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민이 문창극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한국 근대사 공부를 하고 있다. 역사 해석에 참극이 벌어졌다고 여론이 분분하지만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맞는 이야기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른바  문창극 신드롬이다.


문창극이 했던 강연의 전문을 살펴보니 옳은 말만 골라가면서 하셨다. 그런데 옳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즉 시어미가 하느냐 친정 엄니가 하느냐에 따라서……. 문창극 씨 강연은 일본 총리가 했으면 딱 맞는 말씀이지만 한국의 총리가 될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온누리교회 강연은 저희 교인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삶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단련시키셨구나, 그 고난 속에서 길을 열어주셔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문 씨의 해명이었다. 

또 문 씨를 변호하는 어떤 이가 이렇게 썼다.

“문창극은 자기들만의 공동체(교회)에서 자기와 같은 신앙(기독교)을 믿는 사람(기독교 신자)들을 상대로 자기가 믿는 종교(기독교)의 신앙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자기의 종교의 경전(성경)과 교리에 입각해 비유하고 해석해 강연을 했다.” 

그 말은 맞다. 그런데 그 내용을 그들끼리만 알고 은혜(?)받고 하면 좋은데 문창극이 하필이면 재수 없이(?) 교회 장로이어서 숭미, 반공, 반복지, 개발, 체제수호, 단기목표 지향을 주요 가치로 삼는 기독교 보수 세력의 의식이 세상에 여실히 들어난 것이다.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특별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단 보수기독교에 편입되면 문창극 장로님처럼 생각을 하게 되도록 프로그래밍화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나도 직업으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은 문창극씨가 했던 말과 매우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이는 있었다. 바로 함석헌이었다.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그래도 또 쓰고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써 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찢었다가 그래도 또 모아대고 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 역사, 이것이 역사냐?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내 나라요, 네 역사며 내 역사니라.”

"젊은 혼들아, 일어나라. 이 고난의 짐을 지자. 위대한 사명을 믿으면서 거룩한 사랑에 불타면서 죄악에 더럽힌 이 지구를 메고 순교자의 걸음으로 고난의 연옥을 걷자. 그 불길에 이 살이 다 타고 이 뼈가 녹아서 다하는 날 생명은 새로운 성장을 할 것이다. 진리는 새로운 광명을 더할 것이다. 역사는 새로운 단계에 오를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원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1930년대에 식민지 지식인 청년들이 200명도 채 읽지 못하던 김교신이 발행하던 성서조선이라는 소책자에 연재하던 글이었지만 6.25 직후에 책으로 냈고 다시 1965년도 개정판을 낸 책이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니 수 많은 글 중에 딱 하나의 부정적인 글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극우 보수 온라인 매체인 데일리라는 곳에 조우현이라는 쓴 글이었다. 그는 “함석헌은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아마추어인 그의 고난의 역사관을 아주 선의로 해석하자면, 20세기 고난의 한국사 앞에 걸어본 ‘대역전 한 방의 기대’이리라. 문제는 책 전체에 깔려있는 패배주의 심리이다.”라고 정의를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현재를 미화하고 싶은 욕구가 글을 잘못 읽게 한 것 같다. 이런 심리는 문창극의 사과문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인이 겪은 고난을 강조한 문의 강연은 함 선생의 글과 비슷한 것 같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문창극은 고난을 준 것도 하나님이고 길을 열어준 것도 하나님이지만 함석헌은 고난 속에서 민중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즉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민중이다. 이것은 아주 미묘한 차이 같지만 정반대의 결론을 가져 올 수 있다.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시련을 통해 우리 민족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우리는 해방을 맞았고, 공산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명제는 조국통일입니다. 통일도 이루어 질 것을 믿기에 우리 분단의 상황은 아프지만 견딜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시련이 더 강하게 했단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무조건 결과를 미화하기 위한 논리일 뿐이다. 함석헌은 그런 유치한 논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고통 속에서 뜻을 찾자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고통당하는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원리를 밝히는 것이다. 문창극의 논리대로라면 지금도 끝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제 3세계 민중들은 하나님이 장차 잘되게 하기 위해서 계속 달달 볶는 중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의 요점은 민중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함석헌은 6. 25 직후에 잿더미 속에서 3 백만의 동족이 골육상쟁을 벌인 미증유의 고난을 당했던 우리 민족의 입장을 역사의 맨 끄트머리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뒤로 돌아갓!" 하고 명령을 하시면 고통을 제일 많이 당한 한 민족이 역사 개척의 선두에 설 사명이 있다고 예언자적 표호를 쏟아 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