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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Unexpected Odd Couple: Free Markets and Freedom (By Patricia Cohen)

뜻밖에 짝이 맞지 않는 한 쌍: 자유시장과 자유 (패트리샤 코엔)

 

Ukrainians took to the streets in December 2004, but democratic revolutions there and elsewhere, in places like Georgia and Kyrgyzstan, did not have the expected results. In China, economic growth coincide s with one-party rule.

 

우크라이나인들은 200412월에 거리로 나섰지만, 그곳 그리고 조지아와 키르지스탄 같은 그 밖의 곳들에서 민주주의 혁명들은 기대되었던 결과를 낳지 못했다. 중국에서, 경제성장은 일당통치와 한 덩어리이다.

 

 

* 출처: 뉴욕 타임즈 / 2007614

http://www.nytimes.com/2007/06/14/world/14democracy.html?ref=world

 

* 번역: 정성철 cittaa@gmail.com

 

When President Bush declared last week that political openness naturally accompanied economic openness, his counterparts in Beijing and Moscow were not the only ones to object. Liberal and conservative intellectuals, even once ardent supporters, have backed away from the century-old theory that democracy and capitalism, like Paris Hilton and paparazzi, need each other to survive.

 

부시 대통령이 지난주 정치적 개방이 자연스럽게 경제적 개방을 수반한다고 선언했을 때, 베이징과 모스크바에 있던 그의 상대들이 반감을 품은 유일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한때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던 자유주의적 및 보수주의적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패리스 힐튼과 파파라치처럼 생존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백년이나 된 이론에서 발을 뺐다.

 

From China, where astounding economic growth persists despite Communist Party rule, to Russia, where President Vladimir V. Putin has squelched opposition, to Venezuela, where dissent is silenced, developments around the world have been tearing jawbreaker-size holes in what has been a remarkably powerful idea, not only in academic circles but also in both Republican and Democratic administrations that capitalism and democracy are two sides of a coin.

 

공산당 통치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중국에서 대통령 블라디미르 V. 푸틴이 반대세력을 억누르는 러시아, 그리고 이견을 내놓은 이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이룩되어온 발전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학계에서만이 아니라 공화당 행정부와 민주당 행정부 양자 모두에서도 지배적이었던 생각에 커다란 구멍들을 내왔다.

 

“People, including myself, still have reasons to think it will eventually happen,” Francis Fukuyama, a political economist at the Johns Hopkins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said of China’s evolution to democracy. “But the time frame has to be a lot longer.” At least in the next couple of decades, he said, it is likely that “the authoritarian system will keep going and get stronger.”

 

나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은 아직 그것이 결국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들을 갖고 있다라고 존즈 홉킨즈 고등 국제연구 학교의 정치경제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중국의 민주화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는 적어도 앞으로 20년여 동안 권위주의적 체제가 계속되고 더 강해질 것 같다고 말한다.

 

Mr. Fukuyama, perhaps more than anyone else, has been associated with the idea that capitalism and democracy are inextricably linked. In his famous essay, “The End of History,” written in 1989 as the Soviet Union was in decline, he declared that all nations would ultimately develop into Western-style liberal democracies.

 

후쿠야마는 아마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분리불가능하게 얽혀있다는 생각을 품어왔던 인물일 것이다. 1989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집필한 그의 유명한 에세이 <역사의 종말>에서 그는 모든 나라들은 궁극적으로 서구 스타일의 자유민주주의들로 발전할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There was great hope in the early 1990s,” said Michael Mandelbaum, the author of the forthcoming book “Democracy’s Good Name: The Rise and Risks of the World’s Most Popular Form of Government.” The belief was that rising incomes would create a middle class that would agitate for personal liberty and political power. The tipping point seemed to occur when per capita income reached somewhere between $6,000 and $8,000. True, there were exceptions like tiny Singapore with its growing wealth and one-party state, but they were often dismissed as too small or transitional to really put a dent in the theory.

