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에 대하여 겟살레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다.


의사가 아기 낳지 않기를 권했다는 건 제가 잘 아는 노르웨이 의료인으로부터 들은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그런 걸 권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맥 상 상기 파란 마킹 부분에서 언급된 '의사'와 빨간 마킹 부분의 '의료인'은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겟살레님께서 주장하신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노르웨이 의료인'도 '의사'의 발언에 찬성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겟살레님 발언을 읽으면서 내 머리에는 언제부터인지, 비록 그 주장에 새겨들을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에 훈수를 두는듯한 오만함을 느끼게 하는 박노자와 얼마 전에 언론을 도배했던 노르웨이 한 청년의 이주노동자 대량살인 사건이 떠올려졌다.



1. 조현병이라는 명칭


정신건강의학 관련 질환은 대부분 병 자체에 대한 아픔보다는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그릇된 사회 인식에 고통받는다. 특히 병명 자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가 환자의 사회복귀를 막는 경우도 많다. 조현병은 대한조현병학회의 노력으로 지난해 병명개정을 통해 '정신분열병'의 굴레를 벗었다. 대한조현병학회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개정판 <조현병, 마음의 줄을 고르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전문적인 학술적 내용을 환자와 가족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풀어서 엮었다. 내용 중간에는 삽화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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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인구의 0.5~1%가 앓고 있다고 추정된다. 25~50만의 환자가 사회적 낙인의 피해자로 치료기회마저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임상에서 회복이 가능하고 완치된 환자도 있지만 그들의 사회복귀에는 아직도 여러가지 장벽이 상존한다. 이 책은 조현병에 대한 이해와 함께 관심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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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현병은 유전되는가?


정신분열병은 당뇨병이나 고혈압에 비해 평생 약을 조절해가며 극복해내기가 훨씬 더 용이한 병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정신분열병을 유전병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하는 저자에 의하면 정신분열병은 오히려 조울병보다 유전성이 약하다. 저자는 정신병은 누구 때문에, 누가 잘못해 생기는 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도 이 땅의 정신질환자 반수 이상이 수용소와 기도원에서 정상 상태로 회복하고도 재활의 기회가 거의 없이 비인간적인 대접 속에서 기약 없이 묶여 있다고. 저자는 물론 한번이라도 재발 경험이 있으면 약을 절대 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반인들은 조울병, 비특이성 정신병, 정신분열병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5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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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신질환이 유전된다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말한다.(111 페이지) 저자는 교역자들이 치료에 개입해 환자를 엉망으로 만드는 기독교 교회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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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의료 현장에서는?


실제 의사들이 임신 포기를 권유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검색해본 결과로만 판단해 본다면 의사들이 임신 포기를 주장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상기 1항에서의 노력을 판단해본다면 한국 의료 현장에서는 임신 포기를 권유하지는 않는다고 추정된다.(한그루 판단 ^^)



4. 노르웨이 이주노동자 대량살인사건


지난 22일(현지시각) 평화의 나라로 알려진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의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로 93명이 살해 당했다. 안타깝게도 사망자 수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테러 용의자 브레이비크는 극우 민족주의자로 노르웨이 토박이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노르웨이 집권당인 노동당 연립정권의 이민자 포용정책에 반대를 표하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으며, "잔혹했지만 필요했다"고 밝혀 사람들을 더욱 경악케 했다. 이번 테러 사건과 관련해 노르웨이를 포함한 북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언론보도가 사실 관계 확인보다는 선정적인 문구와 자극적인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어서 그 본질을 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 테러, 이민정책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우선 '오보 문제'인데, MBC, <연합뉴스>, <조선일보>, <한겨레> 등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국내 주요 언론사들이 테러 배후로 '알카에다와 연관된 이슬람 무장단체가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기여한 국가들에 대해 보복하려는 목적에서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오보는 노르웨이에 특파원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언론의 서구 언론 받아쓰기 관행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테러=이슬람, 알카에다'라고 공식화하는 편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테러 배후에 대한 오보 소동이 지나고 나자, 이에 대한 사과는 없이 테러범의 최고 형량이 21년형에 그칠 것이며, 최고 형량인 21년형을 받더라도 숨진 피해자 1명당 불과 82일의 징역을 사는 셈이라는 등의 형량 타령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촌 개방적 이민정책 비상등'과 같은 문구로 이번 테러 사건을 마치 이민정책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테러 용의자 브레이비크는 노르웨이 집권당의 이민자 포용정책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미치광이 테러범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적고 의미를 부여하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불만이 많지만, 주요 언론사들이 보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로이터통신은 "극우주의에 반(反)무슬림, 반(反)이민 등 편견과 어려운 경제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스는 "이번 테러는 무슬림과 이민자, 세계화, 유럽연합(EU)의 영향력 확대, 다문화주의 확산 등에 대한 반발이 정치세력화하면서 일부 폭력행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리 언론 역시 서구 언론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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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언론이 나서서 테러범을 옹호, 변론, 대변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극우민족주의자인 테러범 입장에서는 자기 입장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언론의 도움으로 이미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언론은 테러범의 의도대로 놀아난 꼴이다.


이번 테러 사건 이후, 언론 보도는 무슬림을 비롯한 이민자 등 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담론 확산에 기여했고, 사건 해결이나 예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이번 테러 사건 오보로 이미지에 피해를 본 노르웨이 이슬람 사회는 벌써부터 유럽 내에서 반(反) 이슬람 기류가 확산되지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이상 출처는 여기를 클릭)



5. 노르웨이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인종차별적 성격이 강해


요즘 언론에서 쏟아내는 노르웨이 이민자 통계가 들쭉날쭉한데,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의 박노자 교수에 의하면, 노르웨이는 외국 태생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2% 정도 되며, 외국 태생 주민의 자녀까지 합하면 약 15%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중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는 비유럽 출신 비율이 17%나 되며, 이민과 이민자 사회와 관련된 문제들은 국내 정치 의제의 핵심적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인구 비율과 정치 의제에서 보면 노르웨이는 이미 이민사회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전통적으로 철저한 이민통제를 취해 왔다. 노르웨이는 70년대 초반 토박이들이 피하는 저숙련 노동자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유럽 바깥에서 노동자들의 유입을 허락했다. 이후 경제 붐이 끝나고 저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자, 1975년에 '자유로운 노동 이민의 중지'를 선언한다.



지금은 취직, 가족 재결합, 난민 등의 이민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인구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인구 정책에 기인한다. 즉 이민을 철저한 목적의식을 갖고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민자들에게 토박이의 소외와 배제를 가져올 만한 혜택을 주거나 유인책을 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테러범의 주장이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나는데, 노르웨이의 경우 이민자들의 취업률은 전체 인구의 취업률 66%보다 10% 이상 낮은 55% 밖에 되지 않는다. 높은 실업률은 이민자들로 하여금 국가복지체제에 의존케 만들거나 노동시장에서의 하위 배치라도 받아들이게끔 만들고 있다. 때문에 이민자들은 토박이 노동자들이 피하는 저임금 업종 및 직종에 진출할 수밖에 없다. 토박이들과의 경쟁 관계 혹은 노동시장에서의 대체를 가져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 출처는 상동)



이주노동자 대량살인 사건을 반추해보면서 겟살레님서 인용하신 그 발언의 주인공'들'에게서 인종주의적 냄새가 난다....(겟살레님께는 죄송한 표현이지만)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분명한 것은 똥묻은 대한민국이 겨묻은 노르웨이를 비판할 처지가 전혀 못된다는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