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지난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이후,

박 전 대표의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아 일했던 그는 오갈 데 없는 실업자가 됐다.

경선 직후 이명박 당 후보 캠프에서 직책을 제안했지만, 고사했다. 



그는 이 후보 측에

 “박 전 대표의 언론심부름을 해온 사람이며,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박 전대표를 취재하고 있다.

박전대표를 취재하는 기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기자에게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람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 들어온 제안은 너무나도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김문수 경기지사로부터 경기도 정무부지사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백수상태로 연로하신 부모님, 이렇다 할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던 차에 부지사 제안을 받아 떨렸다.

또 병에걸린 집사람 아이들에게 너무도 미안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기어코는 거절했다. 



이후 이 소식을 건너들은 박 전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 전 대표는 “그냥 가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이 의원은 당시 이렇게 대답했다. 



“제 친구들이 다 호남 친구들인데, 

그 친구들과 술 한잔 먹고 정치토론을 하면 끝에 가서는 항상 제가 졌다.

우리 한나라당 떳떳하지 못한 점들이 많았다.

 

그런데 대표님을 모시고 나서는 누구와 토론을 해도 제가 지지를 않는다. 

버스를 탈 때 봉투에 한나라당이라고 써진 글씨를 몸 안쪽으로 숨기는 것이 솔직한 제 습관인데

대표님 모시고 정치를 하면서부터는 파란색 한나라당 점퍼를 입고 서울 시내를 활보했다.

제가 이렇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행복한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대표님이 저한테 다른데로 가라고 하시면 전 깨끗이 이 정치판을 떠나불라요 !!!.” 

 



가만히 듣고 있던 박 전 대표는 그 전에도 이후에도 거의 쓰지 않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 

 

 

 

 

 

 

이정현의 자전적 에세이 "진심이면 통합니다" 중


[순천곡성 이정현] '진심이면 통합니다' 中

​호남 고속철 예산 500억을 지켰다

  

[순천곡성 이정현] 국회에서

호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호남에서 정치경쟁을 회복해야한다.

강원도에서 열린우리당 출신 도지사가 나왔고

경상도는 민주, 민노당 지역구 재선 국회의원이 5명이나 된다.

25여년이 넘는 일당 독주형 정치는 많은 후유증을 초래한다.

지역에서 서로 다른 정당소속 정치인들이 경쟁하면 지역민들이 이득을 본다.

반대로 경쟁 없는 정치는 고스란히 지역민들이 손해를 본다.

 

2008년도 예결소위에 참여했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목격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호남 고속철 예산 2500억원 중 500억원을 깎자고 한 것이다.

내 귀를 의심했다. 반대가 없었다. 삭감될 판이었다. 나는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선진당 유근찬 의원이 여기가 정치적 논쟁을 하는 자리냐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굽히지 않고 버텼다. 기자회견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500억원을 끝내 지켜냈다.

비공개 계수조정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호남고속철 예산을 깎는 기막힌 일을

한나라당 출신인 내가 목격하지 않았다면 막지도,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호남 사람들은 이런 사실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소수당을 제외하면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정부 여당 고위당정회의에

호남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은 참석할 수가 없다.

민주당 의원을 한나라당 당정 회의에 참석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회로 넘어오기 전단계인

다음 해 예산안 수백조원을 확정하는 당정안 심의 때

호남 지역 시급한 현안과 정서를 누가 정확하고 진지하고 강력하게 전달하겠는가?

국회는 사실상 삭감위주고, 증액은 매우 힘든 절차를 밟게 된다.

어쩌란 말인가?

특정 정당 일색의 지지는 투표하는 순간 속은 시원할지 모르나 실속은 없다.

 [순천곡성 이정현]국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수도권 지역구를 선택하라고 성화다.

그러나 나는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 출마할 생각을 장난으로도 가져본 적이 없다.

내가 관악이나 안양에서 출마해 설령 당선된다고 해도

고향인 호남을 위해 뛰는 지금의 이 열정과 의욕을 보일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나는 다시 세 번째 광주에서 도전한다.

