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을 망하게 하려면 그 집 마당에 몇 십억만 떨어뜨려 놓아라”는 말이 있다. 그 돈을 놓고 부모·형제 간에 싸움이 붙어 돈은 돈대로 없어지고, 집안은 풍비박산한다는 얘기다. 재산 많은 집에서 유산을 놓고 형제 간, 부모·자식 간 싸움이 붙고 급기야는 재판까지 가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집을 ‘콩가루 집안’이라 한다. 지금 한나라당은 ‘콩가루 당’이다. 권력이 문 앞에 떨어진 듯 보였다. 이걸 서로 갖겠다고 형제끼리 싸우다가 급기야는 재판까지 가게 됐다.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들이 검찰에 불려 다니면서 선거를 하게 생겼다. 정권의 칼에 목을 스스로 내놓았다. 이 정권이 꾸민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 스스로가 불러들인 일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대선에 두 번 실패했다. 두 번 모두 선거를 하기도 전에 권력을 쥔 듯 교만했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랬다 치고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똑같은 양상이다. 역사가 첫 번째 되풀이될 때는 비극으로, 두 번째 되풀이될 때는 광대극으로 온다고 했다. 지금 한나라당은 광대극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5개월 후에 관객에게 허탈한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이들에게는 왜 뻔한 결과가 보이지 않을까. 취임식에 앉아 있는 허상만이 눈에 어른거리기 때문일까. 나는 분명히 다시 한번 말해 주고 싶다. 꿈을 깨라고….

  두 사람은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한나라당 경쟁에서 이긴다고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명박씨의 부동산 문제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다. 사돈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상식인데 어떻게 처남과 큰형님이 함께 사업을 하게 됐느냐는 점이다. 이명박이라는 매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조건 부인만 한다고 넘어갈 수는 없다. 당내 검증에서는 자기당 후보를 매정하게 몰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식후보가 되면 이 문제는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씨 역시 간단하지 않다. 아버지의 유산은 긍정적인 정도만큼이나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회귀라는 질책과 여자라는 문제가 극복되어야 한다. 외국의 예를 많이 들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의 정치 (Mummy Politics)’ 다. 자녀를 키우고 집안살림을 꾸려본 여자들이, 나라살림도 남자보다 더 섬세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박 후보는 이런 경험이 있는가.

  후보들의 약점은 경선이라는 구조 때문에 실제보다도 더 확대되고 있으며,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이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낙마하면 남은 한 사람에게 이리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선에서 이기려면 둘은 끝까지 손잡고 가야 한다. 경쟁을 하되 협력해야 한다. 자기파멸적 경쟁에서 상생적 경쟁으로 길을 바꾸어야 한다. 서로의 약점만 들춰낼 것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비록 약점이 있다 해도 이를 보는 국민의 눈도 넉넉해질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하게 보이는 이런 일을 해 내든지, 광대극을 연출하든지 지금은 양 갈래 길뿐이다.

 권력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이기는 자와 지는 자,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뿐이다. 지금 두 진영은 그런 싸움을 하고 있다. 양쪽으로 갈라진 의원들이 더 극악스럽다. 자기편이 지면 공천조차 받지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 당내 싸움은 권력싸움이 아니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동지 간의 경쟁이다.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경선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큰 관심이 없다. 정권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다시 좌파에게 정권을 맡겨서는 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두 사람도 그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내가 권력을 쥐는 것보다 나라 걱정이 앞서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다는 점에 합의해야 한다.

 이제는 검증보다 협력방안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경선에서 진 사람과 어떻게 손잡고 나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당내의 원로들이 두 사람의 협력을 성사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눈을 덮고 있는 권력의 비늘을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앞을 볼 수 있다. 싸우다 함께 죽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 함께 살아나는 새로운 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한다.

문창극 주필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787068


언론인 출신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중앙일보 2002년 5월 21일부터 2012년 12월 25일까지 10년 7개월에 걸쳐 250여 편의 ‘문창극 칼럼’ 중 일부의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13일 이 칼럼을 전수 조사해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을 밝혔다.

“일본에 대해 더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보상 문제만 해도 억울한 점이 비록 남아있더라도 살 만해진 우리가 위안부 징용자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나라 위신을 지켜라’·2005년 3월 8일)

이 칼럼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3·1절을 맞아 일본에 과거사 배상 문제를 언급하자 쓴 칼럼이었다. 문 후보자는 “40년 전 배상 문제가 마무리됐다”며 “보상 문제만 해도 억울한 점이 비록 남아 있더라도 살 만해진 우리가 위안부 징용자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독도에서 미국을 본다’(2005년 3월 22일)이란 제목의 칼럼에서는 “과거 보상 문제는 아무리 인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도 협정을 무시하고 떼를 쓰는 꼴”이라고 말했다.

기가 꺾인 나라’(2005년 8월 23일)에선 “불행했던 과거만 들추는 나라가 건강한 정신을 가진 나라인가”라고 밝혔고, ‘과거의 덫’(2008년 2월 12일)에선 “우리 현실은 이미 어두운 과거를 떨치고 한 걸음 앞서 나갔는데 왜 다시 뒤를 돌아봐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더이상 일본의 책임을 묻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들이다.

2010년 11월 16일에는 “일본은 이웃인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러나 이웃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모델로 우리는 공업화를 할 수 있었다”는 논리를 폈다. 일본 덕분에 한국이 산업화됐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글이다. 이는 일본과 친일적 인사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맥이 닿아 있다.


선교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간 분당 샘물교회 신도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당하고 2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진 2007년 8월7일엔 ‘인질 고통은 성장통이다’이란 칼럼을 통해 “나는 이번 일을 감히 시대적인 사건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 이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 한국의 힘이며 미래다.”라고 밝혔다. 이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표현했다. 과거 문명을 전파하던 유럽이 쇠퇴하고 한국이 대신해 무슬림의 세계로 나가고 있다며 선교사 파견 수가 세계 2위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교회 안이 아닌 밖에서도 무리한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에 맞서 기독교적 가치를 설파했다. 더군다나 인명 피해 앞에서 ‘성장통’ 운운은 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사회·정치를 보는 시각도 어떤 태양이 떠 있느냐에 따라 칼럼의 주장은 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그중 하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 때와 2012년 대통령 당선 이후 달라졌다. 2007년 칼럼(‘권력의 비늘을 떼라’·2007년 7월 10일)에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언급하며 당시 이명박 후보와 맞붙은 박근혜 후보를 향해 “외국의 (여성 대통령) 예를 많이 들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의 정치’다. 자녀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꾸려본 여자들이 나라 살림도 남자보다 더 섬세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며 “박 후보는 이런 경험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박 대통령이 결혼과 육아 경험이 없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문 후보자는 2012년 대선 직후인 12월 25일 칼럼(‘하늘의 평화’)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을 ‘신의 뜻’에 빗대며 박 대통령을 극찬했다. 문 후보자는 “역사의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라며 “중요한 고비마다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던 그가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130757181&code=940100&nv=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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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