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이 여론 검증을 못견디고 청문회장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사퇴했다. 안대희에 이어 총리후보가 연속으로 청문회도 못거치고 낙마하자 일각에서는 여론 검증의 잣대가 비현실적으로 높은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온다.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 지도급 인사중에서 현재의 잣대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라는 주장이다. 그러자 대통령이 지명하면 여론이고 나발이고 청문회장에 직행해야하는 것이 신성한 원칙이자 절차라는 헛소리까지 나돈다. 

나는 공직후보자에 대한 우리나라 여론 검증의 잣대가 선진국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지 못한다. (듣기로는 선진국 수준이라는 말도 있고, 아직은 그에 모자란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여론 검증의 잣대가 너무 철저하면 안된다는 소리는 어불성설이고 개소리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까다로워서 문제가 생긴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국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치가 문제인건데, 우리나라 정치 수준에 맞춰서 국민을 끌어내려야한다는 주장이 말이 되겠는가. 

물론 일각의 주장들이 전혀 헛소리인 것만은 아니고, 나름의 일리는 있다. 여타의 정치 문화들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턱도 없는데, 국민의 여론 검증 잣대만 갑툭튀해서 선진국 수준으로 높은 바람에 균형이 맞지 않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따라서 여러가지 파열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거쳐야할 부작용에 불과하고, 어쩌면 우리나라 정치에 블루오션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사실 안철수는 우리나라 정치 영역에 블루오션이 존재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은 왜 하필 여론 검증의 잣대만 갑툭튀해서 높은가이다. 현재의 대통령을 뽑은 것도 국민이고, 현재의 정치인들에게 뱃지를 달아준 사람들도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내 나름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1. 선출직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임명직들에게 투사되어 화풀이를 하고 있다. 
2.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거기에 이르렀다고 여기지 않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있다.
3. 블루오션에 걸맞는 정치상품들을 내놓는 능력있는 정치세력이 아직 없어서 소비자선택권이 제약당하고 있다. 

결국 위의 문제들이 선행적으로 해결되어야 여론 검증의 잣대만 잔뜩 높은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 그런 점들을 간과한 채 여론 검증의 잣대만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물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여론 검증을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으로 몰고 가고 싶어하는 정치세력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