난 호남에서 당선을 목표로 선거에 나설 것이다.

 

내가 국회의원 하는 내내 출마지역을 미리 발표하지 않은 이유도

한 지역구에만 전념하게 되면 호남 전체를 위하는 일에 소홀해질까 우려해서였다.

  

내 사랑하는 고향, 그리고 고향 사람들!

그들이 아쉬워하고 아파하는 것을 난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호남 르네상스를 꿈꾼다. 호남중심시대의 도래를 확신한다.

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순천곡성 이정현] '진심이면 통합니다' 中

​호남 고속철 예산 500억을 지켰다

 

<순천시청 여직원회의 짧은 격려 큰 감동>

내 국회 사무실 책장 서랍 안은 각종 감사패들로 가득 차 있다.
극구 사양했음에도 보내주신 것들이기에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한다.
극히 적은 숫자만 유리 책장 안에 보관하거나 벽에 걸어두고 자랑한다.

 5.18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관련 3개 단체로부터
감사패를 받아 유일하게 캐비넷 위에 전시해뒀다.

섬 지방 사람들에게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응급구조 헬기 예산을 확보했더니 모 대학 교수께서 헬기 모형을 보내왔다.
장애인 문화 예술인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더니 어떤 이는 붓글씨를,
또 어떤 이는 내 초상화를 직접 그려 와서 좁은 사무실 벽에 다 걸었다.

 

<한중일 장애인 미술 교류전> 예산을 확보했더니 중국 장애인들이 글을 써 보냈다.
전통 씨름을 위한 예산 확보에 주력했더니 황소모형을 보내와 전시해뒀고
강진 청자 축제관련 사업을 지원했더니 작은 도자기를 보내와 역시 책장 위에 올려놨다.

 광주시 예산과 각종 숙원 사업해결에 힘썼다고 광주시장이 무등산을 그린 그림을 보냈다.
자전거는 순천 자전거소재산업 연구자금을 지원했더니 보내온 것이다.
이 많은 감사의 증표 중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답례품은 따로 있다.
바로 작은 카드 하나다.

순천시장으로부터 ‘순천만국제습지센터’ 조성 사업에 대한 예산 증액요청이 있었다.
시급한 사안이었고 결국 50억 예산 확보에 성공했다.
예산이 일단락된 후 몇 주가 지나 내 사무실에는 뜻밖의 선물이 답지했다.

케이크와 장미 꽃다발, 그리고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순천시청 여직원 모임 한우리’가 보낸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정현 의원님, 넘 멋지시네요. 의원님의 순천사랑 깊이 간직할게요.’ 

광주에서 두 번 출마해 형언할 수 없는 수모와 좌절을 겪었던 나로서는
처음으로 이런 감사편지를 받고 감회가 특별했다.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던 내가 전라남도에 있는 한 시청의 여직원회에서
이러한 감사편지를 받게 되다니, 나는 솔직히 감격했다.
내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준 그들에게 한없이 감사했고,
잘 해냈다는 생각에 더없이 뿌듯했으며,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좋아! 이렇게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나는 결심을 더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그 때 그 여직원들이 보내준 편지 한 통 속 짤막한 글이
내게 전해준 격려와 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아마도 내가 국회의원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아니,
내가 호남과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그 마지막 날까지도
가장 큰 힘을 주었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항상 내 방문을 열어둔다 

 

나는 늘 잠이 부족하고 피곤하다. 고개만 누이면 잠든다. 

자주 오가는 광주행 비행기 안에서 주스 한번 얻어먹지 못했다. 타면 자니까.

 

하루에 17팀의 호남 예산 관련 면담을 한 적도 있다.

열심히 준비해 와 진지하게 설명하는 지방 공직자들이 고맙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들을 정부부처와 연결해주어 호남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더 없이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늘 꽉 찬 스케줄이지만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찾아왔던 분들이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고맙다며 내 방을 나갈 때, 그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희열은 형언이 안 된다.

