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우리나라 지성이나 언론의 부박함을 한탄하고 우리 정치가 표피적인 말하나등에 너무 출렁거리면서 진영논리에 함몰한다고 지적을 했는데 이게 조선시대 이래 각인된 관습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아크로조차 문창극 강연이 친일이다 친미다 우익 극우다 뭐다 하는데 한심합니다.
정말 문창극 강연을 다 들어보거나 녹취록 전문을 읽어보고나 말들을 하시는건지
읽어보고도 이런 논쟁을 하는 거라면 심각하게 자신의 진영논리를 점검해봐야 할 겁니다.

무릇 글이라는 것은 단어의 의미 그리고 문장, 문단에 대한 이해와 글 전체의 요지와 주제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이 글은 어떤 글이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글 전체의 주제가 문제가 있다면 글 쓴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을 비판해야 할 것이고 사용된 단어가 잘못되거나 부적절하면 그 부분에 대하여 사과를 해야 할 것입니다.

문창극의 온누리 교회 강연은 글도 설교도 아니고 강연입니다.

먼저 말이라는 것은 장소와 청중이 중요하고 장소와 청중에 따라 그 사용하는 어휘나 의미가 달라집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이나 강연가는 통상적으로 강연하는 곳 사람들의 정서나 취향 그리고 그곳의 특징들에 대한 언급과 칭찬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면서 마음을 열게합니다.

문창극의 발언을 가지고 이 시비를 한다는 것이 저는 부끄럽습니다.
우리 사회 우리나라의 관용과 지성의 수준이 형편없기에 그렇습니다.
그것도 언론의 자유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소위 진보쪽이라는 곳에서 이런 설화를 주창하고 나왔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kbs 그 기자나 그것을 기획한 인간이나 세력들은 아주 나쁜넘들입니다.

문창극은 언론사 기자이고 주필출신입니다.
그의 진정한 생각이나 문제들은 그가 쓴 칼럼이나 사설에 그대로 남아있고 그가 공적으로 공개적으로 한 주장들 속에서 수도 없이 총리로서 부적합한 증거들을 찾을 수 있는데 문창극과 소위 개독을 잡는 일타 쌍피를 할 목적으로 사적으로 장로의 신분으로 일개 교회의 강연을 문제삼은 행위는 가히 웬만한 정치 모략가들 뺨치는 수준입니다.

먼저 문제가 된 문창극의 일제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말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섭리론에 입각한 것도 아니고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가까운 편이지만 정교하지도 않고 허접하며 그나마 일관성이 없는 횡설수설입니다.

전문을 보면 문창극은 하나님의 뜻을 어떤 일관성이나 논리적 필연 성경적 근거없이 자의적으로 아무곳이나 가져다 붙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이 통상적으로 이해하거나 가져다 붙이는 것처럼 신학에서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 상대적인 하나님의 뜻 허용적인 하나님의 뜻
그리고 인간의 책임과 범위등 성경의 근거와 철학적 사고와 논리를 통하여 다듬어진 개념이 있고 거기에 따라 사용되어져야 하지만
문창극은 그냥 자기맘대로 앞뒤가 맞지도 않게 자기 생각을 합리화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방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창극 강연의 요지나 주제는 한국은 기독교가 들어와서 비로서 발전하고 제대로 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한데 이 부분은 크리스챤에게 달려있다.
지금 크리스챤이 잘 못하면 우리는 또 쇠퇴한다

이런내용입니다.
친미도 친일도 아닙니다.
물론 미국에 치우친 그의 바탕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날 강연의 요지나 주제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강연은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보수 근본적인 기독교인의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장로가 교회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시각에서 나름 우리 역사와 우리나갈길을 횡설수설 견강부회 아전인수하면서 지껄인 것을 가지고 온나라가 이 난리를 쳐야 하겠습니까?

왜곡과 자극적인 보도로 이런 소모적인 논란을 만든 kbs 기자는 아주 나쁜넘입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한번 읽어보세요
괄호안의 글은 제가 설명한 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알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서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걸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가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뜻을 어떤 의도로 사용하고 접근하는가를 말 하고 있습니다.) 