 

곧 출간될 <민주주의의 미명: 세계의 가장 인기 있는 정부형태들의 발흥과 위험성>의 저자인 마이클 만델바움은 “1990년대 초에 커다란 희망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믿음은 소득 증대가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권력을 위해 나설 중산계급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이었다. 전환의 시점은 일인당 소득이 6,000 달러에서 8,000달러 사이 어딘가에 도달할 때일 것 같았다. 부가 증대해 왔으면서도 일당 독재가 행해져온 조그만 싱가포르같은 예외들이 있기는 하지만 종종 그 나라들은 그 이론을 손상시키기에는 너무 작거나 과도기에 있다고 치부되었다.

 

Yet, as the free market and autocrats gained power in the Caucasus, Central Asia, Latin America and Russia, the initial optimism about democracy’s sure-footed march faltered. Some scholars pointed out that the American experience, where democracy and capitalism arose at the same time, was not so much a model for the rest of the world as an anomaly. “Capitalism came before democracy essentially everywhere, except in this country, where they started at the same time,” said Bruce R. Scott, an economist at Harvard Business School who is finishing a book titled “Capitalism, Democracy and Development.”

 

그러나 자유시장과 독재가 카프카스, 중앙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러시아에서 나란히 힘을 얻음에 따라, 민주주의의 거침없는 행진에 관한 초기의 낙관주의는 한풀 꺾였다. 몇몇 학자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동시에 발흥했던 미국의 경험은 세계의 나머지의 모델이라기보다는 변칙이라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시작되었던 미국을 제외하면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세계 어디서나 민주주의 보다 먼저 출현했다라고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발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경제학자 브루스 R. 스콧은 말한다.

 

“In the rest of the world, it took 100, 200, 300 years before they got to where they could manage a democracy,” Mr. Scott said. A big mistake, he said, was assuming that “all you had to have was a constitution and an election and you had a democracy; that was really stupid.”

 

세계의 나머지에서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100, 200, 300년이 걸렸다라고 스코트는 말한다. 그는 큰 착오는 헌법과 선거를 갖추기만 하면 민주주의를 갖춘 것이라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가정이었다고 말한다.

 

Joseph E. Stiglitz, a Nobel laureate now at Columbia University, agrees that one of the biggest changes since the early 1990s is an appreciation of the complexity and limits of democracy.

 

현재 콜럼비아 대학교에 있는 노벨상 수상자 조셉 E. 스티글리츠는 1990년대 초 이래 가장 큰 변화들 중 하나는 민주주의의 복잡성과 한계에 대한 인정이라는데 동의한다.

 

As more fledgling democracies fail, various theories have surfaced to explain the appearance of democracy and elections without real freedom. Fareed Zakaria, a columnist and author of a book on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suggested that some countries Singapore, Peru and Russia, for example went through a stage of “illiberal democracy,” where there was robust economic growth but few political liberties like a free press, the rule of law and personal liberty until liberal habits and institutions had a chance to develop.

 

햇병아리 민주주의가 자꾸 실패함에 따라 실질적 자유가 없는 선거들과 민주주의의 출현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했다. 컬럼니스트이자 민주주의의 발전에 관한 책의 저자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몇몇 나라들 - 예를 들자면, 싱가포르, 페루 그리고 러시아 - 은 자유주의적 관습들과 제도들이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되기 전까지 자유로운 언론, 법의 통치 그리고 개인적 자유 같은 소수의 정치적 자유들이 없는 채로 건실한 경제성장이 일어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단계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Then, just after the start of the Iraq war, “There was a miniburst of optimism” that capitalism was leading to democracy after all, Mr. Mandelbaum said, with three popular uprisings in Ukraine, Georgia and Kyrgyzstan and elections in Gaza, Lebanon and Egypt in 2005. The burst quickly fizzled though, when the democratic “revolutions” proved short-lived and prone to violence and corruption. Now some scholars argue that a free market can even end up undermining democracy. “Capitalism doesn’t necessarily lead toward democracy at all,” Mr. Scott said. “The one thing that you can say is that capitalism is going to relentlessly produce inequality of income, and eventually that is going to become incompatible with democracy.” That is where political leadership and institutions come in.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크라이나, 조지아, 키르지스탄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2005년에 가자, 레바논, 이집트에서의 선거들이 치러지면서 자본주의가 결국 민주주의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주의의 소규모 분출이 있었다고 만델바움은 말한다. 그 분출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민주주의 혁명들은 수명이 짧고 폭력과 부패에 물들기 쉬운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제 몇몇 학자들은 자유시장은 민주주의를 잠식할 수조차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스콧은 말한다.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자본주의가 가차 없이 소득의 불평등을 야기하리라는 것, 그리고 결국 그것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이다라고 스콧은 말한다. 정치적 지도력과 제도들이 요구되는 지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Another problem, said Lord Dahrendorf, a research professor at the Social Science Research Center Berlin, is that when democracy fails to deliver the economic goods, people begin to doubt its value. “Few things seem more difficult and yet few things are more important for sustainable liberty,” he wrote recently, “than to separate capitalism and democracy in people’s minds.” Otherwise, instead of mutually reinforcing each other, the two spiral into disenchantment.