 

그런데 솔직히 난 국회의원을 오래, 여러 번 하고 싶지 않다.

나이도 있고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회의원으로서의 하루하루가 무섭기 때문이다.

민원이 두렵다. 아는 사람 민원이 더 겁난다.

전날 저녁 뉴스에 전직 장관이 수갑 차고 고개 숙인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비슷한 내용의 청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온다.

 

이것은 이권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여. 그냥 관심 좀 가져달라고 하면 돼.”

전화 한 통만 해주면 된다. 밑에는 다 손 써 놨다.”

심지어 % 주겠다.” “평생 국회의원 할 것이냐? 노후도 챙겨라.” 이렇게 말한다.

왜 선배들이 국회의원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고 하는지 알 만했다. 

 

이정현 의원의 진심이면 통합니다 中

 

 

 

나는 매일 아침 기도를 한다.  

하나님, 오늘도 저를 지켜주시옵소서. 주님 날개 밑에 저 좀 숨겨주십시오.”

그러지 않고는 불안해서 편하게 출근할 수가 없다.

 

나는 항상 의원회관 의원실의 내 방문을 활짝 열어둔다. 아니면 보좌관을 배석시킨다.

부당한 청탁은 대부분 단호하고 매몰차게, 즉석에서 거절한다.

제가 사장님 회사의 재무제표를 한번 봤습니까?

거래명세서를 한번 봤습니까? 국회의원이 거간꾼입니까?

국회의원을 아파트 공사 수주하는 사람으로 아셨습니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왜 내 인생을 망치려 합니까?” 하고 쏴준 적도 있다.

나도 사람이다. 하는 수 없이 부탁 전화한 적 있다.

그러나 청탁하는 것 정말 싫다.

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하기 싫다.

 

국회의원 바르게 한번 하려고 한다.

구설에 오르내리지 않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다짐한다.

항상 다음 달이 국회의원 임기 말이라는 심정으로 원도 한도 없이

힘을 다 쏟아서 하고자 했던 꿈을 실현시켜 나가려고 한다.

진이 빠지도록 온 정성을 다해 일할 수 있을 때 일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가 아쉬워 할 때 미련 없이 탁 그만두고 떠날 것이다.

 

진심이면 통합니다 中

이정현 후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답례품

 

 

순천곡성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답례품은 바로 작은 카드다.

 

순천곡성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

 

이정현 후보의 국회의원 시절. 순천시장으로부터 '순천만국제습지센터' 조성 사업에 대한 예산 증액요청이 있었다. 시급한 사안이었고 결국 50억 예산 확보에 성공했다. 예산이 일단락된 후 몇 주가 지나 이정현 전 국회의원 사무실에는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다. 케이크와 장미 꽃다발, 그리고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순천시청 여직원 모임 한우리'가 보낸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정현 의원님, 넘 멋지시네요. 의원님의 순천사랑 깊이 간직할게요.'

 

광주에서 두 번 출마해 형언할 수 없는 수모와 좌절을 겪었던 이정현 후보로서는 이런 감사편지를 받고 감회가 특별했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던 이정현 후보가 전라남도에 있는 순천시청의 여직원회에서 이러한 감사편지를 받게 되다니 많이 감격했다. 이정현 후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준 그들에게 한없이 감사했고, 잘 해냈다는 생각에 더없이 뿌듯했으며,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좋아! 이렇게 하는 거야. 이런식으로' 이정현 후보는 결심을 더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그때 순천시청 여직원들이 보내준 편지 한 통 속 짤막한 글이 이정현 후보에게 전해준 격려와 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순천곡성 보궐선거] 이정현 후보

 

이정현 후보는 국회의원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아니, 호남과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그 마지막 날까지도 가장 큰 힘을 주었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정현 자서전, '진심이면 통합니다' 中에서