나라라는 것은 뭡니까. 저는 비행기 어떤 때 타면 3등칸을 주로 타지만 가끔 어떤 기회가 있어서 2등칸을 타게 되면 또 굉장히 대우가 다르더라고요. 1등칸을 다르면 아마 더 대우가 달라지겠지요.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왜 한국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켜가지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무엇에 쓰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먼저 기도의 방향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런 것을 어렴풋이나마 우리가 알 수 있을 겁니다

.189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됐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한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신 것이다

또 고난을 주신 다음에 또 하나님은 우리한테 길을 열어주셨어요.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중요 고비마다. 그러면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라는 것은 지금까지 구비구비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됐다. 그 기회가 돼가지고 지금 이 나라가 왔다.

 (문창극의 강연이 유감인 것은 하나님이 시련을 주신 것은 이민족을 써야할 일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인데 어떻게 쓰임받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결론에서도 빠져있다,) 

먼저 조선말의 풍경을 하나 말씀드리겠다. 제가 책을 찾아가지고 조선말의 풍경에 대해서 한 두 가지만 먼저 알려드리겠다.

(문창극은 여기에서 귀츨라프와 달레신부의 보고서를 통해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언급 한후 비숍여사의 견문을 통하여 관리의 토색질로 인하여 백성들의 삶을 말하고 근로의욕 상실을 말함)

비숍여사가 더럽고 게으른 한국을 떠나 블라디보스톡 갔는데 당시 거기에도 한국에서 이민간 사람들이 북간도, 연해주에 그 때 이민을 많이 갔거든요. 거기를 둘러봤어요. 조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사냐. 그랬더니 연해주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 가보니까 깜짝 놀란거야.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그렇게 게으르고 그렇게 아주 그냥 하루 삼류민족,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민족이 연해주에 사는 조선민족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산다 이거예요. 이야, 조선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정말 놀랐다. 그러면 왜 연해주에 있는 조선인은 그렇고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나라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야.

 (그리고 윤치호의 일기를 근거로 고종과 민비의 무속의존과 백성에 대한 무책임을 이야기함 )

그리고 이어서 이승만 이야기를 하면서 이승만이 기독교를 통하여 서구가 발전했다는 사실을 말한 부분을 인용 ) 

그런데 그때도 그러면 왜 그럼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그런데 저는 아까 말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거예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이거예요. 우리가 지금 와서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핏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서 지금 이것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게, 지금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 기독교가 들어 온 반면,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것은 일제 시대 때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 걸 하나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 이후 양반들의 무노동에 대한 비판과 유학생들이 기술 과학공부 안하고 인문학 공부만 한 걸 비판 )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또 버전업을 시켰느냐 하면, 이 윤치호라는 사람은. 조선유학생들이 일하기가 싫다, 이거야.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 좋아한다 이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 이부분이 윤치호의 이야기 인용인지 문창극의 주장인지는 확인이 안되나 문장 전체의 기조나 내용으로 보면 윤치호의 이야기를  자기말로 바꾸어서 언급한걸로 보이는데 후의 강연내용을 보면 자신도 이러한 견해를 동의하는것으로 보임 ) 

그러니까 윤치호라는 사람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는 거다, 체질상. 왜 그러냐.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 이조 말기에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게 아주 몸에 박혀 있었대요. 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가지고 변화를 시킨 거야.

(문창극은 이부분 놀고 먹는 것 몸에 박힌 부분은 윤치호의 말을 인용하여 동조하고 있는데 놀고먹는 이유는 양반들의 노동안하는 것과 착취, 그리고 친인척 덕을 보는 전통 이것이 공산주의와 같다 )

 그 당시 북간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정말 감명스럽더라고요

이렇게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났는데 선교사님들, 거기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김약연?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한 1205가구를 끌고 가서 거기에서 교회를 만들었어요. 명동교회를 만들고 명동학교를 만들고 명동유년주일학교를 만들고 명신여학교를 만들고. 사진전을 했는데 이렇게 아까 이가 득실거리고 냄새가 나니까 조선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애들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전부 다 여학생들에게는 세라복을 입히고 실험실에는 전부 다 실험복을 입혀서 비커 이런 실험 기구들이 다 차 있고, 애들도 악패?를 만들어 가지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서 지휘복을 입혀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가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거기에서 잘 살았어요.

