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사회란 '파레토의 법칙'을 적용한 80:20 사회 즉, 20%의 사회구성원이 그 사회가 창출한 부의 80% 과점하는 것을 넘어 1%의 사회구성원이 그 사회가 창출한 부의 99%를 독점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승자독식사회(The Winner-Take-All Society)는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의 책인 《승자독식사회》(The Winner-Take-All Society)에서 정의된 말로 흐음... 요즘에는 대입시험에서도 필독서로 추천되는 모양인데 아마.... 대학입시 시험에서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승자독식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도 그 승자가 되기 위하여 대학에 진학하려고 한다'라고 하면 만점 받는 모양입니다. ^^


대입시험용 승자독식사회 서평은 여기를 클릭하시고(링크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서평이 편리하기는 합니다만 대입시험에서 이런 서평만 가지고 시험을 치룬다..... 글쎄요.... 그 수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고등학생 수험생들도 고단하겠지만 과연 이런 시험절차가 맞는 것인지... 회의가 듭니다. 문득, 지난 문창극 사관 논란에 관련해서 식민지사관에 대한 '무식함'이 떠올려지는군요)


아래는 승자독식사회에 대한 경향신문의 기사입니다. 승자독식? 선거로 정권을 뽑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현상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최고통수권자는 자기가 일하게 편한 쪽으로 법률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맞고요.


그런데 말이죠.... 승자독식이란 '법률에서 정한 권한 범위를 행사하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그 행사의 결과는 '대한민국 이익의 최대점이 되는 지점을 고민하는게 맞죠'.


박근혜와 김기춘....

뭐, 김기춘이 유신헌법을 초안했다는 것과 문세광 사건에서 증거없이 자백으로만 문세광을 사형장의 이슬로 만들어버린 당시 담당검사였던 김기춘의 '사법살인 의혹' 전력은 그냥 넘어가줄께요. 안스러우니까.


그런데 김기춘의 경우에는 초원복집 사건에서 극단적인 지역감정을 부추킨 전력이 있죠. 이런 사람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쓰는 박근혜.


새누리당에서조차 김기춘 대안을 이야기하는데 김기춘 아니면 일 못한다는 박근혜.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대통령의 자격은 커녕 '장삼이사의 상식적인 사고능력'이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을 두고 승자독식사회라..... X신력 독점 사회가 더 적당한 표현 아닐까요?


이런 박근혜가 대한민국 이익의 최대점이 되게 고민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아무리 '최선의 선의로 해석'해도 그렇게 해석이 안되는데 말입니다. 뭐, 이건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출장보낸 수준이 아니라 상식을 라면에 밥을 말아드셨으니...



아래의 글을 읽으실 때 (심심하시면) 승자=영남패권...으로 대입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문단만 제가 조정했습니다)


“승자독식은 승자에게도 독약이다”

승자가 모든 과실을 독식하고 패자는 고사해가는 나라. 지배와 멸시, 군림과 굴종의 사회. 하지만 승자독식은 독약이다. 99%의 패자뿐 아니라 1%의 승자에게도 그렇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진다. 패자는 지배층과 부자를 증오한다. 저마다의 이기적인 무한투쟁. 우리 공동체의 자해행위. 우린 지금 승자독식의 부조리를 그냥 두고 봐야만 할 것인가?


승자독식사회(winner takes all socierty) 구성원의 삶은 고단하고 황폐하다. 2007년 대한민국의 초상이 참담한 이유는 그 그림이 ‘승자독식’이란 밑그림 위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자유경쟁, 발전과 진보라는 구호는 일견 화려하나 그 구호 밑에 존재하는 나락의 깊이는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승자독식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삶에 깊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개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라’는 어른들의 주문은 실상 기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학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청년들의 비율은 고작 10% 내외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머지 90%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원치 않는 학업 연장, 또는 백수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한국사회의 20대 청년의 월 평균 소득은 88만 원에 불과하다. 20대 청년 상당수가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처럼 빈약한 기대 소득으로는 인간다운 생활의 틀을 구축하기가 난망하다. 


승자독식 사회의 20대는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집단’으로 대우받기도 힘들다. ‘귀족 마케팅’ ‘10대 마케팅’ ‘실버 마케팅’은 있어도 ‘20대 마케팅’이란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사회의 20대는 부모에게 용돈을 받는 10대보다 구매력이 열악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년들의 미래에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는 경제력의 총량이 아무리 커도 지속적인 발전의 동력을 구하기 어렵다. 금융경제연구소 우석훈 연구위원의 지적처럼 한국의 20대는 ‘소외된 계층’ ‘버림받은 세대’다. 


