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김가김가님의 아뒤가 제목에서는 표시가 되지 않네요..... ^^



id: 김가김가님께서 맹자의 고난을 언급하셨는데요..... 그 디테일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맹자의 성선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신동아에서 읽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조용필의 광팬이니까요.... ^^



1. 우선, id: 김가김가님께서 언급하신 맹자의 고난 구절


<맹자(孟子)>「고자장구(告子章句)」下 15장


天將降大任於斯人也인대    (천장강대임어사인야)----------------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必先勞其心志하고             (필선노기심지)----------------------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苦其筋骨하고                   (고기근골)--------------------------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餓其體膚하고                   (아기체부)--------------------------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窮乏其身行하여                (궁핍기신행)------------------------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拂亂其所爲하나니             (불란기소위)------------------------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是故는 動心하고 忍性하여  (시고 동심 인성)---------------------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增益其所不能이니라          (증익기소불능)-----------------------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2. 그리고 맹자의 고난과 성선설의 연결 고리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선한 성을 타고나지만 모두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인의예지의 4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의 실마리를 힘껏 배양하고 확충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고 이것을 군자(지배자)와 소인(피지배자)을 구분하는 근거로 삼았다. 즉 군자는 그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반면 소인은 보존하지 못하고 상실한다는 것이다.

(브리테니커 대백과 사전에서 발췌)



3. 그래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맹자의 성선설, 고난을 극복하고 선한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연결 구도를 가지고 있죠.



조용필 노래 속의 맹자 사상

仁義, 萬物一體, 與民同樂, 終身之憂…

 

그럼에도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고 함으로써 현실에서 초라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주인공의 고민은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잖아’에 있고 그의 꿈은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에 있다. ‘순은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수 있었는데’라면서 향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한탄하는 내용과 단어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1대 1로 대응한다.


여기에 나오는 고흐는 삶이 불행했다 할 수 있지만 남긴 업적은 미술계의 ‘킬리만자로 산정’이다. 맹자는 하늘은 큰 인물을 내기 위해 반드시 시련과 고난을 주어 모자라는 부분에 대한 능력을 길러준다고 했다. 고흐는 이 고난을 이기고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조용필도 개인적으로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왔다.

 

(중략)


인간은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공통적인 요소의 발견은 성선설의 근거다. 맹자는 맛, 소리, 빛깔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바가 있음을 들어 사람의 마음에도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인의(仁義)라고 했다. 인의는 인간의 본성이며 보편적 사랑이다. 따라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말하는 사랑은 인의의 사랑이고 하늘과 하나가 되는 꿈이라 할 수 있다.


(하략)

(전문은 여기를 클릭)



4. 성서의 고난은 그리스 용어로 '아가페' 그런데 맹자의 고난은?


(인문학도 고수들이 득실득실한 아크로에서 입 재게 놀렸다가 채일까봐.... 간단하게 기술합니다. ^^)



고대 그리스 언어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는 많았죠. 플라톤이 '본질적 실재인 이데아에 대한 동경'으로서의 아가페를 설명했는데 맹자의 고난은 바로 이 용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죠. 이 아가페를 기독교에서 '신의 절대적인 사랑'이라고 해석을 하죠.



개념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의 철학자들의 생각은 매핑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서양이 '절대신'이라는 개념에 지배되면서 이 매핑은 이상하게 변질이 되버리죠.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만, 피노키오님께서 기독교가 인류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쳤다...라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기독교가 인류 역사에 끼친 유일하다시피한 좋은 영향은 예수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씀 정도.........?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