 

우리가 게으른 가운데 기독교를 개종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기로 작정한 다음에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 민족들에게 보여줬나 하는 걸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일제 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어. 독립을 주셨으면 잘 살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36년을, 40년을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을 했는데 잘 살아야 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 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아까 얘기했죠. 조선 지식인들이라는 건 다 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분단시킨 이유가 뭐냐. 그때는 안타깝고 이게 뭐냐, 도대체. 우리는 독립을 얻었는데 독립도 못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너희들은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앞으로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의 그 게으름, 죄 깨끗하게 안 된 거야. 분단을 시킨거예요.

 (이게 횡설수설 하나님의 뜻, 게으로고 관리들의 문제가 있고 이래서 일제 시련을 주었는데 하나님이 해방시키자마자 뭔 분단을?

그리고 그게 게으름과 죄때문이라고? 근거가 없고 언제 죄질 시간이 있었으며 일제가 수탈하는 상황에서 열심히 일할 이유가 뭔데?)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분단이 됐기 때문에 한국이 이렇게, 이 정도 살게 된 거예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지금 몇 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우리 현실이에요.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되어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놔둬 주신 게 아니야. 하나님은 너희들은 안 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그래서 분단을 시켰어요.

 (결국 분단되어서 공산화가 안되었다 고로 분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공산화 안되게하기위해 이거 신문사 주필이 기본적인 논리가 없어요 )

6·25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그 당시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안 되겠다, 너희들 붙잡아야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느냐. 미국을 못 가게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 딱 붙잡아 주셨어요. 미국이 6·25 사변이 끝나면서 우리하고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 

반미, 제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미군이 없는 한국은 금방, 옛날에는 소련 밑에 가 있는 거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 거예요. 중국의 속국이 될 수 밖에 없어. 이미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거의 되어 있지 않습니까? 6·25를 왜 주셨느냐.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주신 거야. 

그다음에 경제발전 했습니다. 경제발전했는데 경제발전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물론 우리가 새마을 운동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뭐하고 다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진짜 하루에 3교대씩 밤을 새워가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해서 상품을 만드는 게 다 어디갔습니까? 그 당시 신발, 앨범, 흑백TV 이런 것 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것 다 어디서 사줬죠? 미국에서 사준 거야.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우리 경제개발도 사실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는 우리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경제도 부강해야 되고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돼. 그런데 그거 있는데에 하나님의 뜻이 지금 돌아보니까 다 이해가 될 만 하더라 하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에 나는 또 하나님이 뜻이 저는 있다고 봐. 그건 뭐냐. 과거에는 세상의 축이 어디였느냐 하면 대서양이었어요. 미국과 구라파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가는 거예요. 중국이 1위 국가가 되지,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지. 한국이 7~8위 국가지. 

폴란드가 제일 먼저 변했는데 폴란드를 제일 먼저 변하게 한 건 누구입니까? 그 당시 바오로 2세입니다. 바오로2세가 거기에 가서 설교를 하고 했기 때문에 그때 터치가 되어서 폴란드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 사이클은 우리 인간 잘못으로 있는 거야. 가난하고 어렵고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해. 절약해. 그러면 가난한 고난 있다가 절약하고 열심히 하다가 그러면 돈이 생겨, 부유해져, 번성해. 그러면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그 다음에 퇴폐, 퇴폐로 가는 거야. 그건 인간사가 똑같은 거야. 모든 세계역사는 똑같은 거예요.

번성하고 잘 살게 되면 그 다음 사이클이 뭐냐. 그 다음에는 자기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부패해지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다음 단계는 뭡니까? 몰락이야. 그다음에 몰락이 되는 거야.

이 사이클이야. 하나님은 우리 한테도 이런 사이클을 주실지 몰라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이 사이클을 막을 수 있는 거야. 이 사이클을 막는 것은 하나님 뜻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그런데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서 G2의 국가가 됐어요. 앞으로 G3가 될지도 몰라. 미국 기독기독교가 점점점, 유럽은 이미 끝났어요. 이제 그다음에 미국 차례야. 미국도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몰라. 그러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써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이 쓸 사람은 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요. ? 

(이후 한국이 안망하려면 기도하고 좋은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라고 역설) 

. 만일 지금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며칠 목욕을 안 하고 또 허름한 넝마를 거치고 한국교회에 들어 설 때 한국교회에서 그거 받아줄 교회가 한국교회에 어디 있느냐, 있겠느냐 하고 기도를 했어요. 우리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우리 크리스찬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돼요. 다른 사람 손가락질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각성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