승자독식 대한민국의 사회구조는 30~40대 장년의 삶, 노년의 삶에도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학령층의 자식을 둔 부모들은 천정부지의 사교육비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를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식들을 ‘승자의 반열’ 위에 올리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출혈을 감수한다. 


지속발전 가능한 사회시스템 필요


경쟁적인 사교육비 지출이 OECD 국가 중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의 극소수만 승자를 키운다는 소위 명문대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40대의 대기업 중간 간부 박형진씨(가명)는 날로 척박해지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적지 않은 연봉(8000만 원)에도 불구, 삶의 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600만 원짜리 월급쟁이지만 아이들 교육비 월 300만 원을 지출하고 나면 생활은 빠듯하다. 7년째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좀더 큰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소박한 꿈도 꿀 수 없다. 회사 내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50대 이후에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승자독식의 기업문화는 ‘선택받은 정규직’의 삶에도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고 있다. 엄정하고 잔인한 ‘인사고과’는 기업 안에서도 승자와 패자를 확연하게 가르고 있다. 승자에게 주는 혜택은 풍족하고 윤택하나, 패자에게는 가혹한 대가를 강요한다. 사람들은 이같은 기업문화를 ‘효율과 생산성을 강화하는’ 최선의 시스템으로 인식하고 있다. 


승자독식의 사회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1980년대 운동권 문화의 전통은 소위 ‘노-학 연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엘리트로서의 삶과 기층 노동자의 삶이 결합할 수 있다는 ‘공동체적 비전’에 근거했다. 그것이 비록 ‘이상적인 공상’이었다 해도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원숙한 시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2000년대 대한민국 청년세대의 문화는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협력게임’을 통한 집단적 해법보다는 개별적인 해법을 찾는다. 이들 스스로 승자독식 사회의 피해자면서도 ‘승자독식’의 사회원리를 저항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살벌한 ‘승자 위주의 사회 작동 메커니즘’은 재생산, 확산,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좀더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대학 학점 4.5로도 부족하다”면서 영어공부에 목을 매고, 기업의 인턴 프로그램 등 간접 사회경험에 매달린다. 그같은 노력은 그러나 ‘주체적인 결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부족하고 인생에 대한 다양한 가치가 발붙이지 못한다. 오직 물질적 성취로 상징되는 성공에만 매달리는 청년들을 양산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승자독식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확장하면서 미국과는 다른 사회 모델을 지향했던 유럽 국가들도 보수화하고 있다. 부유세를 폐지하고 복지 비용을 줄이는 유럽 국가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의 잇단 선거에서도 사실상 승자의 가치를 찬양하는 우파 정치세력과 그 지도자들이 각종 선거를 휩쓸고 있다. 


그러나 한국형 승자독식 문화가 가혹한 이유는 패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기업이 26세 미만의 청년을 채용하면 2년 동안에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최초고용법’(CPE)이 지난 4월 좌초됐다. 스위스의 지방정부는 공공일자리를 만들어서 20대를 우선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이런 추세로 양극화가 계속될 경우 사회 갈등과 대립이 전면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 심각할 경우 사회해체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금처럼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그래서 낡은 개념으로 치부되는 복지국가의 발전모델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패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없어


좌파정부로 낙인찍힌 참여정부 역시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에 메스를 대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세계화와 지식정보화의 빠른 진행으로 승자독식과 양극화라는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되고 있지만 세계화와 지식정보화를 늦추거나 경쟁을 줄이고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의 발전은 ‘경쟁을 통과한 우수한 승자’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승자독식의 사회문화는 경제적인 부분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는 정계와 문화예술계, 교육계, 대중문화와 체육계 등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승자에 대한 찬양이 이뤄지고 있다. 오직 톱스타만 주목받는 사회는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독립영화, 인디밴드, 언더그라운드들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좀처럼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승자독식 사회의 개혁 전략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분배를 통한 성장,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필요하다. 이를 지속가능한 발전의 전망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설정한 경제 주체는 오직 재벌과 대기업뿐이었다. 그러나 중소기업, 노동자, 농민, 영세 자영업자, 실업자도 경제 주체다. 이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발전 전략, 서민경제의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통계청에 의하면 올 1분기 상위 20%의 국민이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8배에 달했다. 그 격차는 날로 커지는 추세다. 승자에 대한 찬양은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대다수 약자와 패자에 대한 무관심과 경멸은 경제 규모 세계 12위의 대한민국의 지속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승자독식은 승자에게도 독약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