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너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아주 조악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강간했습니다. 이 남자는 오랜 준비와 치밀한 계획 끝에 여자를 강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강간은 불행의 시작이었을 뿐, 여자는 남자의 집 으슥한 지하창고에 갇혀 인신을 완전히 구속당했습니다. 남자의 목적은 여자의 완전한 사육이었죠. 그녀의 몸과 정신 모두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폭력으로 때로는 구슬림으로 그녀를 대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자는 늘 같은 말을 했죠. 이 모두가 너를 사랑해서 하는 짓이라고, 너는 내 것이라고..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남자와 여자는, 이웃집 사람의 제보로 경찰이 들이닥치기 까지, 꼬박 36년 동안의 기막힌 동거생활을 한 겁니다. 

이 비유에서 목사가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방법, 곧 올바른 신앙고백은 어떤 형태가 되야 할까요?

1)남자의 행동이 하나님의 법과 정의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성경말씀을 통해 분명히 선언해야 겠죠. 남자의 죄를 묻고, 남자의 회개 부터 촉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로 그쳐서도 안되죠. 피해자 여성 앞에서의 진심어린 사죄도 요구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 요구가 모두 충족되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설교를 해야, 그게 진정한 "신앙고백"이 되는 거죠. 

2) 1)의 충족을 요구하는 전제에서, 목사는 여자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가 있습니다. 너가 그렇게 아픈 경험을 한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다. 과거의 상처에만 매여있지 말고 주님이 너를 용서하셨듯, 너도 그 남자를 용서해라. 너가 용서하는 만큼 주님이 너의 영혼을 새롭게 채워주실 거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소명을 새로이 깨닫게 되면 너의 아픈 과거에도 분명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있었음을 알게 될 거다..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일어서라!      

여자를 향해 하는 조언이 이런 맥락에서 나와야지, 그게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기독교적인 용법이 되는 것인데..

문창극의 발언을 보라는 겁니다.

문창극은 애초에 1)을 말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됐으니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위의 비유와 연결하면)니가 그 남자 집에 갇혀서 36년을 보냈지만 나올 때 보니 살이 포동포동 쪄서 나왔더라. 그러니 더이상 남자가 너한테 한 몹쓸 짓에 대해 떠들고 다니지 마라는 소리 아닙니까? 

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이씨조선의 안습한 현실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뭡니까? (위의 비유와 연결하면)남자가 강간하고 36년동안 인신구속한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강간 당하기 전 여자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늘어놓으면서 은근히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거죠. 차라리 니가 잡혀온 것 때문에 더 잘먹고 잘입고 산 측면도 있지 않느냐? 또 니가 강간 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니가 평소 옷을 야하게 입고 다녀서 그런 측면도 있지 않느냐?  

문창극의 얘기의 시종일관이 이렇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가 그런 맥락과 의도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다 보일 건데..

근데도 혹자들은 이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어법이랍니다. 

세상에, 저도 모태로 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이지만 1)의 죄를 덮기 위해 2)만 강조하는 문창극의 어법을 두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쉴드가 가능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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