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결국 사퇴했습니다. 조부의 독립활동 보도로 여론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였는 데 전격적으로 사퇴를 선언하고 무대 뒤로 퇴장했습니다. 사실 14일간이나 도하 모든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으니 얼마나 심신이 지쳤겠습니까. 엊그제  입술이 부르튼 것을 보았는 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겠죠. 사실 과거 다른 후보자의 예를 보면 문창극 후보자는 오래 견뎠죠 그래서 저는 지인에게 "저 양반도 참 대단하다. 언론인이고 선비 기질이 있어서인지 강골인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무너지고 마는 모습을 보니 언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무튼 문창극 씨는 이제 후보를 사퇴했으니 마음을 추스리고 건강을 돌보면서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창극 후보자가 사퇴를 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빌려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발언을 듣고 참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문창극 씨를 청문회에 세울 생각이 있었으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하니 "청문회를 못가 안타깝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문창극 씨를 조롱하는 것이고 문창극 씨를 지원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준 것이나 다름없죠. 문창극 씨의 사퇴는 자신이 시킨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안타깝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은 참 뻔뻔스러운 일입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이 천명한 국가개조나 개혁에 문창극 씨가 진실로 합당한 인물이라고 판단해서 지명했다면, 터무니없는 왜곡과 흑색선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문창극 씨가 두들겨 맞을 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사퇴를 하니 애석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은 전혀 진정성이 없는 얘기입니다. 박 대통령의 언행은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하기까지 합니다. 보스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 제 마음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뭐하러 열성적으로 지지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듭니다. 그래서 문창극 후보가 사퇴한 이후 속상해서 박 대통령도 사퇴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보수적 성향을 보인 직원들에게도 "다시는 새누리당을 찍지 말라"고 했습니다. 문창극 씨에 대한 새누리당의 행태는 등 뒤에서 칼을 찌르는 것이었고, 박 대통령은 수수방관한 비겁자였습니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의리가 없는 인간들입니다.

문창극 씨 사퇴로 박 대통령은 정국이 수습되기를 바라겠지만 오산이죠. 당장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고 국정운영의 뒷받침이 되어주었던 보수층의 분열이 시작되고 있죠. 문창극 씨 사퇴 후 일베를 잠깐 봤더니 완전히 멘탈이 붕괴된 것 같더군요. 박 대통령을 향해 무자비한 욕을 하기도 하고 지지철회를 선언하는 사람도 나오고 심지어는 '하야하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보수적 여론을 이끌었던 조갑제 씨를 비롯한 보수적 지식인들의 이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갑제 씨는 "청문회라는 민주적 문제해결 절차가 있는데도 자신의 인기관리를 위하여 문창극 씨를 자진사퇴 형식의 속임수로 희생시키는 것은 비정상적 대통령제 운영 방식이다. 자신이 비정상인데 누구를 정상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이젠 朴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보수적 인터넷 사이트인 뉴데일리 등도 일제히 박 대통령을 향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한국경제의 정규제 씨도 문창극 씨의 사퇴는 박 대통령의 중대한 실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을 지원해 왔던 보수적 지식인들의 비판은 박 대통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아마 새민련을 비롯한 야권의 비판보다 배신감을 느낀 보수적 지식인들의 비판이 더욱 매서워질 것입니다. 누군가를 믿었는데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면 더욱 화가 나는 것이 인간의 심리죠.

박 대통령이 참 아둔한 것이, 문창극 씨를 사퇴시킨다고 해서 새민련을 비롯한 야권이 조용해질리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곧바로 새로운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당장 새민련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진보 언론들은 국정운영 능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번 문 후보자 사태를 통해 무책임뿐 아니라 정국 운영에 대한 무기력과 무능력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비판하기 시작했고 말많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다시 정조준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민련이나 진보 언론들은 이미 박근혜 정부의 약점을 확실하게 잡았으니 목적을 이루기 위해 흡혈귀처럼 물어뜯을 것입니다. 문창극 씨의 사퇴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야권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뼈다귀만 남은 채 처참한 몰골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욱이 자신들을 지원해 준 지원군까지 등을 돌렸으니 더욱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자업자득( 自業自得)이고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솔직히 제 심정으로도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은 속된말로 개박살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문창극 씨의 사퇴를 보면서 박 대통령의 원칙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박 대통령이 지나치게 원칙주의자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종시 이전이 정치권의 논란이 되었을 때, 제가 보기에는 세종시 이전은 분명히 잘 못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원칙을 부르짖으며 세종시 이전을 찬성하길래 자신의 약속 때문에 거시적 안목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보통 고집이 아니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식언을 밥먹듯이 하는 정치인들보다는 조금은 낫다는 판단을 했기에 크게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문창극 씨 사퇴를 보면서 박 대통령의 원칙이라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득만을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짜로 원칙을 중요시한다면 문창극 씨를 청문회에 서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보였거던요. 그럼에도 14일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결국 사퇴에 이르게까지 한 것은 너무나 원칙과 거리가 먼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창극 씨를 청문회까지 끌고 가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그러한 행태야 말로 원칙주의가 아니라 기회주의적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원칙주의는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아무튼 그동안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한 사람으로서 문창극 씨 사건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비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늘 한국의 정치가 정정당당했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선거에서의 승패든 정책의 비판과 비난이든 정치인들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야 한국의 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편법과 꼼수가 판을 치는 정치가 계속되는 한 한국 정치는 퇴행적인 행태를 거듭할 것이고 정치불신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최소한의 도리와 의리는 지켰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이번 문창극 씨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의 모습은 배신과 부도덕, 기회주의의 잔영(殘影)이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