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양치기 소년'으로 글을 썼다가.... 아래로 밀어버리고... 짜증나는 사진이 보이길래..... 주말들 잘 보내세요!!!! 아, 댓글에 대한 필요한 댓글은 다음 주에... ^^>





가끔 방송 등에서 겸양의 의미로 '저희나라'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을 본다. 


그래, 겸손할려면 너나 하셔. 


나까지 덩달아 '저희'에 포함시켜 전혀 할 생각이 없는 머리 숙이게 만들지 말고.



아래 사진이 주는 굴욕감... 나만의 느낌일까? 상사의 결재를 기다리는 부하직원의 모습.


무지개소녀 박근혜양, 당신은 '저희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아시겠어요? 써글....























(사진출처는 여기를 클릭)



(원포스팅 : 늑대와 양치기 소년)



늑대와 양치기 소년 동화의 등장인물들은 성서에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과 매핑된다.


양치기 소년은 아벨이고 동네 사람들은 카인. 그리고 매개체는 '야훼'와 '늑대' 


<-- 흐강님이 전지전능한 야훼를 늑대 따위와 매핑하다니 신성모독이다...라고 화내시지는 않을까? ^^



성서에서 카인은 '농경문화'의 상징이고 아벨은 '유목문화'의 상징이다.



그리고.........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은 인류의 문화가 '농경문화'에서 '유목문화'로 바뀔 것을 암시하면서 아벨의 죽음은 문화 이전의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 역시 마찬가지.


양치기 소년은 '유목민족'의 상징이며 동네사람들은 '농경민족'의 상징. 또한 늑대는 농경에서 유목으로 문화의 전이를 방해하는 방해꾼.



결국, 늑대라는 방해꾼에 의하여 이 동네는 농경에서 유목으로의 문화 전이에 실패한다.



어린 시절에 내가 '늑대와 양치기'를 읽었던.... 그 기억을 되살려 '문화'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탑재할 때 재해석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네이버의 한 웹툰에서 '늑대와 양치기 소년'에 대해 멋드러지게 해석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물론, 결론은 내 재해석과 유사하지만 그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과정보다 탁월하다.




그 웹툰에서는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현장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것이다.



정말 인간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이 웹툰을 보면서 캐즘 마케팅을 대입해 해석해 보았다.



양치기 소년은 innovators(혁신수용자) 또는 early adapters(선각수용자)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late majority(후기다수수용자) 또는 laggards(지각수용자)



그리고 한국의 정치 시장은 DJ나 노무현 정권 시절 innovators 또는 early adapters가 다수인 시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late majority 또는 laggards가 다수인 시장이 되었다.



물론, late majority 또는 laggards를 정치시장에서 비난하는 의도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late majority는 정치 시장에서는 Conservatives(보수주의자) 그리고 laggards는 Skeptics(회의론자)로 해석되는 것이 적당한 정치시장 용어이니 말이다.



요지는, 당시에 양치기 소년은 너무 서둘렀고 동네사람들은 너무 완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한국의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곱씹어볼 대목이기도 한다. 



단지, 한국에서의 양치기 소년이 동화 속에서처럼 늑대에 물려죽지 않고 생존해 있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