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창극이 일제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야권은 "문창극은 친일"이며 그 주장을 "식민사관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비난한다.
식민사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조선말기 조선의 상황은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총체적 난관인 상황이었다.
2) 이 난관을 해결할 유일한 방도는 조선보다 앞서 문명개화한 근대국가의 (식민지) 지배뿐이었다. 당시의 조선 혹은 조선민족은 이미 자율적으로 이 난관을 돌파할 역량이 소진되어 버린 민족이었다. 
3) 식민지배는 필연적인 결과다.
 
야권이 주장하는 바에 따라 문창극의 주장이 식민사관에 근거했다는 것이 되는 이유는 식민지배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선택한 것으로서 '필연적인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야권의 주장과 논리는 성서적 역사관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성서적 역사관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하나님이 역사를 만드는데 그 역사는 결과론적이다. 그 과정에 이르는 순간순간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합치하는 최선의 역사는 아니다. 사람의 의지, 혹은 사단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역사도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택한 행위도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한 역사도 아니다. 역사를 통틀어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최후의 순간만이 하나님이 뜻하는 역사로 귀결될 뿐이다.

연속적인 시간에서 지나온 모든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하나님이 선택한 것으로서 "결과다"라고 말하면 독재자와 파시스트들의 학살의 역사, 전쟁, 살인, 고문들이 모두 하나님이 선택한 '결과'가 돼 버린다.

하나님이 선택한 '결과'이니 사람은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 하나님의 필연으로 받아들여라는 뜻으로 문창극이 주장했다며 문창극의 주장이 식민사관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비난하는 야권의 억지인데...

그 추악한 역사적 사실들을 인간(하나님의 뜻을 저버린)이 만든 행위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결과라고 보면 인간은 그런 역사에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회개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이 그런 추악한 역사를 만든 것이고 인간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매순간 회개하고 반성하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세례를 받은 성도들에게까지도 회개하고 반성하라고 가르친다.

결과론에 바탕한 성서적 역사관은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과정으로 본다. 그 과정은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이 개입하는 역사다. 세계가 멸망하는 최후의 순간, 최후의 심판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인간과 따르지 않는 인간을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결과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재할 뿐이다.

이러한 성서적 역사관에 따를 때, 연속적인 시간에서 모든 역사적 사실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에는 항상 인간이 개입한다. 그 과정은 시련일수도 있고 축복일 수도 있다. 시련의 역사도 축복의 역사도 모두 최후의 심판에서의 구원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시련에도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문창극의 말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 식민사관에 근거했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잘못됐다.
1) 모든 개개의 역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런데 야권은 결과라고 했기 때문에 야권은 틀렸다.
2) 모든 개개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인간이 개입하기도 한다. 그런데 야권은 모든 개개의 역사에 인간은 절대 개입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개입한다고 했기 때문에 야권은 틀렸다. 
3) 하나님이 필연적이라고 하는 결과는 개개의 역사(식민지배 등)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세계멸망의 최후의 심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야권은 이러한 세계멸망의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식민지배를 두고 필연적인 결과라고 했기 때문에 야권은 틀렸다.

2. 여려운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 쉽게 이야기를 풀어보면, 식민지배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던 것은 우리 나라 기독교 뿐만 아니다. 일본의 기독교(제국주의시대~1960년대까지의 일본 기독교)에서도 식민지배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과 일본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서로 전혀 다른 의미에서 나왔다.

우리 나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제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극복해야할 대상, 나쁜 것, 최후의 역사로서의 하나님의 역사에 반하는 일시적 과정, 시련.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서 하는 말이다.

일본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본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바람직한 결과, 좋은 것, 일본 민족에게 부여한 동양 평화의 사명을 확인한 것, 축복,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서 하는 말이다.

물론 일본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성경 전체를 봤을 때 "하나님의 뜻"을 잘못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는 제국주의 침략, 살인, 고문, 강간, 도적질을 정당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면서도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관점이 정반대라는 것이 명백한데도 한국기독교에서 말하는 "식민재배는 하나님의 뜻"을 일본 기독교에서 말하는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과 같이 식민사관에 근거한 것이며,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지적 수준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3. 내가 새누리당의 일을 돕고 있다는 이유로 내가 새누리당의 편에서서 이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진영논리를 극복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면 야권이 주장하는 모든 주장도 타당성을 얻지 못한다.

문창극의 잘못과 오류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문창극도 사실은 섭리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해방전후사, 남북분단이후 대미관계 등과 관해서 문창극의 생각은 기독교적 역사관과 전혀 무관하며 심지어는 배치되기도 한다.

나는 다만, 야권이 제대로 문창극을 공격하기를 바라면서 문창극이 친일이다. 문창극은 식민사관을 가졌다고 하는 야권의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억지라는 것을 썼을 뿐이다. 야권의 억지 때문에 일본이 망동한다. 야권은 정신차리길 바란다.

4. 1755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하필이면 그날 '만성절'이라는 행사를 위해서 리스본의 가장 독실한 신자들이 모인 교회당이 내려앉았다.

"어찌 하나님이, 하나님을 가장 믿고 따르는 사람만 골라서 지진으로 목숨을 앗아가게 한단 말인가?" 포르투갈 의 신자들 외에도 유럽의 신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그 사건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내려진 계기가 됐다.

그 사건 이후로 일부는 하나님을 버리고, 또 일부는 하나님을 더욱 따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