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망설이다 이 글을 쓴다. 근래 내가 지켜본 두 차례의 결혼식과 그 전말이 직접 동기가 되었다.

학술논문이나 이론과는 거리가 먼, 사적이고 어찌 보면 공적이기도 한 개인적 관찰기록이 될듯 하다.

 

그 결혼식은 시청 앞, 세칭 1급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치뤄졌다. 신랑 어머니가 이름있는 원로급 드라마

작가인 관계로 얼굴이 익은 많은 하객들이 입추 여지없이 참석했다. 식사를 하면서 치러지는 신형 결혼식,

비용이 많이 들지만 최근 유행하는 예식이다. 예식 따로, 식사 따로, 이건 확실히 많이 번거롭다. 대부분

사람들이 식장 뒷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자기 밥그릇이 떨어질까봐 식이 끝나기도 전에 우루루 지하실

식당으로 몰려간다. 이런 광경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에게나 어울린다.

요즘은 옛날 귀족들처럼 식장에 마련된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아  중요한 예식 순서가 끝나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로 담소를 나누며 바로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따라서 어중이떠중이가 그 자리에 끼어들 수가 없다. 모두가 초대받은 사람들이며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

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지인들이다.

 

 목사님이 주례를 섰고 그리고 국내 유명 재즈 가수라는 여성 가객이 앞으로 나와서 축가를 목청 높여 불

렀다. 나도 티브이에서 몸집 좋은 그 여성 재즈 가수를 몇차례 본 적이 있었다. 신랑이 처조카인 관계로

나도 당당하게 그랜드 볼룸 앞쪽 자리에 앉아 그 모든 행사차례를 잘 지켜볼 수 있었다.

그곳 비용은 1인당 십만원 정도라던가? 이 부분에서 기억이 분명치 않다. 암튼 편하고 여유있고 기분 좋은

결혼예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신부의 모친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 부인이 아마추어 조각가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한달 쯤 뒤에 그 아마추어 조각가 부인이 우리집에 청동으로 조각한 비너스상을 선물로

보내왔다. 그건 내가 신부에게 선물한 졸저<음악에세이집>을 신부 모친이 보고 내게 자기 작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겨 보내준 것이다. 이것은 새로 사돈지간이 된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아주 기분 좋은 교환

이다. 예술적으로, 아니 취미상으로 서로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건 사돈지간 아니라도 기분 좋은 일이다.

아내는 귀중한 그 청동조각 비너스상을 거실 좋은 자리에 세워놓았다.

 

 나는 평소 거실에 이것저것 잡다하게 늘어놓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 한장도 거실에는 걸려있지

않다. 그림과 사진과 글씨를 받은 것이 몇개 있지만 베란다 창고 속에 모두 처박혀 있다. 거실에는 오직

오디오 세트와 tv 한대가 놓여 있다. 그러나 새로 사돈이 된 아마추어 조각가 부인께서 손수 자기 귀중한

작품을 보내줬는데 곧장 창고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거실 제일 좋은 자리에 그것을 세워

놓았고 나는 아침이나 저녁이나 거실에 나갈 때마다 아름다운 비너스의 모습과 마주치는 호사를 누렸다.

 

 이것은 결혼이 당사자 둘만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는 걸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아마추어

조각가인 사돈부인을 그 후로 만난 일은 없다. 만날 일도 없고 그런 기회도 없었다.

 

아름다운 청동비너스 상이 거실에 머물던 시기는 대략 4~5년, 그쯤 되지 않을까.

 

 신랑과 신부는  강남에 전세 아파트를 얻어 새 살림을 시작했고  사이도 무척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신랑은

 연예계 연출관계에 종사하고 있고 신부는 프리랜서로 음악 잡지 같은데 인터뷰 기고문을 쓰거나 방송국 스크

립터 일을 꾸준히 맡아 했다. 가끔 명절 같은 때 처가에 가면 부부가 사이좋게 나란히 참석해 시댁 어른들께

인사도 하고 특히 그 며느리, 내기 보기에 굉장한 미인은 아니어도 비교적 용모가 단정한 며느리가 시댁 어

른들에게 곰살맞게 구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며느리 참 잘 들였네."

아내가 시어머니인 언니에게 한 말이다. 원로 드라마 작가님도 그 말에 이의가 없다는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 손자가 태어났다. 이 집은 원래 자손이 귀한 집이다. 시아버지도 외아들, 신랑도 외아들,

삼대독자라던가. 며느리가 일년 채 안되어 건강한 아들을 낳았으니 이 집안에서 이 신생아가 얼마나 귀한 존재

가 되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