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고령화문제부터. 

고령화가 공적인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다. (노후걱정이 필요없는 일부를 제외하고) 국민들 대다수가 노년기의 최저생활비용을 준비하지 못하는 상태이거나, 노년기에 소득을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 고령화문제의 근본적이고 올바른 해결방법은 논리적으로는 간단하게 도출된다. 국민 각자가 경제활동기간동안 노년의 최저생활비용을 미리 준비할 수 있거나, 노년기에도 그만큼의 소득을 올릴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이런 저런 대책들이 주장되는 것이고, 대표적인 것이 복지제도를 통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복지제도를 통한 해결은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이고 올바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편법 혹은 꼼수이기 때문에 계층간 세대간 사회적인 갈등이나 납세저항 경제활동위축등 여러가지 부작용의 발생은 당연하고 결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열거하면서 복지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선후관계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기도 하고, 부작용없는 편법을 주문하는 이상한 논리이기도 하다. 그들이 해야할 일은 복지제도보다 부작용이 작은 편법을 제시하거나, 근본적인 해결방책을 내놓거나이다. 그도 아니면 고령화문제는 신경쓸만한 일이 아니라고 하거나.)

그러면 혹시 복지제도등과 같은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고령화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책을 찾을 수는 없을까? 

우선 생각해 볼 수있는 것은 노년기에도 최저생활비용 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하면 되겠다. 그러나 싱싱한 노동력을 보유한 청장년층도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비틀대고 있는 현실에서, 늘그막의 노동력으로는 경비원 청소원 주유소판매원등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거의 전부이다. 그나마도 중장년층의 대거 진입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으며, 듣기로는 65세 정도가 사실상의 정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재의 경제상황에 매우 특별한 변동이 없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무소득의 노년기에 사용할 최저생활비용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도대체 왜 국민의 대다수는 노년의 생계비용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여러가지 답변이 가능할 수 있겠다. 

첫번째는 그럴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임금을 받거나 소득을 올렸지만 흥청망청 낭비를 했을 수 있다. 물론 일부는 그랬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주된 요인이라면 고령화문제는 더 이상 국가가 신경쓸 일이 아니고 공연한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내버려두면 각자 알아서 낭비를 줄이고 노후를 준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어느 나라든 당대의 경제력 수준에 대응하는 최소한도의 생활수준이라는게 존재하고, 국민들이 특별하게 그 이상의 낭비를 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후진국 국민 수준으로 생활하면서 버는대로 열심히 저축했다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사실상 후진국인건데 다들 선진국 문턱이라는 거대한 착각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되버리고, 놀라운 경제성장이니 한강의 기적이니 하는 소리들은 모두 뻥이었다는 말인가. 

두번째는 국민들이 기대수명의 급격한 증가에 미처 대응을 못했을 수 있다. 자료를 보면 지난 1990년부터 20여년동안 한국인들의 기대수명이 70세에서 80세로 10년이 늘었다. 따라서 국민 각자는 무소득의 노년기간을 실제보다 짧게 계산하고, 그거에 맞춰서 살림을 꾸리고 주어진 소득에 만족하고 그랬을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주된 요인이라면 고령화는 단기간의 문제이다. 기대수명이 어느 정도 길어진 이후에는 그거에 맞춰서 행동할 것이고 따라서 고령화문제는 처음에는 심각하다가 점점 완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고령화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단기간에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통상의 예측과는 어긋난다. 

세번째는 문자 그대로, 노년의 생계비용까지 준비하기에는 소득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임금이나 소득이 노후대비는 고사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데 급급한 수준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즉 임금이나 소득이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총비용보다 낮아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이득을 취했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이것이 정답인 것 같고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만약 세번째가 정답이라면, 대책은 자명하다. 국민들의 임금이나 소득이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총비용 수준으로 높아지면 된다.  방법은 두가지다. 직접소득을 올리거나, 복지제도등의 소득재분배를 통해 간접소득을 높이는 편법을 도입하거나이다. 아니면 수많은 노인들이 최저생활은 고사하고 목숨 유지에만 급급한 참담한 광경을 담담하게 구경하거나. 

여기까지에 이르면, 저출산문제 역시 위와 마찬가지의 논변 과정을 통해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출산 역시 두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 당대 사회의 평균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노동력을 갖추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현재의 부모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다. 과거에는 그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식량과 약간의 교육비용만으로도 당대 사회에 필요한 평균적인 노동력을 갖춘 성인으로 키우는게 가능했고, 그래서 많이들 낳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그러한가? 

더 많은 논변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결국 고령화와 저출산문제는 자본주의적 모순이 빚어낸 현상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전제가 제거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고령화와 저출산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공허한 맥락속에 빠지고 마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