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깨인 분들'이 이야기하는 진정성이라는 의미가 '조선시대의 봉건적 선비 정신의 현대판 버전' 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혹시 어릴 때부터 교육받은 유교 이념의 폐해가 아닐까 싶은거죠.

선비란 모름지기 아무런 사심없이 백성들에 대한 지극한 헌신만으로 가득해야 하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이권이나 재물 따위에 절대 흔들리거나 탐해서는 안되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꼿꼿한 기개를 잃지 말고, 마음과 행동이 순수함만으로 일치해야 하고 등등... 정승의 자리에 올라도 비가 새는 초가집에 기거하며 녹봉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마누라가 삯바느질로 벌어온 돈으로 살림을 하는 식으로 해야 진정한 정치인이라는 식입니다.

'깨인 분들'의 이런 저런 주장들을 살펴보면 그런 선비스타일의 정치인에게 유독 약하고, 자신들은 그런 정치인은 척하면 다 알아보고 높은 자리로 올려준다는 마인드가 있다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동영의 좌클릭을 진정성없는 쑈라고 비난하고, 손학규 역시 대권후보 자리 찾아온 철새라 비난하는거죠. 호남의 정치인들이야 뭐 뻔한거구요. 자신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그저 권력욕 이권욕등 노회한 사심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보일겁니다. 그 친구들이 진정성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궁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일테구요.

그러면 그들이 정치인의 진성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다른게 있을 리 없고 요약하면  '더 좋은 자리에 갈 수 있는 스펙이나 능력이 있음에도 과감히 물리치는,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는 감동을 선사하는 정치인'입니다. 이거 하나면 걍 환장을 하고 만사오케이이고 무슨 삽질을 해도 용서가 되고 따봉인거죠.  

그렇다면 그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정치인이 과연 누구일까요?  당연히 제1순위는 반한나라당 영남출신들이죠. '깨인 분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기본시각은 '한나라당에 가서 편안하게 정치를 할 수 있음에도, 대의를 위해 일부러 고난의 가시밭길을 자처한 사람들'입니다. 대의에 대한 의지와 국민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길래 저렇게 사서 고생하고 있을까하는 식이죠. 당근 눈에 하트켜지고 완전 굿인겁니다. 현재 유력 대선후보 리스트에 영남출신들만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식의 진정성 판별 기준으로는 노무현과 유시민 문재인 김두관 박원순 안철수등은 그 존재만으로 이미 성인의 반열에 든 사람들인거죠.

그럼 제2순위는 누구냐. 바로 운동권출신 야당 정치인들입니다. 그들은 일단 '명문대라는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로 인식됩니다. 일단 이것만으로도 진정성 검증 커트라인을 통과한 사람들이에요.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진정성 제1순위인 영남출신 야당정치인들에게 절대 개기면 안됩니다. 그랬다간 그날로 아웃입니다. 굳이 거칠게 비교하자면 성골과 진골쯤 될테죠. 노무현이나 유시민에게 대든 김근태나 이인영같은 운동권 출신들이 '깨인 분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겁니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살면서 손해보는 짓 한번도 해본 적 없어보이는 관료출신이나 전문가출신 정치인들은 그 정책 능력이나 실제적인 진정성에 상관없이 일단은 6두품으로 분류되는겁니다. 

이쯤에서 노무현이 왜 그렇게 '깨인 분들'에게 열광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될겁니다. 고졸 출신으로 천신만고 끝에 취득한 변호사라는 기득권도 버리고, 6월 항쟁에 참여한 운동권 경력도 있고, 3당 합당시 김영삼 따라 한나라당가서 편안히 지낼 수 있었는데 청문회 스타라는 기득권을 버리며 거부했으며, 안전한 지역을 버리고 부산에 가서 출마하다 낙선하고 등등... 그야말로 기득권을 내던지는데 있어서는 가히 따라올 수 없는 진정성의 화신이라 할만하죠.  

그런데 그런 진정성타령 다 좋은데, 그거 딱 봉건시대 순박한 백성의 마인드인겁니다. 이제 제발 우리 국민들이 근대 사회의 시민적 마인드, 즉 현명한 정치소비자로 업그레이드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의 품질보증서와 시장경쟁력과 가격이지 그 회사의 사장이 얼마나 진정성있는 사업가인지에 달린 것이 아니거든요. 정치인들이 생산하는 정책이나 정치행위라는 상품도 그럴테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