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스타일과 컨텐츠, 즉 형식과 내용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한 말씀. 

흔히 형식과 내용은 서로 별개이고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형식은 내용의 반영이고, 서로 분리되기 어려운 불가분의 관계이다. 가령 어른이 되면 어른의 옷을 입어야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아이의 옷을 입고 다닌다면 어른 대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형식이 내용 그 자체인 것은 결코 아니다. 어른의 옷을 입었다해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형식을 바꾼다해서 내용도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의 옷을 찾아 입게되듯이 어디까지나 내용이 먼저이고 본질이며, 형식은 구태여 신경쓰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나중의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형식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내용보다 형식을 먼저 살피고 앞세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요즘 안철수의 새정치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 대부분 스타일 즉 형식의 문제에 얽혀있다. 마치 새정치라는 것이 어떤 정치적 스타일에 달려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안철수에게 있다. 가령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는 것이 새정치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타일의 문제일 뿐이다. 정치문화가 내용적으로 더욱 성숙하면 일부러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국회의원 숫자나 무공천 문제 역시 마찬가지. 그것은 마치 어른들이 무슨 색깔의 옷을 입을건가 고민하는 문제와도 같다. 새옷으로 갈아입기만 하면 새사람으로 바뀌는가. 

안철수발 새정치 담론의 위기는 국회의원 숫자라던가 무공천이니 전략공천이니 하는 형식 혹은 스타일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새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정책화하여 검증받고, 그것을 바탕으로한 내용적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해서다. 어떻게 정치개혁을 할건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정치개혁을 해서 뭘할 건가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씀. 

물론 안철수는 새정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 큰 사람만 대변해주는 정치가 아니라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 대신에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새정치입니다.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것이 새정치입니다.>


<새정치는 먼저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이다. 다음은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다. 마지막으로 평화로운 한반도다>
http://ppss.kr/archives/23655

그러나 턱없이 부족하다. 그 정도 이야기는 박근혜는 물론 정치인 누구라도 청산유수로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어떤 가수가 '영혼을 울려주는 노래를 하겠다' 라고 인터뷰하는 것과도 같다. 팬들이 기다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곡이 담긴 앨범이지 이런 저런 팬서비스용 언플이 아니다. 하물며 앨범의 표지 디자인을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에 불과한 이야기들은 솔직히 서민들 입장에서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다. 정 안되면 하다못해 민생해결 테스크 포스라도 띠우든지.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한국인들의 삶의 질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OECD 국가 평균만 되었으면 좋겠고 그걸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구체적인 방책을 내놓는 것이 정답이다. 한국이 그것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도 딱히 없고, 국민들이 안철수에게 기대하고 듣고 싶어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이 설마 국회의원 숫자나 급여를 OECD 평균에 맞추는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