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초부터 우리 사회가 어떤 말 하나 글 하나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거나 마녀사냥식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문창극 강연을 접근하였습니다.
또한 종교적 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것을 일반적 시각에서 재단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봤고요
지금도 표현의 자유와 관용이라는 것과 불완전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기도 하고 변절도 하는 인간의 본질을 볼때 어느 한시기의 말이나 주장만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재단한다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문창극의 강연은 강연 내용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문창극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문창극이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신학적 근거도 없고 역사적 맥락도 없고 논리적 인과관계도 부족한 강연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나 그가 평생을 언론에 종사하면서 우리나라 2등가는 일간지의 주필등을 지냈고 말과 글로 살았다는 점에서 그의 지적인 게으름 그리고 허접함을 개탄하며 국무총리로서 기본적인 능력과 자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문창극의 강연의 문제를 비판해 보겠습니다.

1.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
문창극의 강연을 관통하는 주제가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도 그 부분이고요
그런데 우리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 운운은 비성서적입니다.

우리나라에 과거 나운몽이나 박태선등 이단의 교주들 또는 민족주의적 기독교인들중 동방의 빛 감람나무 등을 가지고 우리 민족이 이 시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고 선민이며 종말의 때에 한국을 사용한다는 선민사상을 가르쳤으며 이러한 개념은 현재 보수 개신교내에서도 일정부분 바탕에 흐르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선민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신약에서는 이러한 사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 선택한 백성이고 신정체제이며 민족단위의 선택이기에 당연히 민족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신정체제도 아니며 무엇보다 신약성경은 민족단위의 선택을 부정하고 신자 개개인이 하나님과 개별적 언약을 통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은 민족이나 국가개념을 부정하고 뛰어넘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주장을 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민족주의를 주장하거나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한국의 불교가 호국불교로서 전통을 이어왔듯이 한국의 기독교 역시 나라를 잃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도피처로서 교회를 선택하고 저항의 기지로 활용되면서 우리나라 기독교는 애국 기독교 민족 기독교의 길을 걷게 되고 이것이 6.25를 통하여 더욱 강고한 이념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고 보수 기독교가 보수정권 친정부적인 행보를 보이는 신앙적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문창극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러한 보수신앙 교육을 받은 결과로 보이며 성서적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이후 민족단위로 뭘 하고 선택하고 이런 것 없습니다.

다음으로 문창극은 한민족의 게으름과 죄를 벌하고 새롭게 하기위하여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을 허락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신약에서는 집단적인 죄에 대한 징벌사상이 없습니다.
오직 개인이 각각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질 뿐입니다.
설령 구약을 인용하더라도 조선은 야훼의 선택을 받고 야훼를 믿는 신정국가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와 계약을 맺은 민족이며 나라이기에 약속을 위반하면 징벌을 받지만 조선은 그런적이 없습니다.
그런식이면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배를 할 만큼 잘 한것이 뭐가 있습니까?
일본은 식민지배를 받지 않아도 될만큼 죄가 없나요?

2.  역사적 비판

문창극은 구한말 선교사들의 견문록을 근거로 당시의 조선민족이 게으르고 더럽다고 하다가 간도나 연해주의 조선인들의 근면함과 깨끗한 삶을 비교하면서 이것이 관리의 토색질 그리고 기독교의 유무에 대한 차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이조 500년내내 게으른 민족이었다고 비약을 해 버립니다.

문창극의 역사인식의 근거는 선교사중에서도 잠시 머물다가 지나가는 사람이나 여행객에 불과한 비숍여사나 달레신부등의 견문록에 근거합니다.
이런식의 견문록이 주관적이며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등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설령 그들의 말이 당시 조선의 전체적인 현실이었다 할지라도 조선시대 500년 내내 그렇게 살았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유럽 역시 1600-1700년대 도시의 거리는 오물로 넘쳐나고 빈민굴의 상황은 처참했으며 산업혁명후의 아동노동이나 공장의 생활은 조선보다 낫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어 귀족과 귀부인들이 정원에서 볼 일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조선 역시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이나 신분에 따라 위생이나 삶의 모습은 다릅니다.
따라서 구한말의 조선이 외척들과 민비의 실정으로 망국으로 달려가는 상황에 있었다해도 그것만 가지고 조선 500년이 부패하고 게으른 민족의 나라이며 식민통치를 받아야 마땅할 만큼 죄를 지은 나라라고 볼 수 없습니다.
문창극의 주장은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논리적 타당성도 없는 개소리입니다.

조선은 더러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선비의 나라를 자부하였고 양반들은 일을 하지 않았기에 지저분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가옥이나 비품등을 보면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못배우고 가난한 민중들의 삶은  불결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고된 일상에서 희망이 없기에 일반 백성들이 술과 담배의 위로를 받은 것은 사실이고 선교사들이 술과 담배를 기독교인에게 금하게 된 계기가 된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은 전 근대적인 시대의 모든 나라에 있었던 부정적인 유산이지 조선만의 특별한 특징은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나쁜  주거환경속에서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걸 민족의 특징이나 죄라고 하는건 무식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내에서 신앙적인 강연이라고 하지만 그냥 열심있는 기독교 신자라면 모를까 명색이 우리나라 유수의 신문사 주필이며 언론인으로서는
참으로 황당하고 무식한 강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색이 지식인으로서 장로까지 되었으면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책몇권은 읽고 목사에게 질문하고 배우기라도 해야지요
더욱 수천명 앞에서 강연이라고 한다면 어느정도는 근거를 확인하고 타당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이건 참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문창극의 참극은 문창극 개인의 게으름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 배경과 토양은 반지성 몰지성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보수 근본적인 한국 개신교의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독선적이고 자기 객관화가 안되며 사회 보편의 규범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개신교의 민낮이며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