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률 감독 박해일 신민아 주연의 경주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럽 스타일의 영화는 처음 본 듯 합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하루를 소재로하여 런닝타임 145분을 소화합니다.


경주는 마치 한적한 시골 초가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물끄러미 마당에 노니는 닭이나 지나가는 고양이 가끔 짓어대는 강아지소리를 아무런 생각없이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갑니다.


영화는 관객을 자극하지도 몰입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관객은 관객대로 뭘 하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모습입니다.

그냥 관객이 뭘 하듯 영화는 영화대로 흘러가며 배우들은 심드렁한듯이 연기를 합니다.


이 영화의 미학은 보채지 않는데 있습니다.

관객에게 이 주제를 생각하라고 하지도 않고 뭔가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경주의 왕릉 반경 십리안에서 벌어지는 무대는 삶이라는 것이 늘 그자리에 그대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러하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건의 자살이라는 배경이 경주의 고분들과 함께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삶에 대한 권태를 보여줍니다.

삶이나 죽음은 늘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경주 사람은 언제나 왕를을 떠나서 살 수 없다고  말 하는 공윤희의입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있어서 미장센은 극도로 억제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천천히 흐르는 개울물 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냥 흘러갑니다.

돌싱이 된 찻집 주인 공윤희가 방문을 살짝 열어놓은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속물적 근성을 가진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최현 교수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 공윤희와 뜨거운 정사를 나누든 아니면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돌아서듯 선택에 맡겨지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신민아의 아름다운 나신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롱테이크를 통한 느림의 미학입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무목적  무계획에 어울리게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돌아갑니다.

영화가 참 길다라는 생각을 가끔하면서도 하품이 나오거나  졸음이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느린 영화는 끝난지도 모르게 허무하게 아무런 결말이 없이 시작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냥 끝납니다.


제가 본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영화를 보고난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경주의 잔상이 마음속에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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