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 엠바웃님의 글 (소득세 누진제도의 역설: http://theacro.com/zbxe/5083345 )에 대해서 약간의 토론을 하였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단순히 주장의 논리적 순서가 이해가 안되서 그 베이스가 되는 팩트들에 대해서 질문과 (데이터) 요청을 엠바웃님께 드리고 각 질문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게살레님과 함께) 몇번의 반론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좀 꼬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뻐서 관련된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볼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엽적인 것에 너무 매몰되서 큰 그림은 팽겨쳐두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가 자료를 다시 검토해보겠다라는 약속을 드리고 이리저리 읽어보면서 생각을 정리중이었는데, 오늘 보니 확인의 결과님이 경종을 울리는 코멘트를 주셨군요.

"댓글들을 읽고 느낀 감상은 에디슨이 전구다마의 부피를 알려달라고 수학잘하는 엔지니어에게 요청했더니 열심히 자로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을 보고 느꼈을 헛똑똑이의 느낌과 비슷한듯.

출처(ref.) : 정치/사회 게시판 - 소득세 누진도의 역설(부제: 조세와 소득재분배의 관계) - http://theacro.com/zbxe/free/5083345
by 엠바웃



맞습니다. 헛똑똑이였네요. 물론 지금까지 데이터를 읽어본 소감은 솔직히 엠바웃님의 주장 - 누진세를 강화하는 것보다 소비(특히 부가가치세)를 더 올리고, 직접세는 직접적인 인상보다는 혜택/면제를 줄이고 자영자들의 탈루를 막아 세원을 넓히는 방법을 통해 앞으로 예상되는 복지지출의 증가에 대비하자 - 라는 것에 그 데이터만을 가지고 동의하기 어렵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이 말이 엠바웃님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단지 주장의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의 근거 또는 세금을 걷는 방식을 가지고 논쟁의 실마리를 삶는 것은 꼬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이죠. 특히 (저같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진보쪽에서는 여기에 (즉, 세금걷는 방식에) 매몰되면 논쟁에서 이기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입니다. 이거 가지고 왈가왈부해봤자 결론이 뻔한 쪽으로 가겠죠. 


결국 돈이 없는데, 무슨 복지냐. 아니다 너희들(1%)이 여태껏 쌓아안 돈을 봐라 이거 거져먹은 것이지 않느냐. 에이 그렇게 올려봤자 돈이 얼마나 모일까. (지리한 증명하기 힘든 데이터 싸움.......) 그런데, 그러면 직접세 전부 다 올려서 같이 희생할래? 오오옷 세금폭탄. 어쭈, 보편적 복지하자며? 그래도 상위소득자가 돈 많이 내잖아? 블라블라... @#$$!#^&&**&(*&%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야권이 이기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지난 여름에 박근혜 정부에서 세금을 올릴려고 할 때 한 민주당이 세금폭탄이라면서 부르짖던 자가당착적인 모습만 다시 연상이 됩니다. 제가 그때 이것은 단지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빙자해서) 모자란 국고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세금을 올리는 것 같다, 즉 복지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세금인상같다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http://theacro.com/zbxe/899594) 그때도 실은 마음 한구석에서 진보쪽에서 세금 올리는 방법 가지고 왈가왈부해봤자 이후로 좋을 것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금 올리자라는 말을 하면, 보수쪽에서는 일할 의욕 상실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레토릭을 들고 나올 것이 또 뻔하죠.


복지논쟁 - 즉 보편적 복지를 할 것인가, 선별적 복지를 할 것인가 - 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세금을 어떻게 걷느냐는 물론 실무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지엽적인 문제이거나, 아니면 단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먼저 있고, 그러면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서 주도권을 쥐어 나가야 승리할 수 있고, 그리고 세금문제는 부가적으로 그 청사진에 (기술적으로) 끼워서 맞추는 전략을 써야한다는 것이죠.

엠바웃님이 하신 말씀중에서  (실은 이게 인정된 팩트인지 누군가의 주장인지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만)  

"세금을 걷어서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정도 보다 정부 지출을 통해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정도가 더 크다"  (주장1)

라는 것이 있었는데 - 편의상 주장 1이라 부르겠슴 - 제가 이 주장1에 대한 레퍼런스를 엠바웃님께 요구를 한 이유는 이것을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제 여태까지의 직관으로는 그렇다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확신을 받고 싶어서 그랬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쉽게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올 초 즈음에 한그루님이 가져다 주신OECD 국가들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보고서 + 오마담님이 긁어오신 지난 20년간의 한국 남녀 직업 및 임금에 관한 논문에 의하면 (글이 너무 많아서 reference 못찾겠음, 이 비루한 검색능력 oTL)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 한국은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여성들의 일자리가 왜곡되어 있는데, 이 영향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육아나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죠.

즉 이런 식으로 보편적 복지를 하면 사회전체의 불평등을 완화시킴과 동시에 파이까지 같이 키울 수 있다라는 쪽으로 논의를 옮겨가자는 것입니다. (이 결과로 후에 세금을 낼 수 있는 역량이 늘어난다까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세금을 얼마나 내고 있는냐를 먼저 따지는 방어적 논쟁을 하기보다,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우리의 사회 인프라가 어떻게 잘못되어 인적자원(Human Capital)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느냐를 발굴하는 공세적 논쟁을 해야 국민들에게 흥행이 되는 이슈 선점이 된다고 봅니다.

보수주의자들과 세금 논쟁을 하면 인센티브의 저하를 핑게로 저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보수주의자들과 복지에 성장잠재력을 끼워서 논쟁을 하면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세금은 조삼모사(리카르디안 등가)이기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 

전에 복지논쟁이 한참 피어올랐을 때가 2010년도 지방선거와 그 이후의 서울시장 보궐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의 주된 이슈는 무상급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애들 밥먹이는 것 가지고 선별적 복지를 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냐라는 식이었죠.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정서적인 접급이었고, 당시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앞으로 이런 식의 접근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야권이 (정부나 여권에서 나올) 돈을 이 정도 써야겠으니 세금으로 이 정도를 준비하자라는 소극적인 이슈에 말려들기 보다 좀 더 적극적인 이슈를 발굴해서 치고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