광주서구을 이정현 후보의 '5.18 아주 특별한 감사패' 광주서구을

5.18 5.18 5.18

2010년 1월, 나는 아주 특별한 감사패를 받았다.광주서구을

5.18 기념 재단과 3개 단체가 5.18 30주년 관련 예산 확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광주서구을

내게 감사패를 주기로 했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광주서구을

물론 감사하기는 했지만 당연한 일을 해놓고 감사패를 받는다는 것이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광주서구을

 5.18 5.18 5.18

국회의원 되고나서 정말 거북스러운 자리가 감사패 받는 자리다.광주서구을

그런데 나는 5.18 재단과 단체의 제안을 수차례 거절하던 끝에 마침내 참석을 결심했다.광주서구을

내가 감사패를 받을 결심을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광주서구을

 5.18 5.18 5.18

여수 엑스포 준비와 광주 유니버시아드, 순천 정원박람회,

그리고 영암 F1 유치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내가 그 일들에 전력을 쏟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5.18 세계화와 연관이 있다.광주서구을

5.18 5.18 5.18 

대한민국 남단 작은 도시에서 국제 행사가 개최되면 광주서구을

세계 각국 사람들이 방문할 것이다. 광주서구을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언론인들 또한 동행할 것이고,

그들은 호남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특집기사로 다루게 될 것이 분명하다.광주서구을

5.18 5.18 5.18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온 언론인들은 당연히 광주 5.18을 소개할 것이다.

민주, 인권, 평화! 5.18 정신과 함께 말이다.광주서구을

이 세 정신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다.

선진국들은 이미 수많은 과정을 통해 이 가치들을 실현해왔다.

그렇지 않은 더 많은 나라들은 아직도 그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 중이다.광주서구을

 5.18 5.18 5.18

대한민국 남단의 한 도시에서 시민들이 그들의 손으로 광주서구을

직접 자유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광주서구을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평화를 지켜냈다는 것이 소개되면, 광주서구을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그리고 호남을 다시 그리고 높게 평가할 것이다.광주서구을

  5.18 5.18 5.18

지금도 투쟁 중인 나라에서는 광주 5.18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을 것이며,

5.18은 자랑스럽고 당당한 또 다른 형태의 한류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호남에서 각종 형태의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임해왔다.

  5.18 5.18 5.18

그래서 5.18 단체가 주는 감사패는 나 스스로를 더 독려하는 차원으로 광주서구을

혼자 합리화해 수여식장을 찾았던 것이다.주서구을

그리고 무겁지만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광주서구을

따뜻한 격려도 함께 받았다. 광주서구을

또한 나는 5.18 광주인권상 3년 연속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광주서구을

 

 

야당 시절, 하루는 긴급 당 실국장 회의가 있었다.

사무처 직원들을 정리해고 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내보낼 사람을 각 실 국장들이 결정하라는 것이다.

부총장은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방법을 말할 것을 제안했다.

광주 서구을 

공교롭게도 난 맨 마지막 차례였다.

 

“저는 발언을 안 하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예외는 없다고 했다.

 

부총장의 주문대로 마침내 난 발언을 했다.

 광주 서구을서구을

“저는 동참안하겠습니다. 동지들을 자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에 오게 된 것은 월급 받고 돈 벌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열정들이라면 어디서든 인정받았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꿈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힘들면서도 견뎌온 것은 오로지 꿈을 키우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당직자들에게 우리들의 꿈을 무산시키고 포기시킬 권한이 없습니다.

 

당직자들은 교체돼서 가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우리는 오로지 꿈 하나만 안고 다른 모든 기회를 다 버린 채

여지껏 당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우리들 월급을 주기가 어려워서 그렇습니까? 그럼 절반만 주십시오.

그것도 부족하면 적은 액수를 똑같이 나누어 주십시오.

나만 살겠다고, 내 꿈만 중하고, 다른 사람 꿈은 나 몰라라 하는 건

우리가 취할 바가 아닙니다.

