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정말 누추한 새끼. 이런 새끼를 총리 후보로 뽑은 박근혜나 총리 자리 탐이 나는지 오히려 적반하장 격인 인간.



예전에 김태호가 총리인준 당시 언론을 상대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협박하던 추접함을 재현하는데 쯔쯔, 그의 사상과 관계없이 이런 이중잣대를 보이는 인간 쓰레기는 절대 총리 자리에 앉아서는 안된다.



한윤형의 글입니다.



"김일성은 하나님이 주신 시련, 용서하자" 괜찮겠나?



"김일성은 하나님이 주신 시련, 용서하자" 괜찮겠나?

[분석]뉴라이트 역사관의 광신도적 변종, 문창극 설명서



문창극, 기독교 장로가 아닌 일국의 총리로 적절한가?



언론에서 문제가 된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교회 연설이 기독교인에겐 흔한 발언인데 KBS의 편집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시선이 있다. 시련도 기쁨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순정한 기독교인의 발언이 ‘망언’ 내지 ‘극언’으로 곡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된 동영상의 발언들을 보면 기독교인의 태도를 넘어서는 역사관의 뚜렷한 흐름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근현대사 인식과 종교관을 알 수 있으며, 그런 이가 일국의 총리가 되는 것이 적절한지를 토의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교회 목사가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여 생긴 일입니다. 회개합시다”라고 말을 했다고 치자. 이것은 ‘기독교인의 흔한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뒤 맥락에 따라 저 말의 의미는 교회다니는 이만 구원받을 수 있고 이교도는 참사를 당해도 싸다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발언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곤궁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발언일 수도 있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게 사과 받을 필요 없다면, 김일성도 용서할 텐가 

 


또한 “위안부 문제 사과 받을 필요없다”와 같은 말들을 기독교인의 어법으로 정당화하려는 것도 문제다. 문창극 후보는 식민지배는 ‘이조 500년’의 게으름을 질타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시련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배를 최대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관점에서 덜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는 전쟁 당시에 벌어진 인권유린 범죄이며 보통 국제사회에서 이런 범죄는 시효도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 이 사안에 대해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이 끝난 문제이고 사과받을 필요도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같은 논리라면 이런 식의 대응이 가능하겠다. 문창극 후보는 6.25전쟁 역시 결과적으로는 한반도에 미군을 붙들어매줬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고 시련을 감내하며 용서하는 마음을 섞어 “결과적으로 김일성의 남침은 하나님이 주신 시련이었다. 시간도 오래 지난 일이고 남한 사회가 훨씬 부강하니 용서하자”라고 말했다고 치자. 한국 사회의 보수진영이 이 말을 기독교의 논리로 받아들이고 용인할 수 있겠는가? 평안도에서 축출당한 기독교 집안의 후손인 문창극 후보라면 이 말에 거품을 물지 않겠는가?    

 


문창극 총리후보의 강연에 담긴 한국 근현대사 인식은 뉴라이트 역사관의 기독교 광신도적 변종이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엔 뚜렷한 흐름이 있다. 그들은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 사회의 놀라운 발전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란 이름의 근대의 수용 때문이라 파악한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근대의 일부로 평가하지 않거나 서술하지 않는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엄연히 근대의 이념인 사회주의를 북한식 봉건 왕조와 등치시키고, 몰아내야 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 기독교만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신자의 논리를 첨가하자면, 공산주의자들은 신을 믿지 않는 유물론자이므로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며 박멸해야 할 대상이 된다.  

 


뉴라이트보다 나쁜, 뉴라이트보다 저열한

 


뉴라이트가 보기에 개항 이후 150여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적인 대립은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의 대립이다. 한반도에서 펼쳐진, 결국엔 공산화된 중국 및 러시아의 대륙문명과 근대를 전파해온 미국 및 일본의 해양문명 사이의 싸움이었다. 뉴라이트가 보기에 전자는 봉건의 암흑이며 후자는 근대의 빛이다. 그리고 이 시선에선 개화파,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승리, 일제강점기 당시 테크노크라트들의 육성(친일파 중 실력양성론자들과 독립운동노선 중 외교독립론자들이 다수 포함된), 단독정부 건국, 독재정권의 근대화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낸 중요한 계기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시선을 대입하면, 기독교인은 신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해양문명과 근대의 빛을 한반도에 전래해온 전도사들이다. 개화파를 지지했고, 러일전쟁 당시 일본을 응원했고, 일제강점기 당시 테크노크라트로 활약했고, 단독정부를 건국했으며, 독재정권의 근대화 과정에서 활약한 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 교회 장로였던 문창극 후보의 강연 제목은 “한국 기독교의 역사”였다고 한다. 문창극은 한국 기독교가 해양문명이 전파하는 근대의 빛을 들여와 역사를 일신했다고 보는 것이다. 조선인에 대한 비하와 DNA 운운의 맥락이 이것이라 볼 수 있다. 

