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훨씬 더 스토리화하기가 좋은 스포츠 종목이다. 1회부터 9회까지 객관적인 데이터만 늘어놓아도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 어떤 투수가 나와서 몇 회까지 공을 몇 개 던져서 삼진은 몇 개를 잡고 자책점은 얼마며 퀄리티 스타트가 어쩌구 저쩌구... 몇 회까지 어느 팀이 앞서갔는데 어느 타자가 3루타 또는 홈런을 쳐서 2루에 있던 누구를 불러들이고 어쩌구 저쩌구.

 

저걸 그냥 읽어도 독자들이 그 게임의 양상을 나름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다. 그냥 상상이 되는 것이다. 그림이 그려진다고나 할까?

 

하지만 축구는 그게 어렵다. 물론 나름대로 데이터를 만들 수도 있고 선수별 활동상을 묘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데이터를 접하면서 그 게임의 어떤 모습이 머리에 떠오를까? 머릿속 그림은 개뿔? 떠오르는 게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야구는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수준과 관중들의 재미라는 게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물론, 야구를 잘 아시는 분들이야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입에서 침 튀기실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그냥 평범한 관객들에게는 투수가 던지는 볼이 싱커인지 슬라이더인지 포크볼인지 구분할 능력이 없다.

 

어느 정도 기본만 되면 야구 게임을 보는 재미란 게 동네 아마추어 클럽끼리의 시합이나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 국가 대항전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엎치락 뒤치락 개싸움 등 실력 외적인 요인들이 선수들의 실력보다 훨씬 더 재미에 많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70년대에 고교야구가 그보다 훨씬 수준 높은 대학/실업야구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던 것도 다른 여러 가지 요인도 있겠지만 야구라는 스포츠의 이런 본질적인 특성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자,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우리 열혈 축구 팬들이 분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선수들의 수준에 따른 흥미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은 야구라는 스포츠 종목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내가 스포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당연히 전제하고 하는 말이지만, 옛날 주한미군 방송인 AFKN 채널을 통해 어쩌다 보던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합과 지금 컬러풀하게 보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재미라는 게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쟤네들은 왜 야구를 저리 단순 무식 무미건조하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동네 조기축구 아저씨들 뛰는 모습과, 우리나라 프로팀의 플레이, 유럽의 빅리그의 뛰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 그 다른 게 축구라는 스포츠를 이해할 필요없이 그냥 한눈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당연히, 선수들 수준이 높을수록 그 재미라는 게 엄청나게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게 된다.

 

월드컵이 괜히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가 된 게 아니라는 야그다.

 

야구라는 종목이 앞으로 더 확산되면 올림픽 종목에 다시 선정될 수 있고 어쩌구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로 가능성 없는 얘기다. 우리 학교, 우리 고향, 우리나라 팀 응원한다는 이기적 동기가 없이는 솔까말 야구는 순수하게 구경하는 재미란 점에서는 결코 축구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구 종목이 확산되지 못해서 올림픽 종목이 못 되는 게 아니고, 구경하는 재미가 없어서 확산이 안 되고 그래서 올림픽 종목이 안 되는 것이라고 본다.

 

음, 여기에서 결정적인 얘기를 하나 빼먹었다. 뭐냐고? 구경하는 재미가 아닌, 직접 몸으로 뛰는 재미는 어떨까?

 

이건 정말 순수하게 개인적인 성향 차이일 수밖에 없지만, 나로서는 야구가 더 재미 있었다. 중간의 어떤 매듭이 없이 계속 왔다갔다 하는 축구보다는 진행과 공백, 줄거리의 마디가 만들어지는 야구가 더 재미있었다. 스토리의 힘을 느꼈달까?

 

물론 평생 뛴 야구시합과 축구시합을 다 합쳐도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다 채우기도 힘든 주제에 이런 말 하기는 뭐하기는 하다. 그냥 그렇다고 ^^

 

날씨 더워서 그냥 심심파적으로 한 얘기이니, 너무 흥분하시지 않기를 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