어느 날 아침, 초등학생 딸이 제게 “아빠! 준비물 값 2천원만” 하고

손을 내미는데 제 주머니에 그 2천원이 없어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에게 달래라” 그러고는 뛰듯이 집을 나와 버스도 타지 않고

그날 아침 봉천동에서 여의도까지 걸어서 출근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광주 서구을 

그 이후 저는 등교하는 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딸이 학교 갈 준비를 하기도 전에 항상 먼저 집을 나왔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힘들게 당을 지키고 있는 우리를

누가 쫓아낼 자격이 있다고 나가라고 하십니까?

저는 안 나갑니다. 제 후배들도 못 자릅니다.”하고 울부짖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무부총장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자신도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었는데,

그때 직원들에게 월급조차 주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정치권에 와서도 또 이런 악역을 맡게 될 줄은 몰랐다.” 고 말했다.

광주 서구을 

정리해고 사안은 연기됐고, 결국 무산되었다.

 

나는 참을 때까지 참는다. 그러나 참을 수 없을 때는 할 말한다.

힘들 때 동지를 버리는 것은 내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탓 하지 않고 소신 있게 처신하는 것,

그것은 내 성격이고 내 습관이고 또 주체할 수 없는 나의 나 됨이다.

 

왜? 나는 촌놈이니까!

 

장애인 문화 예술인들과의 간담회 때 누군가가 물었다.
혹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쏟는 특별한 사연이 있느냐고.
그 질문을 받고서야 나는 나를 돌아봤고 이렇게 답했다.

 

“나는 평생 비주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나는 소외가 무엇인지, 소수가 어떤 처지인지,
실패한 사람의 심정이 어떤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장애인도 사실 비주류고 우린 동지입니다.” 라고.

                    

대한민국 국민의 99%가 비주류이든지, 비주류였든지 그렇지 않을까?
54년을 살아오는 동안 솔직히 옮기기 싫을 뿐,
난 겪어보지 않은 수모와 곤란이 거의 없다.
소수와 소외의 심정을 난 정확히 안다.
왜? 체험했으니까. 그것이 내 삶이었으니까.

 

사람은 다 똑같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어 보지 않았다면 정말
주류라는 사람들은 확연히 다른 그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류와 비주류가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비주류 인생은 나로 하여금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다는 정신적 고통을 알게 했다.
일부 주류가 그렇게 가해자의 처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부류도 내가 겪어봤더니,
겁도 많고 더 큰 권력, 더 큰 자본에 한없이 약했다.

 

 

<불법체류 베트남 투안씨 부부 석방 때 11.03.10>

 

국회의원이 된 뒤 난 내 비주류 심정을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인간적이고 싶었고 인간적인 편에 서고 싶었으며 인간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이 큰 만족이자 큰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인 문화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씨름, 국악, 한글, 번역, 수필 등 비주류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다.
또 원로 체육인과 원로 연기자들은 물론이고
파독광부와 간호사, 고엽제 환자들, 6.25 참전 용사 등
비주류 취급을 받는 국가 은인들 문제에 마음으로 앞장서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장애인 미술작가 국회 초청 전시회 08.12.24>

 

비주류가 소홀히 취급되고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것에 대해
나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 의무감과 신념으로 국사에 임하고 있다.

 

촌놈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나는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더 이상의 욕심도 없다.
국회의원이 된 촌놈 이정현은 밑져도 본전 이상이다.
그래서 난 무서운 사람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할 것이다.

 

 

내가 강연하면서

잘 들먹이지 못하는

두 단어가 있는데,

어머니 그리고 우리 집친구 내 아내다.

예외 없이 목이 바로 잠기고 만다.

 

나의 연인상은 순한 여자였다.

나는 밖에서 활발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집에 와서만큼은 정치이야기 안하고 좀 쉬고 싶었다.

제대로 만났다.

내 아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내게 딱 맞춤형이다.

정말 첫 눈에 내짝이다 싶었다.

 

양가 부모가 상견례 한 바로 그 날,

광주와 곡성 양가집을 서로 교차방문하고

그로부터 한 달 뒤로 결혼 날을 바로 잡아주셨다.

