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조선닷컴>은 보훈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문 후보자의 조부가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이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보훈처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주 총리실 쪽에서 문 후보자의 조부와 2010년 보훈처가 발굴한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이 같은 분인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이름 한자와 본적(평북 삭주), 증언 등을 볼 때 현재 동일 인물로 강하게 추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0624010007352


국가보훈처에서 갑작스럽게 문창극의 조부가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국가보훈처 관계자 설명도 그렇지만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요. 몇가지 의문점을 정리해봤습니다.


(1) 문남규 선생의 출생년도, 본적과 같은 인적사항은 미확인된 상태


성명 문남규

생존기간 미상 ~ 1921

출생지 미상

운동계열 만주방면

 

http://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12819

 

(2) 공식적으로 최종 확인 된 것은 아니라는 보훈처 관계자 설명


보훈처 관계자는 다만 "정식 절차에 의한 최종 확인은 아니고 비공식 요청에 의해 확인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최종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0623182303788

 

(3) 2010년 문남규 선생 훈장 수여 시에는 문창극 측에서 찾아가지 않음


보훈처는 이미 문남규 선생에 대해 2010년 11월 순국선열의 날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바 있다. 그러나 문남규 선생의 유족이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수여하지 못하고 보훈처가 보관해 왔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0623182303788

 

(4) 문남규 선생(1920)과 문창극 조부(1921)의 사망연도 불일치 의혹


민족문제연구소 유은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발굴된 사료로는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독립단 주00 휘하 소대 대원으로 1920년(민국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고 이 같은 내용이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실려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면서 "국가보훈처 발표와 달리 독립신문 기사의 문맥을 볼 때 선생은 1921년이 아니라 1920년에 전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립신문의 기사는 당시 여건상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실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623205708986


가장 큰 문제점은 문남규 선생의 본적은 미확인 상태인데 국가보훈처가 사망지인 삭주라고 한 것입니다. 문남규 선생이 출생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국내진공 작전 중에 평북 삭주에서 돌아가셨는데, 국가보훈처는 뜬금없이 사망지를 출생지로 바꿔치기 한 것이죠. 마치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셨다고 뤼순 출신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셈이죠. 1920년대 초는 만주에서 독립군이 국내진공을 시도하던 시기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창극이 처음 친일 논란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조부가 독립운동가라고 밝히지 못하고 왜 지금와서야 뒤늦게 밝는지도 의문이 있습니다. 2010년 국가보훈처에서 문남규 선생에게 훈장을 추서할 때 확실한 근거 자료에 따라 문창극 가족이 찾아가거나, 국가보훈처에서 문창극 가족에게 훈장을 수여했다면 논란이 애초에 없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