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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ndance Doesn’t Mean Health (by Mark Bittman)

풍요가 건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크 비트만)

 

* 출처: <뉴욕 타임즈> 독자의견란 / 2014122

http://www.nytimes.com/2014/01/22/opinion/bittman-abundance-doesnt-mean-health.html?_r=0

 

* 번역: 정성철 cittaa@gmail.com

 

The relatively new notion that around a third or more of the world’s population is badly (“mal”) nourished conflates hunger and diet-spawned illnesses like diabetes, both of which are preventable.

 

세계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는 비교적 새로운 견해는 잘못된 음식 섭취에서 야기되는 당뇨병 같은 질병과 기아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로 보는데, 그 둘 모두 저지될 수 있다.

 

Both result from a lack of access to quality food, which in turn can result from a lack of money. No one with money starves, and the obesity-diabetes epidemic afflicts predominantly people on the low end of the income scale. With money comes good food, food that creates health and not “illth,” to use John Ruskin’s word. With a lack of money comes either not enough food or so-called empty calories, calories that put on pounds but do not nourish.

 

양자는 양질의 식품을 섭취할 수 없는 데서 초래되는데, 이것은 돈이 부족한 결과일 수 있다. 돈 있는 이들은 굶주리지 않으며 비만과 당뇨병은 주로 소득순위의 최하층에 속하는 이들을 괴롭힌다. 돈이 있으면 양질의 식품을, 존 러스킨의 말을 빌리면, “결핍이 아니라 건강을 창출하는 식품을 획득한다. 돈이 부족하면 충분하지 않은 식품 또는 소위 알맹이 없는 칼로리, 즉 살은 찌게 하지만 영양분은 주지 않는 칼로리를 획득한다.

 

This is made very clear in Oxfam’s “Good Enough to Eat” index, a snapshot of the state of eating in 125 countries released last week. The index attempts to determine the best and worst countries in which to eat, by measuring levels of undernourishment and underweight in children; asking “do people have enough to eat?”; measuring costs of food versus other goods and services, to see whether food is affordable; looking at the diversity of people’s diets and the availability of safe water; and monitoring diabetes and obesity levels to learn whether the diets are healthy.

 

이것은 옥스팜의 식품섭취 수준지표, 즉 지난 주 발표된 125개국의 식품섭취 상태에 대한 일람표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그 지표는 아이들의 영향부실 및 과소체중 수준을 측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충분한 양의 식품을 갖고 있는지질문함으로써, 식품 구입비용과 다른 재화 및 용역 구매비용을 비교함으로써, 식품 가격이 감당할 만한지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식품섭취의 다양성 정도와 깨끗한 식수의 가용도를 확인함으로써, 그리고 식품섭취가 건전한지 여부를 알기 위해 당뇨병과 비만 수준을 조사함으로써, 가장 잘 먹는 나라들과 가장 못 먹는 나라들을 가려내려는 시도이다.

 

The results for the United States make a fine case for American exceptionalism, though not in the way chauvinists will find pleasing.

 

미국의 결과치는 미국 예외주의를 훌륭히 예시해 준다. 비록 국수주의자들을 기쁘게 해줄 방식으로는 아니지만 말이다.

 

We rank first in food affordability; food is cheap compared with other things we buy, and prices are relatively stable. We also rank highly (4th) in food “quality,” which is measured by (potential) diversity of diet, though access to good water is shockingly low (tied for 41st, about a third of the way down the list).

 

우리는 식품 가용도 면에서는 일등이다. 식품은 우리가 구매하는 다른 것들에 비해 저렴하며 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식품의 질 면에서도 순위가 높은데(4), 이것은 식품섭취의 (잠재적) 다양성에 의해 측정된다. , 깨끗한 식수의 획득 수준은 충격적으로 낮다(41등인데, 이는 리스트의 하위 3분지 1선에 해당한다).

 

Then the hammer falls: When it comes to healthy eating as measured by diabetes and obesity rates, we’re 120th: sixth from the bottom, better off only than Saudi Arabia, Kuwait, Jordan, Fiji and our unlucky neighbor Mexico. (Canada fares a little better; it’s 18th worst.) We’re also in a tie (with Belarus and other powerhouses) for 35th in “enough to eat.” Really.

 

이어 어안이 벙벙해진다: 당뇨병과 비만 비율에 의해 측정된 식품섭취의 건전성 정도 면에서, 우리는 120위이다. 이것은 맨 꼴찌에서 여섯 번째로,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피지 그리고 우리의 불행한 이웃 나라 멕시코보다 나을 뿐이다. (캐나다는 우리보다 조금 더 낫다. 맨 꼴찌에서 열여덟 번째이다.) 우리는 또한 식품섭취 수준면에서 35위로, 벨라루스 및 몇몇 강대국들과 동급이다. 정말이다.

 

In fact, it’s hard to imagine having a food supply as abundant as ours and doing a worse job with it. There are reasons for this:

 

사실, 우리나라처럼 식품공급은 풍부하지만 식품섭취 수준은 열악한 나라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 지경이 된 데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Much of what’s grown with the potential to become “food” is actually turned into (as Michael Pollan dubbed them) edible foodlike substances in short, junk food that produces the opposite of health. (About this there can barely be an argument any longer.) Some of what we grow is also turned into fuel for automobiles, doing no one but corn farmers any good. And much of it is fed to animals, in itself not a terrible thing, although the way we do it is damaging on many fronts.