 

아내는 순하디 순하고 착하디 착하다.

조용하다.

그러면서 강하다.

지금까지 아내가 어떻게 그 어려움을 다 헤쳐 왔는지 기적 같다.

남편인 나는 가난하고 무심하고 사생활도 없고 재미도 없다.

 

아내는 최근 4개월 사이에 3번의 전신 마취 대수술을 받았다.

두군데 암수술 때문이다. 많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

 

아내가 아프고 난 뒤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새로 연애한다.

내 아내 민경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쓰려한다.

집 친구의 고생은 지금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내가 고맙다는 것,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것,

그리고 남은 나의 생은

아내를 여왕처럼 받들며 살고 싶다는 것뿐이다. 

  

2009년 4월. 저녁에 노관규 순천시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순천 신소재센터에서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마그네슘 자전거 개발을 하고 있는데 저녁 뉴스를 보니

정부가 대덕에 자전거 연구 예산 100억을 주기로 했다고 했다고 한다”는 항의였다.

 

순천시는 그동안 고강도 경량소재 자전거 산업 육성 기반을 조성해왔으며,

순천에 이미 자전거 연관 기업이 11개나 들어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왜 저쪽은 주고, 우리는 안 주냐’는 투정 쯤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없다. 오늘 저녁에 당장 담당 과장을 심야버스로 올려 보내소.”

빨리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었다.

다음날 오후가 추경예산이 확정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순천에서 올라온 담당자들을 청와대 경제 비서관에게 보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기재부 장관과 차관을 만나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지경부와 상의를 해오면 자신들도 협조하겠다는 답을 받아냈고,

바로 지경부 장관에게 협조를 구해 20억원을 확보했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도 한손으로 번쩍 들 수 있다는

순천의 가벼운 자전거, 마그네슘 자전거가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은 구석구석 전부를 다 알 수는 없다.

때문에 나와 같은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고,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이렇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한 발굴로 반영시킨 예산도 부지기수다.

 

 

[노트북을 열며]국회의원 일하게 만들기(이정현 후보의 예산 지킨 일화)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광주발 용산행 KTX. 광주광역시 체육지원과장은 문화체육관광부로 출장을 가고 있었다. 야구장 건설 때 지원받기로 한 복권사업 수익금이 깎이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익금 배분 심의위원회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해 막막했다. 마침 같은 열차에 탄 국회의원을 발견한 그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의원은 휴대전화를 들고 객차 연결 통로로 나갔다. 그리고 문화부 체육국장과 차관 등에게 전화해“원래대로 100억원을 간청 드린다”고 매달렸다. 열차가 용산에 닿기 전에 차관한테서 전화가 왔다.“의원님, 깎이지 않도록 조처했습니다.”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공무원의 지원 요청을 국회의원이 즉석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해결해 준 것이다.


그 의원이 광주 사업만 챙기는 게 아니다. 고향(곡성군)을 포함한 전남은 물론 전북의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지역 언론들은‘호남 예산 지킴이’라고 부른다. 공무원들은“큰 도움을 받았다. 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호남 각지의 민원이 몰려 북새통인데도, 의원이나 사무실 직원 모두 친절하다”고도 한다.

 

호남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은 광주 8명, 전남 11명, 전북 11명 등 모두 30명이다. 전북 정읍 1명(무소속)을 빼곤 다 민주당 소속이다. 그 의원은 누구일까.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다.

 

이 의원은 호남 지역구 의원이 아니다. 현 국회에 비례대표로 ‘겨우’ 진출했다. 2004년 총선 때 광주광역시에서 출마했지만 참패했다. 6만9882명 중 720명(1%)만이 그에게 표를 줬다. 호남권 민주당 의원들의 득표율은 높게는 88.7%, 낮아도 50.4%다. 주민들이 몰아준 성원으로 보면, 민주당 의원들은 이 의원보다 수십 배 지역민들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평가는 정반대다.