 

베를린 사회과학 연구센터의 연구교수인 다렌돌프 경은 또 하나의 문제는 민주주의가 경제적 재화들을 제공하는데 실패할 때 사람들이 그것의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분리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우면서 자유를 유지하는데 더 중요한 것들은 거의 없다고 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를 강화하는 대신 그 둘은 실망과 환멸에 이르는 나선운동을 할 것이다.

 

Even if capitalism does not assure democracy’s existence, many economists and political scientists say it creates a hospitable atmosphere and helps democratic systems withstand turmoil. Nor should we forget, Mr. Stiglitz counsels, that “the movement from closed to open society is a very big change.” To compete economically, a nation has to be plugged into the global information network, which exposes its citizens to other political systems and cultures. Reinforcing that trend, Mr. Mandelbaum said, is that the “habits and values of a market economy, when transferred to the political sphere, make for a democracy.”

 

많은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현존을 보장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개방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고 민주주의 체제가 혼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스티글리츠가 폐쇄된 사회에서 개방적인 사회로의 이동은 매우 큰 변화이다라고 조언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나라든 경쟁력 있는 경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정보망에 접속되어 있어야 하며 이것은 시민들을 다른 정치체제들과 문화들에 노출시킨다. “정치영역으로 이전될 때 시장경제의 관습들과 가치들이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사실은 그 추세를 강화한다고 만델바움은 말한다.

 

But China, he acknowledges, is “the big enchilada, the big test.” Even with its growing middle class, it still has a billion poor people. Pressure for democracy will increase, but so will push back from China’s leaders. So far they have been successful. “The Chinese government is pretty good at buying off intellectuals and the middle class who fear disorder much more than they want political participation,” Mr. Fukuyama said.

 

그러나 그는 중국이 큰 관심사, 큰 시험대임을 인정한다. 중산층이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빈곤층은 여전히 10억 명에 달한다. 민주주의를 향하게 하는 압력은 증대하겠지만 중국의 지도층으로부터의 반대압력 또한 증대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성공해 왔다. 후쿠야마는 중국 정부는 정치적 참여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무질서를 두려워하는 지식인들과 중산층을 매수하는데 꽤 유능하다고 말한다.

 

He added that he would not be surprised if China and even Russia were to come up with a “new type of authoritarian ideology that tries to justify” their non-Western systems. He has already heard the outlines of such arguments which echo the “Asian values” idea of non-Western cultural norms that lead to different development paths from Chinese intellectuals and Russian policy makers.

 

그는 중국, 그리고 심지어 러시아가 그것들의 비서구적 체제들의 정당화를 시도하는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 이데올로기를 찾아낸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이미 중국 지식인들과 러시아 정책입안자들로부터 - 서구와는 다른 발전 경로를 향하게 하는 비서구적 문화규범들의 아시아적 가치들이라는 생각을 반영하는 - 그러한 논변의 윤곽을 접한 적 있다.

 

Where the theorizing spills out of the classroom, though, is around the question of what can be done to influence the process. This is where stark differences appear, not between liberals and conservatives, but between the professors and policy makers. As Mr. Fukuyama said, one point on which he has differed from neoconservatives in the Bush administration is that, “I think, in general, the United States can’t do very much.”

 

그 이론화는 그 과정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무엇이 행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지점에서 강의실 밖으로 흘러넘친다. 서로 다른 답들 사이의 차이는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가 아니라 교수들과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 더 두드러진다. 후쿠야마가 말하는 대로, 그가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자들과 갈라지는 한 가지 논점은 내가 전반적으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