 


   

▲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등 문창극 신임 총리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역사정의실천연대와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원들이 12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후보자의 총리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한’과 ‘북한’ 사이 양자택일 권하는 '야바위'


 

뉴라이트의 저술과 주장을 보면 그들은 이 대륙문명과 해양문명 싸움이 이 나라를 ‘북한’으로 만들 것인지 혹은 ‘남한’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운명이 달린 모종의 내기였다고 보는 듯하다. 뉴라이트의 저술을 보면 그들이 이 내기의 선택지로 그저 오늘날 남북한의 모습, ‘제 인민을 굶기는 전근대적 왕조국가’와 ‘문화상품까지 수출하게 된 선진공업국가’를 내놓고 우리를 윽박지르고 있으며, 그 사이의 다른 가능성들은 무시한단 느낌을 받는다. 

 


오늘날의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한다면야 우리는 당연히 전자를 고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섰을 경우 자본주의 체제가 되었던 공산주의 체제가 되었든 지금의 남북한처럼 극단적인 이념편향성을 지니지 않고 나름의 균형을 찾았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들은 이 부분을 무시한다. 설령 분단과 전쟁을 겪고 남한만이 남았다고 해도 지금처럼 극단적인 반공주의·재벌중심 사회가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을 테지만, 그들은 이 부분도 무시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가지 않은 길’엔 지금보다 나은 번영이나 행복이 존재할 수 없었으며, 가능한 건 ‘남한’이 아니면 ‘북한’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남북분단과 6.25 전쟁을 공산화가 되지 않았고 미군을 끌어들였다는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창극 후보의 역사인식 역시 명확하게 이 흐름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해야 하는가? 또한 이러한 견해는 대한민국의 총리가 되기에 합당한 것인가? 

 


문창극, 그냥 기독교 광신형 극우파일 뿐


 

심지어 문창극 총리후보의 인식은 평균적인 뉴라이트 진영의 역사서술에 비해서도 극단적이다. 종종 ‘막가파’들의 망언이 나오기도 하지만, 뉴라이트 진영의 전반적인 역사서술은 일제 식민통치에 감읍한다든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한다든가 인권문제를 무시하는 수준의 것은 아니다. 뉴라이트 역시 가치평가는 분명하게 하지만 일어난 행위들의 효과에 대한 판단을 다르게 하곤 한다. 가령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교과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5·16은 분명하게 쿠데타라 명시되어 있지만 남한 근대화혁명의 출발점이라 묘사되어 있는 식이다. 


 

또 일제식민지 시기 근대문물의 도래를 설명하지만 조선인의 주체적 역량의 조응을 강조하고, 소련과 김일성의 단독정부 수립 준비가 확고했다 보기에 해방시기 통일국가 설립은 비현실적 노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반공주의가 강하지만 국가폭력 문제는 따로 기술하고 있고, 탈민족주의자들이 많아 인권문제에 대한 예민함은 민족주의 사학자나 대중의 통념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다. 조선인은 게을러서 식민지배와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근대화가 불가능했을 거라든가, 4.3 사건에서 민간인 학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것,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폄하적 발언 등등은 문창극 총리후보가 미래지향적 우익도 아닌, 긍정성이라곤 1g도 없는 기독교 광신형 극우파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교회 강연에서 일제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을 하나님의 뜻으로 주장해 논란이 이는 것과 관련, "말 몇 마디를 갖고 그의 삶을 재단하고 생각을 규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창극 밀다간, ‘하나님의 시련’이 한국에 온다 


 

마지막으로 보도되지 않은 강연 전문에서 나온 문창극 충리후보의 종교적 광신성의 위험성을 설명해야겠다. 문창극 후보는 "그러면 지금 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게 2015년이에요. 그러면 2015년 이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라며 국제정세의 변동을 얘기한 이후, "그러니까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하셔야 된다"라며 해법(?)을 제시했다고 한다. 동구권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공산주의가 무너졌듯이 중국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이 문제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를 믿어야 나라가 흥한다는 주장을 개진해온 이가 기독교 국가가 아닌 공산주의 국가가 초강대국이 되는 세상을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외교문제의 해법이 ‘중국으로의 선교’라니 황망함을 금할 수 없다. 현실세계의 ‘시련’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태도라 하더라도, 인간 세계의 사회문제의 인과관계는 다르게 봐야 한다. 


 

그런 종류의 분별력이 없는 이가 ‘교회의 장로’를 넘어 ‘일국의 총리’가 되려는 상황을 어찌 받아들일 것인가. 기독교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패권국이 주변국을 대하는 권력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문창극 총리후보의 한가한 소리를 외교전략으로 삼았다간, 구약의 야훼께서 바빌론의 힘을 빌어 신앙심이 부족한 유대왕국을 벌했듯 하나님께서 중국 공산당의 손을 빌려 대한민국에 ‘시련’을 줄 지도 모를 일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예언자 중 한 명인 예레미야는 바빌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바빌론이 곧 멸망할 거란 풍문을 전하자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지 말라고 질타했다. 신약성경 이후의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은 로마 제국을 ‘선교’하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예수의 동족이었던 유대인들은 2천년 동안이나 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헤맸다. 비록 한국 사회의 기독교가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믿는 사람 잘 되고 믿는 나라 흥한다는 류의 소리를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창극 총리후보의 역사관과 종교관이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가혹한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것이란 것을 기독교인들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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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