 

“현안에 대해 지원을 부탁하면‘알아보겠다’고 말하곤 그만이다.”“자기 지역구 사업이나 신경을 좀 쓸 뿐 다른 지역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누리기만 하지, 일은 하지 않는다.”한 부이사관급 공무원은“의원 사무실에 가도 앉으라는 말조차 않는다. 무시당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호남에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다. 이러니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가진 높은 사람에게는 굽실거리지만, 정작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에게는 소홀하다. 여기엔 유권자의 책임도 있다. 빵맛이 떨어지고 주인이 불친절하다고 불평하면서도 계속 ‘상표’만 보고 그 제과점을 찾는 것은 현명한 소비행위가 아니다. 빵집 주인에게 항의하거나 다른 제과점을 찾아감으로써 경쟁을 유도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느 부문이든 경쟁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향한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유권자들도 어떤 게 현명한 선택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이해석 호남취재팀장

 

출처:[11.02.24 중앙일보]국회의원 일하게 만들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101772&cloc=olink|article|default


호남발전전략

 

나는 조만간 도래할 호남 중심시대를 철저히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호남발전을 위한 장기 비전이 필요하고, 종합적인 마스터플랜 마련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더 이상의 수도권 집중은 재앙이다. 0.6% 서울 땅덩어리에 인구의 25% 이상이 산다. 수도권의 대극점으로 호남을 포함한 남해안을 제 2의 수도로 발전시켜 나가자.

 

수도권으로 인구 집중을 유인해놓고 별도로 환경비용, 교통비용이라며 연간 수십조를 쓰는 것은 국가백년대계가 아니라 亡國百年大計일뿐이다. 호남은 첨단 산업도시, 문화중심도시, 해양중심도시로 발전할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광주시와 전남북도가 중심이 되고, 지역의 국회의원들과 대학교수들, 시민단체들, 경제인들, 문화 예술인들이 합동으로 ‘호남 르네상스 30년 계획’을 수립하자.

 

5년 단위로 6차 계획을 세우고 수정, 보완해 가면서 실천했으면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시군구나 시도별로 인기영합주의 내지 선거를 의식한 선심정책을 남발해 졸속으로 난개발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아주 적은 예산을 가지고 욕심만 앞세우다 보면 천혜의 자원을 망치는 수가 있다. 종합적이고 광역적이며 제대로 된 투자와 개발이 이루어져야한다.

 

미국과 일본에 의존했던 수출입국시대에는 수출항구 인접 지역의 발전이 불가피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중국을 포함한 무역 대상국이 다변화 되었다. 첨단 산업은 부피나 무게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지역을 핑계 삼을 수 없다. 더구나 KTX로 전국이 30분 거리고, 비행기로 45분이면 전국 어디든 간다. 호남만큼 비행기, 철도, 고속도로, 배가 드나드는 SOC가 다양하게 깔린 곳도 드물다.

 

수천 개의 섬과 드넓은 대륙붕, 5,900km나 되는 남해안 리아스식 해안은 세계적인 해양산업, 해양과학, 해양문화를 꽃피울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수많은 사찰을 포함해서 풍부한 전통문화 예술 자원, 육자배기와 판소리, 남도화 등 대중문화의 메카로 발전할 요인도 넉넉히 가지고 있다.

 

 

 

청정에 가까운 오염 안 된 넓은 땅,

뛰어난 두뇌들과 이들을 인재로 키워낼 풍부한 교육 기관,

일할 의욕을 가진 인재들에게 호남은 첨단사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신산업혁명의 터전이 되어줄 것이다.

호남의 장점이 뭔지, 단점이 뭔지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진단하자!

시대적 흐름, 세계사적 조류와 접목해 판단하자!
그리고 관련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동원해 발전 방안을 모색하자!

 

호남 최고의 자산과 자원은 애향심이다.
과학자 중에, 예술가와 체육인 중에, 자본가를 포함한 기업인 중에 호남 출신으로서 출향해
성공했거나 잠재력이 있는 분들을 최대한 찾아서 호남 발전 전략에 참여시키자. 

