 일을 한다.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으로 무장한 융합적 사고가 현대 과학과 공학의 정체상태를 타개할 요체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노벨OO상 수상자는 심오한 불교신자였다, 어릴 적부터 시와 문학에 심취하였다.. 좁스의 천재성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확인될 수 없는 가십성 기사로 약을 친다. 일천한 경험때문이겠지만 최근들어 나는 항상 아래 두 가지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다. 두루뭉수리하지 말고 딱- 찍어서 공돌이 귀에 들어 오도록 말해주면 좋겠다.

 

1)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공학적, 과학적 문제를 타개한 경우는 어떤 것이 있는가 ?

2) 공돌이들은 감히 상상조차 불가능한 인문학적 상상으로 크게 성공한 상품은 무엇인가 ?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문학적 소양은 교양과 시민생활교육으로 더 강화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을 생산력 증가의 새로운 동력원으로 활용하고자, 외부에서 강제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용이 없음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과하게 불고 있는 인문+과학+공학의 짬뽕 융합교육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양인, 민주시민, 공학인 과학인 생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이런 분위기에 편성해서 일신의 영달을 꾀하고자 하는 몇 교육학자 관료들은 문화의 4대강 건설업자라고 본다. - 인문학이 경쟁력이다, 인문학으로도 재벌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직업으로의 인문학 이런 식으로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는 꼬드김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인간에 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이용하여 생산력 증대가 목적이라면, 좀 더 노골적으로 심리학, 경영학, 의학, 생리학, 인지과학을 설파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된다. 이 과학적 요쇼를 모두 탈색한 그야말로 <먹기 좋고, 듣기 좋은  대형교회 목사님 설교>같은 잘 팔리고 대중에 영합하는 속류 인문학으로는 이 난세(?)를 헤쳐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교과과정 개편에서 과학, 수학의 비중을 줄인다는 기사를 보고 한번 써 보았습니다.)

 

------- 쓰다보니 ---------

우리나라에서 모든 자율은 고차원적인 타율이다. 이전 이명박 정부 때 이런 지시도 있었다고 한다. 국무위원들에게 하절기 무더위로 인하여 내일부터 자유복장이 허용되므로, 넥타이는 매지 말고 나오기 바람”. 헛..헛... 자유복일 때 네꾸다이를 매고 나오면 안된다, 혼난다? 모든 초중고 대학이나 일반 기업도 정부의 고차원적 자율에 엄청 시달리고 있다. “OOO은 자율적으로 결정하시되, 그 결과는 이후 재정지원에 연계하겠다.” 이 주제곡의 무한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