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번 안대희가 청문회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낙마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 문창극의 경우는 '웬만하면' 통과시켜서 국정을 빨리 수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온누리교회 발언 파문에 이어 이 문제에 대처하는 문창극의 태도 그리고 일베 등 문창극을 옹호하는 측의 논리를 보면서 문제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문창극과 총리실 측의 해명을 보자.


우리 민족성이 게으르다는 발언에 대해 문창극 측은 '윤치호의 발언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용이라는 것은 두 가지 경우에 한다. 즉, 이런 의견이 있는데 나도 거기에 찬성한다 또는 반대로 이런 의견이 있는데 이건 말도 안되는 얘기야 등.


그럼, 문창극이 윤치호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 그 의견을 예로 들어서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나? 그건 아니지. 문창극이 윤치호를 높이 평가하고 그의 의견을 빌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은 당시 강연 전체를 일관하는 기조이다.


게다가 게으름이 우리 민족의 DNA였다는 발언은 문창극이 윤치호의 의견을 자신의 것으로, 현대적인 개념을 동원해 포장한 것이었다. 윤치호 생전에도 DNA라는 개념이 있었나? 윤치호가 불세출의 과학자이거나 또는 노스트라다무스 뛰어넘는 예언가였다면 몰라도 DNA라는 개념은 윤치호가 죽은 지 몇 십년 뒤에야 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창극은 문제의 발언은 윤치호의 것을 인용했을 뿐이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문창극이 지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주장에서 더욱 확인하게 된다. 이 친구,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텍스트는 콘텍스트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문창극의 당시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일부분만 떼어내서 전달한다면 얼마든지 그의 전체 발언취지를 왜곡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문창극의 문제되는 표현들은 당시의 강연 내용 전체 나아가 그가 평상시 표명했던 의견 전체와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봤을 때 이번 KBS의 문창극 발언 보도는 과연 왜곡이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문창극은 당시 발언에서 윤보선의 에딘버러 대학 유학을 예로 들어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영국 유학을 가서 배운 게 기껏 문학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조선을 일으켜 세우려면 과학기술을 배워야지 무슨 문학이냐는 것이다. 게다가 윤보선의 집이 부자여서 거액의 돈을 유학비용으로 낭비한 것도 비난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조선이 식민지를 벗어나고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문학은 불필요하고 오직 실제적인 효용을 갖는 과학기술만이 필요한가?


일제의 조선인 교육 방향이 도구적 이성이랄 수 있는 기술 등 실제적인 기량 숙달에 주력하고 비판적 이성이랄 수 있는 정치 경제 인문 사회 분야에는 훨씬 소홀히 하거나 기피했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실이다. 일제 경찰의 사상범에 대한 감시나 취체 등도 정치 등 인문분야 고급 지식인을 일차 대상으로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시에는 직접 밥벌이가 되는 기술직 등이 아닌, 직접 돈으로 바꾸기 어려운 인문학의 고급 학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일제에 대한 간접적인 저항의 의미를 가졌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당시 고급 인문학 인력의 취업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그린 근현대 소설 작품들만 읽어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친구가 당시 강연에서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한 이승만은 미국 프린스턴대학 정치학 그것도 국제정치학 박사학위 소지자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미국 유학까지 가면서 기껏 공부한 것이 과학기술 분야가 아닌 국제정치학?


학문의 실용성을 따지자면 정치학이 과학기술 분야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국제정치학은 다시 몇만 광년쯤 멀리 달아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창극은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이승만을 매국노 개새끼 소새끼라고 입에 게거품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멀리 이승만까지 갈 것도 없다. 문창극 본인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인물이다. 혹시 해방이 됐기 때문에 이제 과학기술이 아닌, 정치학 분야가 더 중요한 학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정말 학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능아라고 봐야 한다. 어느 시대에나 정치경제학도 필요하고 과학기술도 필요하고 인문학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문창극은 지식인으로서 기본적인 개념조차 갖추지 못한 덜떨어진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문창극의 발언 기조는 전반적으로 식민사관의 영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 조선인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해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그런 판단은 다른 누군가(이건 일본이나 미국 등 상황에 따라 바뀐다. 문창극의 경우 그 누군가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는 것을 당시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에게 맡기고 조선인은 그 지휘자가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실무적인 기술 습득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은 조선인 너희에게는 너무 고급스러운 것이니 닥치고 도구적 이성의 습득에나 주력해라. 한마디로 조선인은 시키는 일이나 잘하는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게 식민사관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식민사관이란 말인가?


복지 지출에 대해 문창극이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했다는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국가나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지 말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라는 철학(?)이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야 자유다. 하지만 철학은 생활 속에서 실천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일관성이 없는 철학을 우리는 고상한 표현으로 개똥철학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개소리라고 부른다.


문창극은 윤보선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영국 유학을 한 것을 비난한다. 그런데 문창극 본인도 인정하는 것처럼 윤보선 집안은 무려 100칸 대저택을 소유한 거부이다. 그런 집안의 아들이 자기 돈 들여서 해외유학을 간다는 데 웬 시비인가? 남한테 손 벌리지 않고, 국가의 돈 받아서 간 것도 아닌데? 좀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지식인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은 유지할 수 있다.


문창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중앙일보에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는 김대중이 병원에 입원해 의식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대에 대해서 확인되지 않는 루머를 갖고 공격을 하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있다. 그런 루머는 사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끈질기게 떠돌았다. 다만 해외의 한인 언론, 주로 그렇게 선정적인 이슈로 장사를 하는 언론에 소개된 루머였기 때문에 큰 이슈가 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문창극이 언론인으로서 그런 루머의 사실 여부를 천착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김대중 대통령 집권 당시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창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슬 푸른 최고 권력자에게 대드는 것이 어디 쉽냐고? 하지만 언론이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기구이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에 과거 언론인들이 이 사회에서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언론인이라는 타이틀 포기하고 그냥 다른 분야에서 양심적인 밥벌이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언론인으로서 할 일은 안하면서 그 지위에 따른 혜택은 꼬박꼬박 챙기는 무리들이 있다. 문창극은 그 대표적인 샘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김대중정권 시절은 언론인들의 그런 고발성 기사에 대해 재갈을 물리는 시대도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언론들이 김대중정권을 얼마나 끈질기게 씹어댔는지는 많은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들이 씹어댔던 대상조차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던 윤창극이 그 상대가 의식을 잃고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제로가 된 상태에서 그제서야 서슬 푸른 칼을 꺼내서 상대를 난도질했다는 것이 정확한 팩트이다.


사실 당시 문창극의 칼럼을 보면서 뭐라고 언급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뭐 이런 쓰레기 새끼가 있을까, 아무리 기레기 새끼라고 하지만 이건 최소한의 언급조차 아까운 그런 폐기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참 내가 안이했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저런 쓰레기 새끼, 에이 상대를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니까 자꾸 저런 쓰레기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막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냥 허접한 삼류기자니까... 이러면서 내버려두니까 이제 무려 총리후보씩이나 되어서 자신을 공격한 언론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며 공갈까지 치고 있다.


박근혜에 대해서는 정말 이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이대로 가면 정말 어렵다. 나름 비판을 자제해온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아니다. 원래 강경대응이란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을 때 나오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는 문창극 임명을 강행하려는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 정면으로 한번 붙어보자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칼을 빼드는 양상이다. 이러한 승부가 어떻게 귀결될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박근혜가 선거전이나 취임 당시까지만 해도 강조했던 국민 화합, 통합이라는 가치는 이제 영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