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맞은 병사가 후임 병사를 때리는 폭력구조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사건의 경우는 특이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군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무반 전체, 심지어 간부까지 폭행에 가담했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폭력구조의 정점에 있는 이모 병장은 평소에 '아버지가 조폭'이라고 강조하며 끈질긴 폭행을 주도했다고 하나 그 역시 자아와 자존감을 짓이기는 집단적 폭력구조의 피해자인지도 모릅니다.

유대인 여성 철학자 안나 아렌트가 직시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릅니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으로 남미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에게 잡혀 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지켜본 아렌트는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남겼는데요.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모범생이었고 도덕적인 가장이었으며 신앙심도 깊은 아이히만이 어떻게 유대인 학살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을까?' 아렌트는 선과 악에 대한 고민보다는 집단 속에 자기를 맡기는 평범함 때문이며 이게 모여서 거대한 악이 된다고 봤습니다. 폭행에 가담한 병사와 간부이야말로 '악의 평범성'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1&aid=0002554384

이 기사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언급했지만, 저는 루시퍼 이펙트가 좀 더 직접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저서『루시퍼 이펙트』와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필립 짐바르도가 TED에서 강연한 영상입니다. 강연에서 말한 내용의 자세한 부분은 그의 책에 나오는데, 이 사건과 연관지어서 읽어볼 만 합니다. 특히 여기에서 언급하는 '썩은 상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영상에서도 언급한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사건같은 일이 '썩은 사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사과도 썩게 만드는 '썩은 상자'가 존재해서 생기는 문제라는 사고의 전환 말이죠.

물론 그 가해자들은 인간 쓰레기라고 불러도 부족할 정도인 것은 맞습니다. 포털 댓글만 보면 지금 곧바로 총살시켜야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올해 들어서 생긴 군대에서의 사건사고들이 단순히 미친 놈들이 벌인 짓거리라는 것으로 보고 끝내기엔 교훈이 없어요. 그리고 저 기사에 보면 나오지만, 가해자 중 후임급은 자신들도 신병이었을 때 최선임 가해자 이 모 병장한테 죽지 않을만큼 맞았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썩은 상자' 속에서 똑같이 썩은 사과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부대 내에서 썩은 상자를 바꾸는 조치가 아무 것도 취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신병 전입 100일간은 특별히 간부들이 더 관심을 가지는게 원칙인데, 간부라고 있는 하사도 같이 가혹행위에 가담했으니.

사실 군부대 내의 이런 사고들이 하루이틀 그런 것이 아니고, 이걸 개선하려고 별의별 노력을 다 했지만(웃음체조는 해봤는데 정말 해놓고도 왜 했는지 모를 수준이었습니다), 썩은 상자에 대해 좀 더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군 자체적으로 대책이라고 내놓긴 할텐데, 사실 별로 기대는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