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한 9.11의 직간접 동기에 관해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초기에
교조적 우파 그룹이 이스라엘과 지나치게 결탁해서 아랍을 향해 무력과시와 위협적 분위기를 조
성한 것은 사실이다. 여러가지 잦은 테러, 그리고 보다 큰 결정적 테러를 모색하던 아랍 테러조직
이 위기감과 조급증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당시는 제3자인 필자마저 부시의 아랍 적대정책이 지
나치지 않은가 느꼈을 정도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간에 침공했고 얼마 뒤 있지도 않은
훗세인의 핵과 비밀병기를 구실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다. 이 침공으로 미군만 해도 4000명 이
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 인 희생자는 수십만을 헤아린다. 대부분 민간인들이다.

 부시 정부에서 3년간 대변인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이 최근 발간예정인 회고록에서
"이라크 전쟁은 불필요한 전쟁이며 부시와 참모들은 여론조작과 선동정치로 막대한 국고탕진
과 이라크 비극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힐러리 클린턴의 강한 동조 맨트가 뒤따랐다.
이 주장의 찬반은 있겠으나 현재 미국 시민의 태반이 이라크 전쟁을 미국의 전략적 실패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부시는 오직 이라크 서민을 죽이고 이라크 문명유적을 파괴했
으며 사담 훗세인을 교수대에 세운 개인적 욕망을 성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로움을 주지 못했다.

  이쯤에서 만약 엘 고어가 불과 몇표의 선거인단 표를 더 얻어 당선자가 될 수 있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부질없는 가상이지만 상상을 해본다. 단언하긴 어려우나 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일어나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9.11도 아예 발생하지 않거나 유예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빌 클린턴은 임기 말에 북한 평양 방문계획을 세웠으나 임기가 끝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엘 고어는 아마 클린턴의 평양방문을 승계했거나 승꼐까진 아니더라
도 북한과 선임자가 맺은 핵과 기타 국교관련 조약을 성실하게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부시는 당선되자 바로 마치 이명박이 김대중과 노무현이 이룬 남북화해 약속을 깨버렸듯이
뜽금없이 북을 <악의 축>이라 규정하고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고 무시정책으로 일관했다.
이 정책이 지금의 북한핵 사태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아비는 제치고라도 아들
부시가 평화를 위해 해놓은 일이 무엇인가? 북한은 세력이나 능력의 크기로 볼 때 "악의 축"
이 될만한 정도가 아니다. 감히 말한다면 미국이야말로 그 호칭에 참으로 어울리는 존재 아
닌가. 가자지구 참상을 보라.

  르윈스키가 뉴스화면에 나와서 자기에게 여전히 할 말이 있는데 아직 다 털어놓지는 못한
다는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한사
람의 철부지 여인의 풋사랑, 그리고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의 수반인 한 남성의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약점이 어울어져...그것도 사랑일까? 사랑이라는 게 일정한 틀이 있는 것은 아
니고 수만가지 수천가지 유형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은 즉석 충동에 의한 일탈에 불
과할 뿐, 사랑이라고 이름붙여주긴 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다음 대선국면에 르윈스키
변수가 또 등장해서 힐러리 클린턴의 체면을 구기고 인내심을 시험하게 될까?

 훗세인이 강압통치를 했다지만 내가 방문했던 94년 경의 바그다드, 모술, 그리고 여타 이라
크 지역들은 질서가 잘 잡혀있고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였다. 모술의 호텔 난간에서 바라보던
티그리스 강의 유연한 물줄기, 그런대로 서민생활의 활기를 보여주던 바자르 골목의 갖가지
풍경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초대했던 가잘 대사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와 시인 지망생인
그딸, 무스탄시리아대학생 로라 가잘의 얼굴이 아물거린다. 그들은 살아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