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요약한 내용인데, 앞 부분이 젤 맘에 드네요.

 

 

1장 원자론과의 만남

십대 후반의 독일태생 저자는 1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어수선함 속에서 10여명의 친구와 함께 도보여행을 한다. 여행 도중에 원자와 칸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야기 속에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행 말미에 고성인 프룬성에서 독일의 현실을 위한 청년모임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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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의 개념을 칸트의 선험철학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양자역사의 전 과정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감각인상의 경험을 이용하여 마음속의 표상을 만드는 객관적인 과정이다. 마음속에 표상이 만들어져야만 정신은 어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자는 감각인상에 의해 경험될 수 없다. 따라서 원자의 연구에 이르러서는 과학은 더 이상 객관적일 수 없다. 막다른 길이다. 이 지점에서 칸트의 선험적인 표상능력이 인용되고, 원자라는 객체는 주체인 마음속의 표상과 나누어질 수 없는 개념이 된다. 주체와 객체의 혼합이다. 즉 양자역학의 고유한 특징이다. 도보여행 말미에 프룬성 청년모임에서 바이얼린 연주곡 샤콘느를 듣고 이상과 열정과 현실의 합일을 경험한다. 20세기 자연과학의 큰 흐름 속에 철학과 음악이 존재한다.



2장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다

수학을 전공하기로 했지만, 수학교수가 데리고 있던 검은 강아지의 방해 때문에 물리학으로 바꾼다. 조머펠트 교수와 첫 대면을 하고 뮌헨대학에 입학해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다. 샤콘느를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롤프와 첼리스트 발터, 그리고 저자는 슈베르트 3중주를 위해서 자주 회합한다. 음악과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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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술에 있어서 표현의 내용과 표현수단의 제한사이의 투쟁이 실제로 예술이 탄생하는 필요불가결한 전제이지만, 과학에 있어서는 그 표현내용과 표현수단 두가지 모두를 만드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정신적인 내용에 가치 있는 표현형식을 부여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내용자체를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학은 인간의 인식을 만들고 예술은 그것을 표현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필자와 친구들은 이제 20세이다.



3장 현대물리학에서 이해라는 개념

평생 친구이자 동지였던 볼프강 파울리와 며칠간의 자전거여행에서 물리학과 이해라는 주제로 토론한다. 그 후, 21세인 1922년 초여름 닐스보어의 세미나에 참석해 반론을 편 후, 닐스보어와 산책을 하면서 양자이론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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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특히 물리학에서의 이해는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에서 양자역학이 안고 갈 숙명이 내비친다. 아인슈타인의 시간개념을 수학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개념적으로 이해하기엔 힘들다. 왜 그런가? 이해해야 안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종교에서는 신이란 개념으로 모든 현상을 서술하고 이해하려 한다. 다른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의 표상이나 개념으로 굉장히 많은 현상들을 통일된 연관성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표상이나 개념은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런데 과학에서의 전혀 새로운 개념이나 현상은 이를 서술할 알맞은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옛 언어로 이 개념이나 현상을 서술할 수밖에 없다. 이때의 옛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 바로 시언어, 철학언어이다. 따라서 혁명적인 과학의 언어는 시적인, 철학적인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과학과 철학, 문학의 결합이다.



4장 역사에 대한 교훈

보어와 첫 대면 1년반 후인 1924년 23세 Ep 덴마크에 있는 보어의 연구생으로 입학한다. 두 사람은 스앨란드 섬을 며칠간 도보여행하면서, 조국과 정치 그리고 학문을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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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조국과 정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며, 어떤 기준을 지녀야 하는가? 보어의 말을 빌면 독일의 프러시아식의 규율, 복종은 과학자에게 치명적이다. 북유럽식의 자유로움 즉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을 위한 동기가 아닌 내면적인 자유로부터 발로된 정열이 필요하다. 또한 과학자에게 있어서는 조국조차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성이 필요하다. 교수와 학부생이 정치, 민족에 대한 토론을 통해 인간적인 유대를 맺는다. 서로에 대한 탐색이며, 설득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진정한 인간관계에서부터이다.



5장 아인슈타인과 나눈 대화

1924년 24세때의 일이다. 원자물리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양자역학은 태동기를 지나고 있었다. 필자는 신병치료차 요양 중 필생의 업적인 불확정성 원리를 증명한다. 즉 한 원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후 베를린 대학에서의 강연을 마치고 아인슈타인과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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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자신이 뉴턴역학에 발판으로 한 칸트의 절대시공간 개념을 무너뜨린 장본임에도 불구하고 불확정성에서 제시된 인과율의 부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행성계로 비유되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움직이는 전자가 일정한 경로가 없다는 것, 원자가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한 상태에서 에너지가 빛으로 바뀌어 다른 상태로 옮겨 가는것을 수긍하지 못한다. 철학적인 인식론의 궁극까지 밀려 올려간 원자물리학에서 각자의 철학이 드러난다.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절대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를 상정하고 있다. 끝까지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낸 아인슈타인의 의문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자신의 세계를 벗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 드는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선가에서 '절벽 끝에서 한발 내 더 딛어라’ 라고 한다면, 과학에선 '자신을 부정하라' 라고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