최우선은 이 세 가지,

즉 첫째 자원진단, 둘째 발전전략 수립, 셋째 호남인의 힘으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다.

힘을 합치면 가능하다고 본다.
호남이 국가 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주인공이 되고, 새로운 화합과 통합의 주체가 되자.

 

호남의 세계화, 수출 주도지역 호남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호남이 국부창출의 신요새가 되게 해야 한다.

그동안 스스로를 짓눌러 왔던 정신적 고통을 내려놓고 물질적 소외에 대한 원망도 접자.
과거집착 대신 오픈 마인드를 갖자.

이제는 호남 정치도 개방하고, 정치 경쟁을 회복하자. 

호남의 미래는 호남이 개척하자.

[출처] 호남발전전략|작성자 이정현














“떨렸다. 봉급다운 봉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에겐 그야말로 큰 유혹이었다. 그때 전화기를 잡고는 ‘거절 못 하면 박근혜 전 대표와 영영 헤어져야 한다’며 흔들리지 말자고 기도했다.”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자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후보)의 공보특보로 활동했다. 경선 직후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가 그에게 정무부지사 직을 내밀었다. 그는 흔들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고사했다. 며칠 뒤 박 대통령이 그를 불렀다.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꾸 그러시면 정치 그만 둘라요”라고 해 버렸다. 박 대통령은 웃음 띤 얼굴로 “고맙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이를 전해들은 그의 부친은 “잘 혔다. 나는 니가 내가 존경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가까이서 모시는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그렇게 세상이 모두 아는 ‘박근혜맨’이 되었다. 그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간다. 17대 총선 당시 광주에 출마한 그에게 당 대표이던 박 대통령은 두 번이나 전화를 해 격려했다. 선거가 끝나면 밥을 사겠다고도 했다. 약속대로 박 대통령은 총선 뒤 낙선한 후보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여기서 이 후보는 “당이 호남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 대통령은 “어쩜 그리 말을 잘하세요”라고 감탄했다. 며칠 뒤 박 대통령은 그를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그는 박 대통령 곁을 10년간 지켰고, 2012년 대선 직후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지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상황실에서 나경원 후보의 당선 소식을 듣고 박수를 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선거구 15곳 가운데 11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왼쪽부터 윤상현 사무총장, 이인제 최고위원,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김을동 최고위원. [김경빈 기자]


 그는 이번 재·보선에서 자신의 꿈인 ‘호남의 새누리당 의원’을 실현하기 위해 세 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침내 그 꿈은 이뤄졌다. 정치권에선 ‘기적’이란 얘기가 나왔다. 새누리당이 전신을 포함해 호남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건 1996년 15대 총선 때 전북 군산을의 신한국당 강현욱 전 의원 이래 18년 만이다. 이 후보의 17대 총선 득표율이 1%였던 것을 떠올리면 혁명적 발전이다. 이날 순천-곡성의 투표율은 51.0%였다. 웬만한 총선 투표율에 육박했다. 이 후보가 지역주의를 넘어 호남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투표율로 이어진 거다. 상대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라서 대립각은 더 뚜렷했다.

 이 후보는 49.3%를 득표했다. 고향인 곡성에서 몰표가 나왔고 서 후보의 출신지인 순천에서도 앞섰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일단 기회를 한번 주신 걸로 알고 있다”며 “순천 시민과 곡성 군민이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 후보 선거전의 일등공신은 박 대통령도, 중앙당도 아닌 낡은 자전거 한 대였다. 그는 선거 내내 허름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홀로 유세’에 나섰다. 시 의원 출마를 포함한 3번의 과거 도전에서 “지역 조직보다는 밑바닥 민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택시·버스 기사와 환경미화원의 손을 잡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2년 동안 머슴처럼 쓰고,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호소했다. 그 호소는 먹혀들었다.

  이가영·정종문 기자 <ideal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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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