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에는 알 라시드 호텔이 있는데 유명 호텔들이 많은 중에도 단연 1급 호텔로 알려진 곳이다.
이 호텔 현관 바닥 중앙에는 아주 낯이 익은 얼굴이 타일로 크게 부조되어 있는데 그 주인공이 뜻밖에
미국 전직 대통령 아버지 부시 1세이다. 둥그런 원 안에 그 얼굴이 있고 그 얼굴을 지나면 바로 현관
회전문이 있기 때문에 이 호텔 출입하는 사람들은 원컨 원치 않컨 아버지 부시 얼굴을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나도 원치 않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이라크 인들이 1차 걸프
전쟁으로 인해 부시에게 얼마나 강한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는지 그 모자이크가 입증하고 있었다.
알 라시드 호텔 후면으로 돌아가면 미국의 미사일 한방이 호텔 옆구리를 강타해서 벽과 창틀이 보기
흉하게 무너진 걸 볼 수 있는데 이라크 인들은 그걸 개수하지 않고 관광객이 참상을 잘 볼 수 있도록
현장보존을 잘 해놓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후세인의 학정을 옹호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바그다드의 2000년이 넘도록
잘 보존되고 있는 상가거리인 알 라시드 거리가 1차전 미국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리진 건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사실은 한해 전 이곳을 다녀온 동행자의 증언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동행자는 바그다드에 가면 제일 먼저 2000년 넘게 유지되어 온 알 라시드 거리를 제일 먼저 구경하자
고 일행을 꼬드겼던 것이다.
그러나 2차 전 이전만 해도 아직은 약과였다. 바그다드 뿐 아니라 이라크 영토 전체가 엄청난 인류의
문화유산의 보고였다. 지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조상이 남겨준 알량한 문화유적으로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이나 이탈리아의
무슨 격투기 경기장 따위는 이라크 유적에 비하면 그 규모나 역사로 볼 때 소꼽놀음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봉쇄 정책 이전에는 바드다드에 몰려드는 유럽의 수많은 관광행렬
때문에 호텔들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대형 버스들이 거리 곳곳에 줄을 잇고 있었다 한다. 그 버스
들이 바빌론 근처 벌판에 할일 없이 줄지어 서있던 광경을 봤다. 바빌론 일대도 파리 한마리 구경할
수 없을만큼 고요했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무스탄시리아대학(AD1226-1242). 옛날 대상들이 묵고 식사
를 했다는 칸 마르잔 식당-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모술의 니네베 성벽, 요나의 무덤, 바빌론의
행진의 거리, 바벨탑의 페허, 머 하나하나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사담 훗세인이 화학무기와 핵
을 감추고 있다는 걸 트집 잡아 아들 부시가 이번엔 보다 본격적으로 이라크와 바그다드를 강타했
다. 이 사실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아들 부시가 아버지를 밟고 다니는 이라크 인들에게
감정을 품고 구실을 만들어 이라크를 깡그리 짓밟았고 사담을 교수형에 처했다고 , 그게 침략동기
의 전부라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조금은 그 감정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참, 모술에서는 교외의 마크로우브 산 정상에 있는 성 마티 수도원에 들렀던 일이 기억난다. 4세기
에 세워진 이 수도원에는 마르코 폴로의 견문록에 등장하는 앗시리아의 기독교인 후예들이 상당수
찾아와 예배를 보고 있었다. 성서고고학에 지식이 있었다면 그곳에서 보았던 적지않은 양피지 자료
들을 좀 더 흥미있게 관찰할 수 있었겠지만 내게 그건 지식은 없었다.
 부시가 아니었다면 9.11 참사가 그렇게 신속하게 미국땅에서 발생했을까?
그 당시 나는 이런 강한 회의감 때문에 엘 고어의 낙선을 특히 아쉽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