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창극 식민사관 논쟁을 지켜보면, 각자가 고난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한 바를 간략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이것은 무신론자인 제가 이해한 바이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으로 기독교 신학을 다룬 분들의 교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인간에게 닥친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 이라는 기독교식 신앙관 자체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 시각이 타당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종교의 자유에 해당되니까요. 그런데 문창극이 논란거리가 된 것은 그런 신앙관 자체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신앙관을 이용해 자신의 식민사관을 식민사관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고 합리화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문창극의 식민사관을 공격하는 것을 두고 기독교식 신앙관의 미존중 혹은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일부의 반응은 근거가 없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기독교는 똑같은 고난이라도 각각의 성격에 따라 종류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시련, 벌, 필요악 이렇게 구분한다는거죠.

시련 - 고난을 당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하나님의 섭리 구현을 위해 고난을 주신 것. 예를 들어 몹쓸병에 걸린 욥, 예수의 십자가형, 순교자들의 고통 

벌 -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당연한 징벌적 고난. 에덴 추방,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우상숭배같은 이단행위에 대한 심판 등 

필요악 - 나중에 귀히 쓸 사람들이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고난을 주어 따끔하게 가르치는 것. 광야 40년 생활, 바빌론 유수, 장님이 된 바울 등

길모 회원이 문창극에 대한 물타기용으로 가져온 김대중의 서신을 보면, 김대중은 군사독재나 5.18등을 시련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런 고난을 당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거 같은데 고난을 당하고 있고, 이런 시련을 주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죠.

그러나 문창극은 다릅니다. 문창극의 식민지배 고난에 대한 이해는 일단 시련의 성격인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필요악인거 같기도 하고 벌인거 같기도 하죠. 최대한 양보해도 필요악이고요. 그러니 김대중의 서신을 들고 와서 물타기를 하려는 것은 고난에 대한 기독교적 인식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논쟁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죠. 

다음은 문창극의 강연 내용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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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도 그러면 왜 그럼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그런데 저는 아까 말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거예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이거예요. 우리가 지금 와서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핏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서 지금 이것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게, 지금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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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게 강조한 문구를 보면, 문창극은 적어도 식민지배를 필요악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나아가 식민지배라는 고난의 원인이 일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죠. 그리고 그런 고난을 거쳐서 이러저러하게 변화 발전할 수 있었다는 진술을 합니다. 심지어 '지금 이것의 뿌리' 라는 말로 식민지배가 오늘날의 우리가 되는 것에 기여한 바 크다라는 인식까지 드러내죠. 이것이 식민사관이 아니면 대체 뭐라고 불러야한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련과 필요악은 엄연히 다른데도 이처럼 교묘하게 섞어서 혼란시키는 것이 바로 기독교를 이용하여 혹세무민하는 것이고,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극우적인 이념과 식민사관을 기독교의 외피로 둘러싸서 합리화하는 것이죠.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을 체벌하는 것도 알고보면 다 아이들 잘되라고 하는 것이고 필요악이라는 생각에 그런 것 맞습니다. 이런 것을 '체벌 긍정 교육관' 이라고 부르죠. 문창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민지배를 우리 민족을 위한 필요악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상 '식민 긍정 사관' 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것이고,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누이 그런 것이죠. 식민사관이라고 부르든 말든 '식민지배는 필요악이었다' 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죠. 체벌긍정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 "체벌은 필요악이다. 어쩔래" 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야 누구 입장이 더 올바른지 따져보기라도 할 텐데 <식민사관이라니 부당하다> 이러니까 논쟁이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구요. 

문창극의 사관을 식민사관으로 부르면 안된다고 기를 쓰고 방어하는 이유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체벌 긍정 교육관'을 가진 사람이라 해서 무조건 폭력부모나 폭력교사가 아닌 것처럼, 식민긍정사관이라해서 무조건 친일파매국노는 아닌겁니다. 논리구성만 잘하면 그것도 하나의 의견으로써 존중받을 수 있을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