 

* “식품이 될 잠재력을 지닌 채 성장한 것의 상당 부분이 건강의 정반대물을 생산하는 (마이클 폴란이 명명한 대로) 식용 가능한 식품성 실체들 - 간단히 말하면, 정크 식품 - 이 된다. (이것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어떤 논란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성장시키는 것의 일부는 또한 자동차를 위한 연료가 된다. 이것은 옥수수 경작자들 말고는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 그리고 그것의 상당 부분이 동물들에게로 가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하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파괴적이다.

 

While we generally manage to keep the neediest quarter of our population from actually starving, we do not reach everyone who could use help; for example, only half of those Californians eligible for food stamps (officially known as the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actually get them, according to Roots of Change, a California nonprofit that focuses on food. And, of course, food stamps can be and often are used to buy junk, a pattern that causes as many problems as it alleviates.

 

* 우리는 대체로 우리 인구의 가장 궁핍한 층이 실제로 굶주리지는 않게 하고 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손을 뻗치고 있지는 못하다. 예를 들어, 식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캘리포니아 비영리 단체인 <변화의 뿌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식권 (공식적으로 영양 보조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수령 자격자들 중 절반만이 실제로 식권을 수령한다. 그리고, 물론, 식권은 정크 식품을 구입하는데 이용될 수 있으며 종종 이용되는데, 이것은 문제들을 완화시키는 만큼이나 문제들을 야기한다.

 

The budget for food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pales compared with the marketing budget for junk food, and much of that education is either unconvincing or ignored in the face of the barrage of “fun to eat” ads for the food that is worst for us. (These three charts, gathered in one place by Tom Philpott, pretty much tell the story.) There is, as I’ve complained before, no concerted effort to teach people how to cook, which cannot happen without simultaneously teaching people how to shop for real food.

 

* 미국의 식품교육 예산은 정크식품 마케팅 예산과 비교할 때 초라하며 그 교육의 상당 부분은 설득력 없거나 최악인 식품을 먹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광고들의 장벽 앞에서 무시된다. (톰 필포트가 한 곳에 모은 이 세 도표들은 꽤 잘 요점을 전달한다.) 내가 이전에 비판했던 대로, 사람들에게 요리법을 가르치려는 아무런 조직적 노력도 행해지지 않는다. 그 가르침은 물론 사람들에게 양질의 식품을 구입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행해져야 한다.


There are also issues of economic justice and education, and all their complications, which is why talking about food and eating inevitably leads to talking about the structure of society.

 

경제적 정의와 교육을 둘러싼 쟁점들, 그리고 그것들 모두의 함축들 또한 있는데, 이것이 식품과 식품섭취에 관한 얘기가 불가피하게 사회구조에 관한 얘기로 이어지는 이유이다.

 

Part of the problem lies in oversight. Although we have a first lady who cares about these issues (and presumably has the support of the president), we do not have an official government policy or agency responsible for coordinating and assuring that the nation’s investment in food and agriculture is for a nourishing and healthful food supply.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partly fills that role, but it also has a clear conflict of interest, since its primary goal is to support what has become a system of industrial agriculture that cares more about production and marketing supports than about what happens to soil, water and air, or the health of consumers who buy its products. (One need look only at budgets to determine what any individual or agency cares about most.)

 

문제의 일부는 간과에 있다. 우리에게는 이 쟁점들에 신경 쓰는 (그리고 대통령의 지원을 받는) 퍼스트 레이디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식품 및 농업 투자를 영양분이 충분한 양질의 식품의 공급을 확보하는 것에 그 목표가 있도록 조직하는 공식적인 정부 정책이나 기구를 갖고 있지 않다. 농무부가 부분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익의 충돌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농무부의 일차적 목표는 토양, 물 그리고 대기에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의 생산물들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건강에 보다는 생산과 마케팅 지원에 더 신경 쓰는 산업화된 농업 체제를 뒷받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안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개인이나 기구가 무엇에 가장 신경 쓰는지 알 수 있다.)

 

In the long run, what’s needed is not a Farm Bill that tangled mess that’s been stalled in Congress since its expiration in 2012 but a national food and health policy, one that sets goals first for healthful eating and only then determines how best to produce the food that will allow us to meet those goals. It doesn’t make sense to tell people to eat vegetables and then produce junk; that leads only to bad health in the face of evident abundance. What’s so great about that?

 

장기적으로, 가장 필요로 되는 것은 농지 법안 - 2012년에 만료된 이래 의회에서 통과가 지연되고 있는 뒤죽박죽 골칫거리 - 이 아니라 전국적인 식품 및 건강 정책, 건강하게 하는 식품섭취를 제일의 목표로 설정하는 정책이다. 그런 정책이 나와야 비로소 그 목표를 충족하는 식품을 생산하는 최상의 방책을 결정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채소를 먹으라고 얘기하고는 정크를 생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명백한 풍요 속의 건강 악화를 야기할 뿐이다. 이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